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사육기간 늘리자 폐사도 급증…종자개량·사양기술 개선 해결

■기고 / 대형육계 생산 기술개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기자  2009.09.30 10:21:29

기사프린트

 
▲ 서옥석 과장 (농학박사) - 농진청 축산과학원 가금과
급사증후군 극복위해 제한급이…점증점등 프로그램 적용
‘암수분리 이단출하’ 사육법 개발…암수간 체중격차 줄여

제대로 된 가슴살은 크게 키운 닭에서 나온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의 연구원들은 이러한 닭을 대형육계라고 부른다.
필자를 포함한 농촌진흥청의 가금연구팀이 대형육계 생산기술 개발을 시작한 것은 1993년도이다. 간단한 일이라 생각했다. 육계가 원래 빨리 크기 선수라서 당시 기준으로 42g 체중의 병아리가 35일 정도면 1.5kg으로 체중이 늘어나고 50일이면 잘 크는 개체는 3kg이 되며 좀 더 키우면 평균 4.2kg 까지 100배의 크기로 거뜬히 크는 유전적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육기간만 늘리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계열업체 농장 3개를 빌려 현장사육을 시작했다.
문제는 첫 번째 입추한 농장에서부터 발생했다. 사육중반기부터 폐사가 시작되는데 잘 생긴 닭부터 벌렁 벌렁 넘어가는 것이다. 지금의 수의과학검역원 팀까지 동원하였으나 백약이 무효라더니, 결국 10% 이상의 폐사가 발생했다.
두번째 농장은 상태가 더 심해서 5주령을 넘어설 즈음 16%의 폐사를 감당치 못해 시험을 중단하고 말았다.
폐사의 원인은 급사증후군(SDS; Sudden Death Syndrome)이었다. 대사이상이다. 근육조직의 최대화를 목표로 육계의 종자개량과 사양기술의 개선이 이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순환기 조직의 발달은 최소화됐다.
해결방법으로서 제한급이방식을 선택했다. 덜 키우는 것이다. 내내 덜 키우는 것이 아니고 후기에 보상성장을 유도하여 정상급이한 것과 출하체중을 맞추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보상성장 유도시기가 늦으면 정상체중 회복을 못한다는 점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3년을 소비했다.
제한급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사료량을 줄이니 체중격차가 심하다. 힘센 녀석만 실컷 먹고 약한 녀석은 굶는다. 체중균일도가 엉망이다. 다음에는 실컷 먹어도 살이 찌지 않도록 희석사료를 만들어 급여했다. 암컷은 희석사료를 꾸역꾸역 잘 먹는데 반해 수컷은 아예 굶고 만다. 단식투쟁 수준이다. 전반적으로 사료이용성이 형편없어지는 결과를 얻었다.
조류는 어두운 조건이 되면 사료섭취를 중단하고 휴식을 취한다. 당연히 닭도 같은 습성을 지니고 있다. 빛은 곧 닭의 사료섭취량을 조절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점증점등 프로그램이다. 전기료도 절약되고 급사증후군 폐사가 크게 줄어들었다. 초기성장은 늦으나 적절한 시기부터 보상성장을 유도하여 출하체중을 맞출 수 있었다.
아직 두가지 문제가 남아있다. 첫째는 단위면적당 생산량이다. 큰 닭을 키우기 위해 평당 25마리를 넣다보니 숫자가 적어 평당 출하체중이 고작 60kg 정도이다. 두 번째는 크게 키울수록 암수간의 체중격차가 커지는 것이다. 수컷은 날짜가 지나도 일당증체량이 줄어들지 않는 반면 암컷은 28일정도가 되면 일당증체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암컷은 키우면 키울수록 손해가 커진다.
두가지 문제 해결을 위해 암수를 감별하여 분리 사육하는 시험을 시작했다. 암컷은 일찍 출하하고 수컷만을 대형계로 만드는 방법이다. 계사중간에 60cm 정도 높이의 그물망을 간단히 설치한다. 말뚝을 두서너개 세우고 그물을 걸쳐 놓으면 된다. 안쪽에 수컷을 넣고 입구쪽에 암컷을 넣는다. 평당 사육수는 일반닭과 똑같이 한다. 5주령이 되면 입구 쪽의 암컷을 출하하고 그물망을 없애면 수컷의 자리가 배로 늘어난다. 이 방법에 ‘암수분리 이단출하’ 사육법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렇게 해서 생산되는 닭은 평균체중이 2.7kg 정도이다. 큰 것은 3kg을 넘어선다. 제대로 된 부분육이 만들어진다. 다리 정육이 500g에 육박하고 가슴살은 400g 정도, 안심만의 무게도 80g에 달한다. 맛 인자인 이노신산(Inocinic acid), 글루타민산(Glutamic acid) 등의 함량이 높아 깊은 맛과 쫄깃한 감촉은 나타낸다. 생산비도 10%이상 줄어든다. 모든 시험을 끝낸 것이 2002년도 이다. 중간에 한 두 해씩 건너뛰긴 했으나 시작부터 꼭 십년이 걸렸다.
최근 한 업체에서 이 방법에 관심을 보내왔다. 제대로 된 가슴살 생산기술을 활용할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 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