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전파 매개’서 차단방역 ‘일등공신’으로 억울했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길광철 수의사는 지난 1~2월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질병전파 매개체’라는 손가락질은 참을 만 했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가족처럼 아끼던 가축들이 땅에 묻힐 때는 도대체 내가 왜 신고했나”라는 후회가 들었다고 털어놨다. 특히 “내가 방문한 모든 농장의 가축을 살처분한다고 할 때는 정말 머리가 빙그르 돌아버릴 것 같았다”고 말했다. 길 수의사는 이번 구제역을 맨 처음 신고했다. 책에서 터득하고, 선배들로부터 배운 대로 빠짐없이 진행했다. 또한 간이키트에서 음성판정이 나왔고 국내에서는 8년간 구제역 발생이 없었던 터라 늘 하던대로 진료행위를 했다. 그렇지만, 그 진료행위 때문에 길 수의사는 질병전파 요인으로 낙인찍혔다. 농가는 물론, 방역관계자, 심지어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까지 그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냈다. 전파요인으로 몰아붙인 역학관계자들이 미웠고 이를 그대로 받아 쓴 언론사 역시 쳐다보기도 싫었다. 길 수의사는 다만, 아는 농가들로부터는 위로전화를 많이 받았고, 고맙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고 했다. 지난달 25일 열린 대한수의사회 정기총회의 주인공은 길 수의사였다. 그를 새롭게 조명했다. 이날 길 수의사는 최초신고와 더불어 구제역 확산방지의 일등공신이라는 평가 속에서 대한수의사회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자리를 함께 한 수의사들은 그간의 수고와 노력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와 격려를 쏟아냈다. 특히 병 주고 약 주는 모양새이지만, 농식품부 역시 길 수의사 공로를 인정해 포상키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번 구제역을 겪으면서 제도가 많이 보완됐다. 신고되면 검역원 등 방역기관이 즉시출동하는 태세가 갖춰졌다. 진단키트 기술에도 상당부분 진척이 이뤄질 전망이다. 아울러 질병을 신고한 뒤 확진이 나올 때까지 수의사 생계비를 보장해 주는 법률이 입안됐다고 한다. 알게 모르게 길 수의사의 마음고생이 발전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