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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돈

윤희진 회장의 나의꿈,나의열정 브라보 양돈인생(7)

“종돈산업 세계수준 도약 기틀 잡겠다” 사업 시작

[축산신문 윤희진 회장 기자]
일곱번째 이야기 내 인생의 축복 ‘다비’(Ⅰ)

안성에 6백두 규모 종돈장 건립…어렵게 세계적 종돈 수입
일본 수출 ‘호기’ 불구 검역서 PRRS 양성 판정 충격…좌절 맛 봐


 

종돈 전문으로 창업하다
영국에 가있던 정영철 박사가 아이오와 대학으로 건너가 박사과정까지하는 바람에 나의 퇴직이 2년여 늦어졌고 회사 양해 하에 선진사료 앞동네에서 대월종돈장(모돈 120두 규모)이란 조그만 농장을 먼저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회사일로 시간이 없어 근처에서 소 비육 일을 하고 있던 진길부 후배에게 돼지도 배울겸 내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이게 양돈업계의 또 하나 큰 일꾼이 탄생한 계기가 되었다. 양돈 중에서도 제일 비중이 큰 종돈업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다비육종’을 설립했다.
다비육종은 산자수 많으라고 많을 다(多)에 살찔 비(肥)이고 받침 없이 외국인도 부르기 좋도록 감안하였다. 주주, 임직원, 업계, 지역사회가 ‘함께 발전하는 기업’으로 키우고 싶었다. 실제 안성 지역이 약간 배타적인 정서임에도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주민들과 사이좋게 지내왔다. 창립기념일은 우리 돼지가 능력검정소 초대 챔피언이 된 7월 5일로 하기로 했다. 안성 일죽의 야산 2만여평에 모돈 600두 규모 종돈장을 짓는데 하필 양돈 불황 때여서 허가가 나지 않아 한동안 한우 비육을 하기도 했다.
이때 우리나라의 돼지 사육두수는 25만1천호가 285만3천두를 키우고 있었고, 1인당 육류소비량 14.4kg 중에서 돼지고기가 8.4kg를 차지하고 있었다. 육성돈 사료가 kg당 224원 정도, 전체 배합사료 생산량은 598만톤을 기록하고 있었다.
깨끗한 새 돈군 조성을 위해 산너머 돈사에서 5일령 이유(MEW 방식, ’86년 11월 27일~)를 시켜 상자에 담아 새 농장 울타리로 넘겨주는데 이때 많게는 하루 5번씩 샤워를 하고 드나든 사람이 지금의 이영규 도드람 농협 조합장이다. 이때에도 서울대 박응복 교수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
종돈장은 돼지의 유전능력도 중요하지만 돈군의 위생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었다.
’87년 종돈 수입차 영국을 다녀오면서 나의 1차 목표를 연간 종돈판매 2만두로 정하였다. 당시 영국의 양돈규모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종돈시장 규모는 20만두 정도인데 1위 업체가 6만두, 2, 3, 4위가 2만두씩, 나머지 8개 업체가 1만두씩이었다.
나도 연간 2만두는 판매해야 전문인력도 채용하고 기업경영 체제가 될터이고 그러려면 계약생산을 통한 종돈 공급 확대가 꼭 필요했다.
’88년에는 미네소타를 방문하여 주한수 박사 소개로 당시 미국에서 인기 최고인 Lieske Genetics를 만나게 되었다. 이 회사는 White Diamond란 상표로 4개 주에 GP농장이 29개나 되었고 아일랜드에서 그 유명한 KING DAVID, FIELD MARSHALL(이 돼지는 아일랜드에서도 못 구한다고 함) 계통을 가져 왔는데 유방이 크고 유선이 굵기가 젖소 같았다. KARL LIESKE 회장은 최고의 TV 인기프로인 쟈니카슨 쇼에 돼지를 몰고 나올 정도로 쇼맨십도 대단하였다. 즉시 한국에 초청하였고 돼지를 달라고 하였더니 암·수는 안되고 우선 백색 ♂ 14두만 보내주었다. 얼마 후 이 소식을 들은 일본 GPF의 아카치(赤池) 사장이 수입을 강력히 원하여 사장 포함 3명이 우리 농장에 와서 꼼꼼히 선발해 놓고 갔다.
그런데 수출 검역을 하다 보니 이게 웬일, PRRS 양성이 나오는게 아닌가? 이때 우리나라 검역원이 PRRS 바이러스 분리를 한지 얼마 안되었으나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미 ’87년 도입돈 혈청에서부터 항체 검출이 되었다고 한다.
하여간 일본으로 찾아가 양해를 구했으나 참으로 아까운 기회였고 우리 회사로서는 1차 시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외국 종자에 의존하는 종돈장으로서는 어쩔수 없는 리스크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얼마 안가 LIESKE 회사도 질병, 후계문제로 파산이 되고 돼지는 아이오와로 넘어가 American Diamond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종돈을 도입하는건 이제 안 되겠고 세계 유명 종돈 업체들 중에서 장기 제휴선을 찾기로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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