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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경제지주 설립, 연기아닌 중단해야 마땅”

국무회의 의결 농협법개정안에 대한 전문가 시각

기자  2009.12.19 1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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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 교수(건국대학교)

농협 신경분리 취지 무색…신용사업 자구책으로 변질
경제사업 지주전환땐 농협 역할 상실…농민피해 가속

농협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이라는 도마위에 올려졌다. 516 군사 정권이 농업은행과 농업협동조합을 통합하여 농협중앙회를 탄생시켰고, 5공정권은 3단계조직의 농협을 현재의 2단계조직으로 개편했으며, 축협중앙회를 탄생시켰다.

-정권 교체마다 ‘개혁 칼날’

YS 정권은 농협이 경제사업을 등한시하고 신용사업에 치중한다는 진단아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신·경)을 따로 떼어 놓아야(분리) 한다고 판단했고 이것이 신·경 분리 논쟁의 시발이 되었다. 결국, 신경분리의 궁극적 목적은 농협중앙회 경제사업의 활성화를 위한 수단으로 제시됐던 것이다.
DJ정권은 농·축협중앙회 통합과 신·경 분리를 농협개혁의 핵심으로 삼고 강력하게 밀어붙였으며, 우여곡절 끝에 농·축협중앙회가 강제로 통합되어 통합농협중앙회가 출범하기는 했으나 신·경 분리 문제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이후 농협의 신·경 분리 논쟁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노무현 정부도 농협을 가만두지 않았다. 2005년 6월 말 농협법을 대대적으로 개정했는데 지역농협에 상임 이사제를 도입하고, 상임조합장 연임을 2회로 제한하였으며, 농협조합장 선거를 선관위에 위탁하기로 했다. 농협중앙회장을 비상임으로 끌어내리고 농협전무대표이사를 신설했으며, 농협 감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등이 이때 개정된 농협법이다.
2008년 12월 9일 이명박 대통령이 가락동 농산물시장 현장을 방문하는 자리에서 “농협이 사고나 치고 정치하려고 든다”는 등의 요지로 농협을 크게 질타한 후 정부는 농협에 개혁의 칼을 휘둘렀다. 난리 법석을 떨며 일차적으로 농협법을 개정했는데 지난 12월 10일자로 발휘된 농협법 개정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농협에 대한 개혁의 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동안 지루하게 끌어오던 농협사업구조 개편 법안이 지난 12월 15일 국무회의를 통과함으로써 그 공은 국회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농협중앙회 사업구조개편 법안의 핵심은 농협중앙회 사업을 농협경제지주회사와 농협금융 지주회사로 2011년까지 분리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당초 경제사업을 강화하기 위하여 시작했던 농협중앙회 신경분리 목적은 엉뚱하게도 신용사업의 자구책으로 그 목표가 바뀌었고, 경제사업 강화는 고사하고 경제사업을 다시 위기로 몰아넣는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개악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빤하다.
정부가 시도한 농협중앙회 신용사업을 농협금융지주로 분리 방안이야 오랫동안 떠들던 내용인지라 이제 모두가 체념해 버린지 오래 되었으므로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러나 문제는 농협 경제사업 체제를 경제지주로 분리한다는 것은 충격이다.
그동안 농협중앙회가 수행해온 경제사업 중 웬만한 사업은 회원 조합으로 넘어 갔거나 자사회사로 만들어져서 지금 남은 것은 지도사업과 경제사업의 경계가 불명확한 채 그 기능이 혼재된 사업만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앙회와 회원조합간 업무추진 과정에서 많은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 기능마저 경제지주에게 넘기고 나면 농협중앙회는 그야말로 빈 껍데기만 남은 셈이다.
결국 비대해진 농협중앙회의 막강한 권한을 분산시켜 농민단체의 힘을 뺀 것까지는 성공한 셈이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윤극대화를 목표로 할 농협경제지주가 회원조합내지는 농민조합원과의 거래에서 대형 할인매장처럼 후려치는 수법을 써도 말릴 자가 없다는 것이다.
농협경제지주가 잘 운영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우려는 농협경제 자회사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결제라인이 있다는 것이다. 현 체제하에서는 경제사업 자회사는 농·축경 대표, 농협중앙회장의 2단계로 의사 결정이 이루어 지고 있지만 농협경제지주 체제하에서는 농·축경 부회장, 경제지주 회장, 농·축경 상임이사, 전무이사, 농협연합회장이라는 5단계의 의사결정 구조가 될 터인데 이러한 체제로 어떻게 경제사업을 활성화해 나갈 것인지 확신이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농협경제지주로 분리하는 것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고 중단되어야 한다. 농협도 금융지주는 상호금융이 남아 있으니 양보하더라도 경제지주는 연기가 아니라 반대 입장을 취해야 한다.

-자율 말할 자격있나

농협 경제지주와 금융지주를 만들려면 23조 4천억원의 자본금이 필요하고 그 중 6조원은 정부로부터 조달 받으려는 농협중앙회의 발상도 한마디로 웃긴다. 정부로부터 6조원이라는 돈을 받고도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안일함에 놀라울 뿐이다. 지금 농협중앙회에 대한 정부 투자가 한 푼도 없는 마당에 이처럼 목을 죄어 오고 있어도 농협에서는 누구하나 쓴 소리 못하는 마당에 자본금의 25.7%(23조 4천억원 중 6조)를 내준 정부가 그 형식이 출연이든 출자든 순한 양이 될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니 순진한 것인지, 고도의 술수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그러고도 농협이 협동조합의 자율과 독립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이제 남은 희망은 국회위원들에게 매달리는 도리 밖에 없다. 그것도 기대할 곳이라고는 양식 있는 야당의원들 뿐인데 그들은 4대강사업, 새해 예산심의, 미디어 법 등으로 너무 지쳐있으니 결국 농협은 정부 시나리오 대로 기능별로 해체되고 공사로 전락하여 농협이 충실한 정부의 시녀이었던 농협 민주화 이전으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여기에서 손해 볼 그룹은 어디에도 없다. 정부는 뜻을 이루었으니 좋고, 농민단체는 눈에 가시처럼 보이던 농협중앙회가 없어지니 역시 승리한 것이고, 농협중앙회 직원들은 “신도 다니고 싶다”는 공사가 될 뿐 아니라 깔끔한 은행업무만 해도 되니 더 행복해 질 것이다.
다만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가축 기르고 농사짓는 농민들은 어찌해야할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하나 있기는 하다. 전국 농협조합장들이 가만있지 않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