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 세대교체 토대 국내외서 공격경영 전국 사육두수가 1백80만두에 불과한 한국양돈산업의 도약기였던 지난 1983년. 당시 38세의 전도유망한 청년 축산인이었던 윤희진씨는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대흥리에 모돈 1백20두 규모의 종돈장(대월농장)을 설립한다. 이후 25년이 흐른 지금 이 농장은 모돈 1천1백두(부계 2백두, 모계 9백두)의 2개 GGP농장과 모돈 6천두 규모에 달하는 10개 GP농장(계약농장 포함), 그리고 연간 23만두의 액상정액을 생산하는 2개 인공수정센터를 거느린 국내 최대의 육종전문기업으로 성장했다. 청년 축산인으로 하여금 대기업 양돈사업의 중추역할을 담당하며 소위 ‘잘나가던’ 직장생활까지 포기하게 만든, “내농장을 가져보고 싶다”는 일념이 결과적으로 한국양돈사를 주도할 기업탄생의 배경이 된 것이다. ■ 뒤늦은 ‘성인신고식’ 대월농장을 모태로 한 (주)다비육종이 올해로 창립 25주년을 맞아 최근 경기도 장호원 소재 부원고등학교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예기치 못한 구제역 발생으로 인해 20주년 기념식을 거를 수 밖에 없었던 다비육종이 뒤늦게나마 ‘성인식’을 치룬셈이다. 윤희진 사장을 비롯한 모든 참석자들은 다비육종 사반세기를 더듬어 보면서 그어느 때 보다 한국 양돈산업을 이끌어가는 주역이라는 자부심으로 충만해 있었다. 다비육종 퇴직자들의 모임인 ‘다사모’(다비육종을 사랑하는 모임)의 김명호 회장(해바라기 농장 대표)은 기념식을 통해 “다비육종에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언제, 어디서나 떳떳히 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다비육종의 25년은 종돈업을 넘어서 한국양돈사, 그가운데서도 양돈기술 발전의 주축을 이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도 넘볼수 없는 독보적인 시장구축과 지금까지 30만5천두의 종돈분양 실적을 기록한 다비육종의 외형은 그들에게 ‘논외’ 거리에 불과할지 모른다. 지난 1987년 M.E.W(투약조기이유) 시스템도입을 시작으로 △1991년 종돈계약생산 △1993년 표준화 모델돈사 설치 △1995년 S.E.W(격리조기이유) 생산시스템 구축, 정부 허가 인공수정센터 설립 △2000년 대홍콩 종돈수출 △2003년 양돈장 HACCP 인증 △2004년 분단이후 첫 대북 종돈분양 △2008년 정부의 핵돈 AI센터 지정에 이르기까지 ‘국내 최초’ 란 수식어가 뒤따르는 다비육종 사업을 헤아리기 힘들 정도. 다비육종의 새로운 기술도입이나 사업 시도가 곧 한국양돈사에도 ‘최초’로 기록돼 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최고유전자 공급기지 역할 ‘충실’ 물론 다비육종이 탄탄대로만을 달려온 것은 아니다. 농장증설직후 IMF 사태가 발생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며, 2002년 구제역발생은 다비육종에게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윤희진 사장은 이에대해 “오랜기간 동안 나를 믿고 함께해준 전현직 임직원들과 끝까지 신뢰를 보내온 주변 양돈인들 있었기에 위기를 극복할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종돈개량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최고의 유전자 공급기지로서 역할에 충실해온 노력이 오늘날 다비육종이 존재하는 가장 큰 힘이 됐다는데 이의가 없다. 대월농장이 올 상반기 MSY 25.1두라는 또 하나의 대기록을 다비육종에게 가져다 준 것도 같은 맥락. ■ 국내외 공격경영 ‘눈길’ 이런 다비육종이지만 얼마전부터 국내외에서 심상치 않은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 2004년 민동수 대표 취임을 계기로 성공적인 2세대 경영체제 구축에 돌입한 다비육종은 베트남 진출을 추진, 모돈 1080두 규모의 종돈장 설립을 통해 연간 4천두의 순종 및 F1 생산체계를 구축한 것은 물론 연간 6천두의 F1 종돈생산이 가능한 HanPork 농장을 인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YBD 삼원교잡을 토대로 한 돈육브랜드시장 진출에 이어 연이은 농장인수로 직영농장을 확대, 각 지역에 새로운 판매거점을 확보하는 등 이전에 찾아볼수 없었던 공격경영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신사옥 준공과 더불어 새로운 심볼마크를 선보이도 했다. 내년중에 모든 GP농장에 대해 PRRS 청정화를 실현할 것이라는 윤희진 사장은 “모두들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다”며 “항상 준비하고 대비하는 기업과 사람만이 생존할 수 밖에 없다”고 그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비육종은 최고품질을 앞세워 국내시장이 아닌 아시아를 무대로 삼겠다는 의지를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