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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남성우 박사의 산티아고 순례길<6>

출발 3일째…변수 많은 순례길 “완주할 수 있을까?”

  • 등록 2020.10.08 11:09:30


(전 농협대학교 총장)


“매일 매일 최선 다하자” 다짐…불안감 잠재워


▶ 바스크주의 목장지대를 지나다. (5월 26일, 4일차)

아마도 많은 분들은 850km를 걷는다는 것, 그것도 9~10kg이나 되는 배낭을 메고 걷는 게, 과연 어느 정도 힘든 일일까라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필자도 직접 걸어보기 전에는 짐작을 할 수 없을 만큼 막연했다. 그냥 대단히 힘들 것이다. 완주하려면 대단한 체력과 의지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받아들이기로 작정을 했었다. 

지난 3일간 걸으며 멋진 풍경과 자연을 만나면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지만 불안감을 떨칠 수는 없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고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흘을 놓고 보면 전체 여정의 1/10이 지난 셈이니 이렇게 아홉 번만 더 걸으면 되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을 하니, 예기치 못한 변수만 안 생기면 완주할 수 있겠다는 긍정적인 마음이 들었다. 또 까미노 동행 순례자들 중에는 나이가 꽤 든 사람도 있고 족히 회갑이 가까워 보이는 여성분들도 있는데 나라고 못할 게 없다는 용기도 생겼다. 혹 문제가 생기면 다음으로 미루면 되지 하는 편안한 마음을 가졌던 것도 불안감을 떨치는데 도움이 됐다. 그리고 매일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긴다는 순응하는 마음이 오히려 용기를 북돋아 준 것 같다. 

26~27일 이틀 동안은 대서양해안에서 내륙으로 좀 떨어진, 나무숲과 목장지대 초원을 지나가는 산속 길을 걸었다. 출발할 때는 흐리기만 하더니 얼마 안 가서 비가 내렸다. 원래 난코스인데다 비까지 내려서 훨씬 힘들었다. 순례길의 높낮이 변화를 ‘부엔 까미노’ 앱에서 확인해보니 산의 높이가 해발 500m이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는 코스였다. 

전날 코스 점검을 할 때 숲속 16km 구간에는 카페나 식당이 없고 마을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마켓(스페인어로 mercado 메르카도)에서 다음날 아침, 점심과 간식으로 바게뜨빵, 슬라이스 하몽과 치즈, 우유, 요구르트, 바나나, 사과, 초코렛과자 등을 구입했다. 몸에 충분한 수분과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으면 탈진해 걸을 수 없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챙겨야 할 부분이다. 남보다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은 더 많은 물을 준비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걷다가 물이 떨어졌다고 남의 물을 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라 친구보다 항상 물 한 병을 더 가지고 다녔다. 또 물이 있는 곳에서는 반드시 물병을 가득 채웠다.       

비가 내려서 산길이 완전히 질척거렸다. 다행히 등산화 속으로는 물이 안 들어왔다. 순례길을 걷는 데는 반드시 방수되는 등산화를 신는 게 좋다. 일반 트레킹화나 운동화로도 못할 것은 없지만 등산화가 편하고 안전하다. 또 바지의 빗물이 등산화 안으로 흘러들지 못하도록 방수 각반(스패츠)을 준비하는 게 좋다. 비가 오면 비옷이나 판초우의를 입으므로 우산은 필요가 없다. 괜히 짐만 된다. 

숲속 산길을 한참 헐떡이며 오르니 어느 목장 앞에서 여섯 살쯤 돼 보이는 그 집 아이가 과자, 빵, 음료 등을 조그만 테이블에 진열해 놓고 소꿉장난처럼 판매하고 있었다. ‘커서 사업 잘 하겠다.’고 칭찬해주었더니 부끄러운 듯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릴 때부터 저렇게 하니 아이들의 자립심이 저절로 길러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10여분을 쉬고 다시 길을 걸었다. 산속 우거진 나무를 벌목하고 목장초지로 전환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나무는 벌목해서 팔고 그 자리에 목초 씨를 뿌리면 초지가 완성되고 소나 양을 방목할 수 있는 목초지(牧草地)가 되는 것이다. 오늘은 도중에 목장을 많이 만났다. 이런 지대에서는 순례길이 목장을 통과해서 가는 경우가 많다. 산지초지에서 기르는 가축은 풀만 먹고도 살 수 있는 소, 말, 양, 염소 등 초식가축이다. 목장주인은 가축들이 먹을 물만 잘 공급해주고 목책 관리만 잘하면 임무 끝이다. 

이렇게 소를 기르니 쇠고기 값이 한우고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소품종은 한우와 비슷한 모색을 지닌 심멘탈종과 교잡종이 섞여 있고, 젖소는 방목에 적합한 저지종이다. 초지에서 영양가가 풍부한 풀을 마음껏 뜯는 소들은 모두 털에 윤기기 흐르고 건강해 보인다. 우리 한우에 비하면 여기 소들은 참으로 행복하다. 초지에 배출된 똥오줌은 땅으로 돌아가 풀의 양분이 되고, 소나 양은 여기서 풀을 먹고 자란다. 자연 순환의 조화다. 

걷는 도중에 소똥 냄새는 전혀 역겹지 않았다. 자연의 냄새이기 때문이다. 산간지대 목장의 공통적인 특징은 초지가 넓고 농가주택의 규모가 매우 크다는 점으로 보아 부농인 것으로 추정됐다. 땅이 넓고 값이 싸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오늘 가장 힘들었던 구간은 약 4km 정도 계속해서 올라가는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렇게 긴 십리 길은 처음이다. 언덕에 올라 길가 바위에 걸터앉아 아래 길을 내려다보니 저 아래 멀리 지나온 길이 뱀처럼 꾸불꾸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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