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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가 걸은 60 성상(星霜)의 목장길> <55> 가축 사육두수 증가에 따른 배합사료 수급 정책 추진

배합사료 생산시설 확대 시급 불구 업체들 투자 소극적
신규공장 증산 유도…가격인상 견제 농협 점유율 높여

  • 등록 2016.04.29 10:52:17
[축산신문 기자]

 

1967년 대비 1976년까지 소 사육두수는 1백25만5천5백두에서 123.8% 증가한 1백55만4천8백두, 돼지 사육두수는 1백29만6천두에서 151% 증가한 1백95만2천두, 닭 사육 수수는 1천7백7만9천수에서 154% 증가한 2천6백28만3천수이다.
배합사료 생산 공급은 1967년 10만7천톤에서 약 13배가 증가한 1백38만4천톤으로 그 중 배합사료 원료 도입량은 76만4천톤(55%), 옥수수는 62만톤(7천973만$)을 수입하였다.
축산국장으로 부임한 1976년을 기준으로 1981년까지의 배합사료 생산계획을 재검토한 결과 261%가 증가한 3백61만톤이 소요되며, 사료원료 도입 추정량은 333% 증가한 2백67만톤이다.
그러나 1976년 당시 배합사료 생산실적이 1백38만톤에서 1979년에 3백88만톤으로, 배합사료 공급을 위해서는 기존 사료공장의 시설확장 또는 신규공장의 허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기존 배합사료 공장에 대해 사료안정기금을 지원, 신규공장 확장을 정부가 권유했지만 소극적이었다.
1976년부터 1981년까지 사육두수 증가로 한우 · 젖소 37%, 돼지 23%, 닭 74% 증식을 전제로 한 배합사료 생산능력 또한 1976년 1백38만톤에서 1981년 160% 증가한 3백60만톤으로 생산시설 확대가 최우선 긴급과제였다.
그러나 당시 기존 배합사료 공장은 투자자금 관계 등으로 공장 확대에 소극적이었던 것. 제일제당 사료공장이 부산에서 인천으로 이전 승인할 때 당초 회사측에서는 일일 생산량 400M/T 계획이었지만, 대두박 생산을 위한 대두유공장 설립허가를 전제로 일일 생산량 700M/T로 생산규모를 확대하도록 권유하고 이를 조정하였다.
대한제당도 사료공장을 설립하고자 1일 생산능력 400M/T, 풍국 포도당공장에 일산 400M/T의 배합사료 공장을 승인한 바 있다.
당시 1976년 배합사료의 생산량이 1백38만1천톤에서 1981년도에는 3백49만천으로 증가해야할 시점에서 당시 사료공장에 투자하려는 기업에 허가하여 매년 수요가 급진적으로 증가되는 배합사료를 생산 공급할 수 있는 대책을 추진하였다.
사료공장 신규허가와 관련하여 당시 몇 가지 일어났던 일화를 적어보고자 한다.
당시 닭 사육수수가 1976년도 2천6백28만3천수에서 1981년 4천2백99만9천수로 63% 증가하였기 때문에 기존 배합사료 공장 생산능력으로는 품귀 현상이 발생하여 정부지원 자금 없이 자체자금으로 배합사료 공장 신설을 원하는 기업에 허가해 주는 방침에 따라 농협 인천, 군산 사료공장, 대한제당 사료공장 신설을 허가했다.
제일제당 부산사료공장이 인천으로 이전하여 1일 400M/T 규모로 대두유 공장 승인을 해주겠으니 일산 400톤 규모를 700톤 규모로 확대하도록 시설변경을 요청하였다.
1979년 제일제당은 일산 700톤(국내 최대 규모)의 사료공장이 준공되어, 배합사료 생산을 시작하자마자 24시간 풀가동함과 동시에 배합사료를 가져가기 위하여 트럭이 몇 십 미터 이상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본 당시 삼성기업의 고 이병철 회장께서 “세상에 이런 기업도 있느냐?” 하면서 “일본의 미스비시 계열의 사료공장도 100% 가동까지는 3~4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공장을 신설하여 가동하자마자 24시간 풀가동한다고 하니 깜짝 놀랐다”고 한다는 말을 전하면서 국장이 공직을 떠나면 삼성으로 데려오라는 이야기를 당시 제일제당 경주영 사장으로부터 들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사료공장을 경영하는 분은 중소기업 사료공장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자금능력이 없어 사료공장 캐파를 늘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배합사료 생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업에 기회를 주니 본인에 대한 일부 불만도 있기 마련이었다.
어느 날 본인이 농촌진흥청 연구관으로 근무할 때, 기획관리관으로 모신 바 있고 당시 농림부 장덕희 차관님의 신의주중학 후배인 김화산 한국사료협회 부회장이 만나자고 해서 만났다.  김 부회장은 당시 국회 민관식 부의장, 신범식 국회농산위원장을 사료협회 회장단이 모시고 골프 및 회식하는 자리에서 나에 대한 좋지 못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농산위원장이 만일 장관에게 이야기하면 신상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하니 대응하라는 귀띔이었다.
바로 국회농산위원회 하형모 전문위원(수원고 농대선배)에 이야기해 농산위원장님께 축산국 정책방향을 한번 보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도록 부탁드려 하형모 전문위원과 같이 집에 가서 보고할 기회를 가졌다. 신범식 위원장님은 자기 기업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아 험담이었다는 것을 바로 느끼고 후일에 하형모 전문위원에게 국장이 소신껏 행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한편 앞으로 늘어나는 배합사료 생산 공장의 확보와 민간 사료공장의 가격인상 등을 견제하기 위해 농협계열의 사료공장이 전국 사료생산량의 30~40%를 점유시킬 수 방안을 모색했다. 그것은 1978년 1천300만 달러의 ADB 차관도입을 추진, 1979년에 승인하여 1984년 축협 청주, 나주, 안동, 횡성 공장을 건설한 것이다.
그 결과 2010년 기준 농협 생산비율이 31.4%를 점유하게 되었으며, 그 중 소 비육사료는 64%를 점유할 수 있게 됐다. 이는 1973년 본인이 축산시험장 영양생리과장 시 개발하여 제공한 큰소 및 육성 비육사료의 영향이 지금까지 미치고 있는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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