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생지역 내 조차 SOP 적용 ‘나몰라라’ 사례 확인
형식적 운영 행태 주류…차량 경유 ‘꺼림칙’ 시각도
소독필증, 면죄부 악용 우려…겹치는 동선도 한계
“안전하다면 역학으로 왜 묶나”…현장 불신 커져
발생지역내에서도 이런데…
연천지역에서 2차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지난 9일 자정 무렵, 급한 용무로 이 지역을 찾게 된 축산 관련 차량이 연천지역 내 한 거점소독시설로 진입한다. 운전자 A씨가 하차하려는 순간 소독을 준비중이던 거점소독시설 관계자는 대인소독 절차는 안중에도 없는 듯 “왜, 내리세요? 그냥 앉아계시지”라며 만류한다. A씨는 잠시 당황했지만 해당관계자에게 “사람도 당연히 소독해야 되는 것 아니냐. 지금 농가를 만나러 가는데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나만 곤란해진다”고 말한 뒤 대인소독실로 향했다. 운전석 발판소독에 대해서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이마저 A씨가 직접하고 소독필증도 요구했다.
축산관련산업 종사자의 제보를 있는 그대로 재현해 본 거점소독시설의 운영실태다.
‘차량 운전자를 하차시킨 후 대인소독기를 통해 소독을 실시하되, 소형분무기를 이용한 차량 내부소독과 함께 운전석·조수석 발판까지 고압분무기 또는 소독조를 이용해 세척·소독’ 토록 명시한 정부의 ASF 긴급행동지침(SOP)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 개 시설의 사례이긴 하나 다른 곳도 아닌, ASF 발생지역내 거점소독시설의 현실이다.
꼭 들러야 되나
가축질병 방역을 위한 정부의 핵심대책 가운데 하나인 거점소독시설이 ASF 방어에 부심하고 있는 양돈현장에서는 오히려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역내 모든 차량의 집합장소가 되고 있는 거점소독시설 대부분이 형식적인 운영행태를 벗어나지 못하며 ASF 전파의 큰 위협원이 되고 있다는 시각이 팽배한 것이다.
비단 양돈농가 뿐만이 아니다. 사료와 동물약품, 기자재, 수의사, 컨설턴트, 가축분뇨, 출하차량에 이르기까지 거점소독시설을 통한 차량 소독이 의무화된 모든 유관산업계가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지 않다.
사료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든 회사들이 차량소독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자동화된 최신 시설과 소독매뉴얼, 철저한 후속관리는 물론”이라며 “하지만 소독차량이 거점소독시설에 진입하는 순간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 질 수 밖에 없기에 하루하루가 불안하다”고 털어놓았다.
많게는 수 억원의 예산을 투입, 차량전용 소독시설을 갖춘 양돈농가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충남의 한 양돈농가는 “거점소독시설을 통한 차량소독 의무화를 한 번 더 생각했다면 사비를 들여 별도의 시설은 갖추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ASF 발생을 계기로 정부가 의무적으로 발급받도록 한 거점소독시설의 소독필증이 방역의식이 부족한 일부 차량 기사들에게는 마치 면죄부처럼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A씨는 “거점소독시설이 ASF 확산의 원인이라는 증거는 없다. 반대로 지금의 수준이라면 아니라는 증거도 없지 않느냐”며 “ASF 발생지역이 이 지경이면, 비발생지역은 오죽하겠느냐, 우리나라 국가방역의 현실” 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축산차량운전자 B씨의 제보는 그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B씨는 “지난 23일 20시경 남부지역의 한 거점소독시설에 들렀지만 관계자로부터 굳이 소독을 할 필요가 있느냐. 그냥 가도 된다고 말해 항의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오히려 바이러스 묻혀온다”
그러다보니 방역정책 전반에 대한 현장의 불신도 커져만 가고 있다.
경기도 북부지역의 한 양돈농가는 “거점소독시설을 거치고 소독필증을 받은 차량도 역학에 묶이고 출입농장까지 같은 신세가 된다”며 “방역당국이 거점소독시설이 안전하다고 믿으면 역학으로 묶을 필요가 없지 않느냐. 결국 정부도 믿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했다.
실제로 거점소독시설 운영주체인 일선 방역기관에서도 부정적 시각이 표출되고 있다. 축산자재업체의 한 관계자는 “평소 친분 있는 지자체 관계자에게 발생지역 출입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거점소독시설을 거치면 되지만 가급적 오지 말라고 했다. 오히려 거점소독시설에서 (바이러스를) 묻혀올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고 전하기도 했다.
진출입차량 동선 겹쳐
이러한 현실에 국내외 전문가들로부터 야생멧돼지와 함께 농장 출입 각종 차량이 ASF 확산의 주요 전파원으로 손꼽히면서 양돈현장의 우려는 더욱 높아만 가고 있다.
대한한돈협회의 초청으로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세계동물보건기구(OIE) ASF 연구소의 호세 산체스 소장은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 ASF 사례를 감안할 때 트럭(차량)이 정말 위험하다. 농장에 온 차량 운전자는 화장실도 (농장) 바깥에서 해결토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국이 돼지열병(CSF)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일본에서는 발생농장 실태조사 결과 차량과 운전석에서 바이러스의 검출비중이 높았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수의전문가들이 바라보는 거점소독시설은 그야말로 위험천만이다.
한 수의전문가는 “아무리 소독을 잘하고 나오면 뭐하나, ASF 바이러스에 오염된 유기물이 도로상에서 소독을 마친 차량에 묻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차량의 집합장소일 뿐 만 아니라 진입하는 차량과 소독을 마친 차량의 이용도로가 겹칠 수밖에 없는 현실은 ASF 발생상황에서 거점소독시설이 갖고 있는 태생적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거점소독시설 소독필증이 차량 출입 농장의 소독의식을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물론 거점소독시설의 역할론을 주장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양돈산업의 재앙으로 불리우며 대통령까지 ASF챙기기에 나서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정부의 가장 아픈 구멍으로 지목되고 있는 거점소독시설, 정부가 어떤 대안을 내 놓을수 있을지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