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2일 오후 1시 수도 서울의 국방부 앞에서 ‘군부대 이전 반대 이천 비상대책위원회’가 주관한 특전사 기무부대 이전 반대 규탄대회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 자리에서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는 말 못하는 돼지 한 마리가 동아줄로 묶여와서 20명의 이천 주민에 의해 사지가 찢겨지고, 국방부 앞 보도가 죽은 돼지의 피로 물들여졌다는 기사를 읽고, 한동안 머리가 어지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 돼지는 자기가 왜 동아줄로 묶여 국방부 앞에까지 와서 찢겨져 죽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무엇을 비유한 ‘퍼포먼스’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 자리에는 두 분의 시장님과 국회의원께서도 참가하고 계셨다고 한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일부 주민들은 박수를 치고 태극기를 흔들기도 했다고 한다. 1993년 6월 캐나다 앨버타대학에서 개최된 세계축산학회에 참가차 한국인 학자 20여명이 함께 에드먼턴의 한 호텔에 투숙하고 있었다. 그곳에 도착한 첫날 저녁, 그곳 지역 TV 방송에서 한국에서 개고기를 먹는 모습, 개를 도살하는 광경이 방영되었다. 이 TV의 방영은 우리 한국인이 도착한 것을 알고 고의적으로 방영한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들은 항의를 했고, 해명을 들은바 있다. 또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일이지만 가까운 일본의 지바시에 위치한 일본축산시험장이나, 가축위생시험소에 가면 일년 내내 현수막을 걸어놓고, 피킷을 들고 실험 연구를 위해서 동물을 학대하고 희생시키지 말라는 동물애호가들의 데모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의 대학에서도 실험이나 연구를 위한 사람의 시신을 해부할 때는 물론, 동물의 시체를 해부할 때도 시체의 머리맡에도 서지 않으며, 시체를 함부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 사람을 위하여 희생된 생명체에 대한 전통적인 예의로 되어 있다. 사람을 위한 실험과 연구를 위해서 희생되는 작은 실험용 쥐 한 마리도 학대하거나 지나친 고통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오늘의 정서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동물의 보호와 복지는 생명경외(生命敬畏) 사상을 바탕으로 ‘의식있는 생명체’라는 동물의 존재감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사람을 위하여 태어났다 희생되는 동물이라 할 지라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선진 사회에서는 널리 인식되어진 지 오래다. 세계가 지금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 이전에,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거칠어졌는가를 생각해보자. 한편 오늘 날 우리 사회의 시위문화에도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의(下意)가 무시되고 상달(上達) 될 수 없도록, 위사람들의 귀가 철벽같이 막혀 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 사회다. 그러기에 철벽같은 귀에 들려라도 주려고, 부수고, 피를 흘리고 목숨까지 버려야만 하기에 이르렀다. 귀는 점점 철벽이 되고, 목청은 점점 높아만 가게 마련이다. 국방부 앞의 규탄대회에 과연 국방부 관계자가 시위대의 목소리를 들어 주기라도 했다면, 현장에 계셨던 시장님, 국회의원님의 위로와 만류의 말씀 한 마디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까지야” 하는 아쉬움이 가시질 않는다. 박수를 치고 태극기를 흔든 것은 또 무슨 의미였을까도 궁금증을 낳게 한다. 그 뿐이 아니다. 돼지의 죽음과 군부대 이전과는 어떤 관계인지? 내 탓도 네 탓도 아닌 돼지의 탓이었던가. 이천 주민들이 한풀이를 위해 꼭 돼지의 피를 봤어야 했는지. 이천 돼지가 사람이라도 물었거나 해를 끼친 일이라도 있는지. 이천은 오히려 양돈으로 농촌의 부를 축적한 지역이라고 알고 있는 우리가 잘 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올해는 돼지의 해, 금 돼지의 해에 많은 사람들은 복을 받기를 기대하고 있다. 돼지는 죽어서까지 웃음으로 인간들의 복을 빌어준다고 믿고 있는 것이 우리가 아닌가. 그 돼지는 찢겨 죽었지만, 찢은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복을 빌어줬을까. 끝으로 세계수의사회에서 채택된 ‘동물복지 선언’을 적어 둔다. “동물은 1.굶주림과 목마름으로 부터의 자유 2.불편으로 부터의 자유 3. 고통과 질병으로 부터의 자유 4.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 5.공포와 고민으로 부터의 자유를 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