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상·판매점 수의사 명의 빌려 처방전 발급 일쑤
“굳이 수의사 불러야 하나”…현장 인식 아직도 저조
인센티브 부여·가축공제제도 활용 등 재정립 필요
지난 2013년 8월 2일부터 시행됐으니, 수의사처방제는 딱 4년이 지났다. 이제 정착·안착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현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오히려 편법·불법이 더 늘어나는 추세다.
처방제는 원칙적으로 수의사가 농장을 방문해 진료한 후 처방전을 발급해 줘야 한다. 농장은 그 처방전을 갖고 동물약품을 구매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동물약품 구입경로를 따르는 농가들은 많지 않다.
처방제 시행 전과 시행 후가 별반 다르지 않다.
농가들은 예전과 같이 전화로 주문하고, 동물약품 도매상, 동물약국, 동물병원 등 동물약품 판매점에서는 그 주문대로 동물약품을 농장에 배달해 준다. 다만 배달상자 안에 처방전이 한장 더 들어있을 뿐이다. 그 과정에 수의사는 없다.
처방전은 누가 끊어줬을까.
동물약품 도매상, 동물약국 등에서는 인근 동물병원(수의사) 명의를 빌려 스스로 처방전을 발급해 주기 일쑤다. 일종의 협약관계다. 아예 판매점 한켠에 수의사를 고용해 동물병원을 차려놓기도 한다.
동물병원(수의사)이 판매점이라고 해도 왕진없이 처방전을 발급한 뒤 동물약품을 가져다 주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엄연히 편법·불법이다.
왜?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처방제에 대한 인식이 낮을 뿐 아니라 당사자들 대다수가 처방제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어서다. 농가 입장에서 처방제는 귀찮고 불편한 규제다.
돼지 유도분만제 등 정기적으로 쓰고 있는 동물약품을 구입하는데 굳이 수의사들을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가축들을 동물병원에 데려갈 수도 없다.
어렵게 수의사가 농장에 왔다고 해도, 크게 효과적인 처방과 컨설팅은 없다고 토로한다.
동물약품을 팔아야 하는 판매점에서는 농가가 처방전 없이 왔다고 해서, 그냥 돌려보낼 처지가 못된다.
수의사들의 고충도 크다.
왕진에 따른 비용청구는 당연한 것인데, 현장에서는 아직도 무상서비스 개념이 크다. 왕진에 주저할 수 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처방제는 서류상에만 있는 존재가 돼 버렸다.
벌써 4년이 흘렀다. 그 사이 동물약품 오남용을 방지해 축산물 안전성을 확보한다는 처방제 도입 취지는 더 커졌다.
처방제 대상 동물약품 품목을 늘리는 논의도 한창 진행되고 있다. 처방제는 앞으로 갈 길임에는 분명하다. 이제라도 처방제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가축질병공제제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공제제도는 수의사들이 농장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질병을 진단하고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한다.
농가들은 질병피해를 줄일 수 있고, 수의사들은 안정적 소득을 취할 수 있다.
처방제를 관리·감독하는 정부 당국에는 현실을 무시한 단속보다 당사자들의 참여를 유도할 인센티브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처방제가 농장경영에 도움이 된다면 농가들이 수의사를 찾게 되고, 처방제 역시 제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