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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축산특례, 반드시 존치돼야 하는 이유

‘판’ 자체가 다른 농업과 축산업
한데 묶으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
헌재 합헌 결정 부정…통합정신 위배
농업 내 축산 생산액 절대가치 폄하
개방시대 축산, 골든타임 실기 우려

 

주 영 노 조합장(춘천철원축협)

 

농·축협 통합정신의 상징인 현행 농협법 132조는 농업경제대표이사, 상호금융대표이사 등은 인사추천위원회에서 추천된 자를 이사회 의결을 거쳐 총회에서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축산경제대표이사는 축협조합장대표자회의에서 추천된 자를 총회에서 선출한다’고 명시돼 축산업계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5월 20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위의 축산특례 조항을 폐지하는 개정 농협법을 입법예고 했다. 지난 16년간 농협법에 보장된 축산특례는 축산업의 발전과 성장을 이끌어온 견인차였다. 한데 이를 폐지한다고 하니 일선 축협의 조합장으로서 매우 우려스러워 몇가지 논점에서 분명한 반대를 표하고자 한다.
첫째, 농업과 축산업의 차이점이다. 농업과 축산업이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농업과 축산업은 분명 다르다. 원예작물, 수도작, 경종업(耕種業)으로 대표되는 농업과 가축을 기르고 그 생산물을 가공하는 축산업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길러내는 방법이 서로 다르고, 유통구조와 방법, 시장구조가 상이하다. 분화(分化:Differentiation)되고 전문화(專門化:Specialization)되었다는 뜻이다.
학문의 영역에서도 보면 대부분의 대학교에는 농과대학, 동물과학대학이 별도의 단과대학으로 존재한다. 학계의 이런 경향을 보면 농·축산업은 더욱 분화와 전문화를 추구해 나가야 하고, 농협법은 이를 지지해주고 보육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야만 세계시장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때 농업경제와 축산경제를 하나로 묶어 농업경제지주로 출범하겠다는 발상, 즉, 이미 분화되고 전문화된 축산업을 다시 농업의 틀에 넣겠다는 농협법 개정의 취지는 다분히 비과학적이고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둘째, 헌법재판소의 판결문(99헌마553)을 들 수 있다. 2000년 당시 축산인들은 농·축협중앙회가 통합되면 축산업계가 자율성과 전문성을 상실할 것을 우려해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헌법재판소의 판결문(99헌마553)을 보자.
 헌법재판소는 “신설 농협중앙회 안에서 상당한 자율성을 갖는 축산경제대표이사를 정점으로 양축인들의 자조조직이 유지될 뿐만 아니라(농협법 132조), 기존의 사업도 신설 중앙회가 그대로 이어 받으며 지역별, 업종별 축협 또한 그대로 존속하므로 축협중앙회의 회원조합이나 축협조합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단체는 신설중앙회안에서 형태를 바꾸어 여전히, 유지 존속하고 있어, 이를 형식적으로만 보아 양축인들의 자율적 단체가 해산되어 소멸하였다거나, 향후 그들의 단체 결성이 금지되었다고 볼 것이 아니고,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합헌 결정을 내린바 있다.
합헌의 주된 근거가 바로 이 특례를 명시한 농협법 132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농협법에 축산특례 조항이 없었다면 위헌 판결이 되었을 것이고, 농·축협중앙회는 통합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 법조항을 삭제한다고 한다. 대한민국 축산인과 했던 아주 중요한 약속을 파기하려는 것이다.
조그마한 일선축협 조합장의 말에 아무도 귀를 기울일 것 같지 않아서,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동양 최초의 역사서, 사기(史記)의 권위(權威)를 빌어 본다. 중국 노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다리 밑에서 여자를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여자가 오지 않았다. 마침 큰 소나기가 내려 물이 불었으나 떠나지 않고 다리 기둥을 안고 죽었다. 이를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 한다. 사기 소진열전(蘇秦列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사마천은 당시 절대 권력인 한무제(漢武帝) 앞에서 올곧은 소리를 한 죄로 궁형(宮刑)을 받은 당대 최고의 강직한 학자였다. 그런 사마천이 어찌해 정인(情人)을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한 사사롭고, 가벼운 이야기를 엄중한 역사서에 담은 것일까. 사마천은 신의와 약속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높고 고귀한 가치이며, 생명과 같이 여겨야 한다는 자신의 뜻을 역사서(歷史書)에 담아 준엄(峻嚴)하고, 지엄(至嚴)하게, 만세(萬世)에 전하려 한 것이다. 사사로운 약속이 이러할진대 국법으로 정한 약속의 지엄함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셋째, 농업 내에서 축산업이 가지는 비중을 고려해야 한다. 농업의 총생산액 중 축산 생산액이 차지하는 비율이 이미 42%를 넘어섰고, 그 점유율은 계속해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에 전국적으로 농협과 축협의 수를 보면 총 1,132개의 농협 중 축협은 139개에 불과하다. 또한 농협중앙회 대의원 총수 291명 중 52명이 축협 조합장이고, 27명의 이사 중 4명이 축협조합장인 것이 현실이다. 나아가 경제사업지주가 발족하게 되면 9명의 이사 중 1명의 티오만 축협조합장에게로 할당된다고 한다. 사업량의 월등한 점유비율에도 불구하고 축산관계인들은 대부분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별다른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런 상황에서 축산업계의 목소리가 반영될 가능성은 얼마나 되겠는가. 바로 여기에 축산특례가 존치돼야 하는 이유다.
넷째, 농협법 132조 축산특례는 지난 16년간 우리나라의 축산업을 선도하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왔다. 도대체 어떤 문제점이 있기에 이를 삭제하려고 하는가? 당사자인 우리 축산인들에게 의향을 물어 본적은 있는가? 납득할만한 분명한 설명을 들려 줄 수는 없는 것인가?
지금 우리는 소모적인 논쟁을 할 여유가 없다. FTA 체결 후 관세철폐 유예기간이 곧 끝나게 된다. 밀려오는 수입축산물의 파고에 맞서는 것을 넘어, 우리 축산물의 수출까지 고려하는 장기적인 전략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해답은 고도의 전문화와 분화 그리고 통섭이다. 또한 이를 보장해 주는 법률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축산특례의 존치가 더욱 절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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