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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가 걸은 60 성상(星霜)의 목장길> <61> 큰 소 비육사업의 보완과 계통출하 제도의 정착

  • 등록 2016.05.19 19:07:20
[축산신문 기자]

 

정부, 입식자금 지원…농축협, 계통출하·지자체, 기술지도 담당
축산국장 재임시 소 비육사업 체계 확립

 

1975~1976년까지 비육사업이란 명목으로 11만2천200두의 비육용 밑소 구입자금 이외에 비육사료 구입자금 5만원이 추가지원 되어 연간 비육우 출하두수가 24만두로 도축된 적이 있다. 1978년 도축 추정두수 50만8천두의 44%가 450kg 비육소로 출하되었다고 할 때, 쇠고기 총 수요량 9만116톤 중 정부지원 비육우로 공급되는 쇠고기는 2만7천140톤(37%)으로 계산된다.
그러나 실제 비육소 출하체중 450kg 계통출하가 불확실했기 때문에 우선 1978년 구정 물가대책을 위하여 1월말 국장 본인이 농협중앙회 관계직원을 대동하고 8개도의 비육우 출하 독려에 나섰다.
각 시군, 농축협, 농촌지도소 축산담당자를 한 곳에 소집하여 오전, 오후 1개도씩 비육우 사업 추진 지도와 구정 비육우 출하 독려를 직접 나섰다.
강원, 경기, 충남북, 전남북, 경남북 지역의 비육우 출하독려 출장 중 전남 교육을 마친 오후 6시경 경남으로 이동하던 수요일에 대통령의 농림부 연두 순시가 금요일로 결정되었으니 즉시 귀청하라는 연락이 있었다.
그러나 목요일 오전에는 경남, 오후에는 경북 관계자 회의 소집통보가 돼 목요일 오전 창원에서 경남 출하독려 교육을 마치고 경북은 오후 대구까지 들릴 시간적 여유가 없어 장소를 경부고속도로 경산 휴게소로 변경, 이곳에서 비육우 출하독려 8개도 순회 회의를 마치고 오후 8시경에 귀경했다. 그 다음날 대통령께 보고할 자료를 재점검 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당시 농림부가 추진하고 있던 큰 소 비육 입식두수는 11만2천200두로 연간 총 출하두수는 22만4천400두(1일 740두)로 예상됐다.
큰 소 비육두수 11만2천200두에 대해서는 1974년 축산시험장이 개발한 DCP 8.61, TDN 72.3의 큰 소 비육사료 두당 900kg(5만원)을 농협이 현물로 단위농협 또는 시군축협을 통하여 공급했다.
시군 농촌지도소의 축산지도사는 월 2~3회 비육우 사육 농가를 방문하여 간이체중 측정법으로 체중을 측정하고, 비육 배합사료 급여량(당시 농협공급 1kg용량의 플라스틱 사료 되박)을 지도했다.
시군 농축협은 입식 비육우의 농가별 체중별 두수를 매월 말일자로 조사, 농협도지부와 도 축산과에 보고하고, 각 도 농협 도지부는 농협중앙회에 체중별(300, 350, 400, 450)로 보고하면 농협중앙회는 농림부와 협의하여 전국 각 시군의 400~500kg 출하 적기 비육우를 시군별로 파악, 일별로 서울 및 주요도시 도축장별로 출하배정을 하여 수요에 맞추어 공급하는 소비육 사업을 추진하였다.
450kg 이상 비육우 출하농가에는 두당 5만원의 출하장려금을 지급하여 종전 전국 도살평균체중이 348kg에서 1년 이내에 450kg 이상으로 올라가게 되었으며, 당시 서울 민간도축장 우성, 협진의 1일 도축 200~250두에 비해 성내동에 위치한 농협공판장(도축장)의 1일 도축능력은 150두였다.
종전까지는 1일 50여두밖에 작업하지 못하던 곳이 24시간 풀가동하여 300두 이상 작업하고, 수도권에 비육우 지육을 공급함과 동시에 전국 각 도 주요 도시에도 필요량의 비육우를 공판장에 출하하여 연말 및 명절(구정, 추석)의 가격폭등을 없앴다.
연중 계획생산 공급 체계를 수립, 공급하고 국내 생산 쇠고기로는 절대 부족한 쇠고기를 1976년도에는 700M/T, 1977년 4천200톤, 1978년도 4만톤을 수입 공급하여 쇠고기 수급 및 가격을 안정시켰다.
이상과 같이 비육용 300kg 전후의 밑소 구입비만 지원하던 제도에서 4~5개월 비육시킬 수 있는 비육사료비 5만원(1,000kg)을 현물 융자지원 함으로써 비육 출하하게 되자 종전 비육 358kg 비육 출하시 두당 소득 5만~6만원보다 25만5천~32만7천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비육기술을 정착시켰다.
이로 인해 농협 배합사료 공장은 매일 24시간 가동하여 연간 2억2천4백만톤(1일 746톤)을 생산 공급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 부산 배합사료 공장 이외에 군산, 인천 배합사료 공장을 신설하여 정부계획 입식 비육농가에 비육배합 사료를 공급했다.
당시 정부는 비육우 입식 및 사료 자금을 지원하고, 농·축협은 사료 현물공급과 계통출하를 담당하고, 각 시군 농촌지도소는 비육농가의 기술지도로 소 비육 사업체계를 1979년까지 축산국장 재임 시 확립하였다.
그런 이 제도가 어느 때 무너졌는지 알고 싶고, 당시 이 제도의 계획 추진을 위하여 농림부의 송찬원 과장(축산국장, 축협회장 역임), 농협중앙회의 이긍수과장, 구본형 과장, 유대식 배합사료사장, 축산물공판장의 한규환장장, 박순용과장(축협회장 역임)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본인이 전라북도 순창축협을 대상으로 현지 우상인을 통하여 판매 및 전주 도축장 출하시와 서울 농협 공판장에 계통 출하시의 농가 수령 가격을 비교한 결과, 전주 출하시의 생체 kg당 가격은 1천550원에 비해 서울 농협 경매 도매시장에 계통 출하시는 1천630원을 수령하여 두당 3만2천240원이 더 수령되었다는 비교검토 자료(새로운 한우사육과 비육기술 19쪽, 비육우의 출하 및 판매방법)를 전국 시군 농축협 및 농촌지도소를 통하여 제시하고 교육하여 계통출하제도가 조기에 정착될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보람은 지금까지 358kg 비육우보다 완전한 비육사료로 4~5개월 비육 450~500kg로 출하한 국산 한우 쇠고기의 육질이 당시 수입한 쇠고기 육질보다 월등히 좋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오늘 현재는 한우고기가 수입 쇠고기보다 맛이 우수하다는 인식을 각인시킨 기회였다고 생각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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