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육·닭고기 주력 수출품목…한국·일본시장 잠재수요 큰 ‘기회의 땅’ 인식 현지 최대기업 아그로수퍼, 빈틈없는 수직통합경영으로 원가 절감·품질 극대 ‘청정 자연환경’ 농식품산업 수출 원동력…업계 조직력·협력체계도 인상적 비행기로 하루를 날아가야 하는 나라. 최신 컨테이너선으로도 족히 30일이 걸리는 나라. 이 먼나라의 돼지고기가 퇴근길 직장인들의 삼겹살 안주가 되고 있다. 지난해 칠레산 돈육은 4만4천톤이 우리나라에 수입됐다. 삽겹살만 3만톤이 넘는다. 수입산 돈육시장에서 미국 캐나다 다음으로 3위다. 2014년부터 칠레산 돼지고기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면 이 순위는 바뀔지도 모른다. 우리 일행이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국제공항에 도착한 8월초 칠레산 닭고기를 실은 컨테이너선이 부산항에 입항했다. 그리고 8월13일 친환경 닭고기라는 수식어를 달고 칠레산 닭고기의 국내시장 진입을 알리는 간담회가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열렸다. 포도주 과일 돼지고기에 이어 닭고기가 수입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칠레의 농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것보다 단단했다. 앞서 방문한 브라질에서 느끼지 못했던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브라질은 광대한 토지를 바탕으로 한 스케일의 농업이었지만 칠레의 농업은 단단하고 야무진 경쟁력의 농업이었다. 도착 다음날 정부청사에서 만난 칠레 농무부 차관과 육류생산자협회 관계자들과의 미팅은 남미의 다른 국가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이들은 한국에서 온 방문객들을 정중하게 대우했고 필요한 자료들을 성의껏 준비해 많은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매너는 세련됐고 영어도 유창했다. 하지만 이들의 관심은 온통 한국시장에 대한 수출이었다. 칠레 농업부 Alvaro Cruzat차관은 “칠레산 닭고기가 곧 한국시장에 도착할 것”이라며 닭고기 수출이 이뤄진 것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블루베리 등 칠레의 과일과 농축산물은 세계 어느나라보다 안전하고 품질이 좋다. 한국 소비자들의 수준 높은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며 한국시장의 추가 개방에 대한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같은 회의실에서 열린 칠레 육류생산자협회(닭고기협회와 돈육협회)와의 미팅에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부처의 고위 관료였지만 민간협회의 설명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정부의 답변이 필요한 부분에만 짧게 답변했다. 58개국과 경제협약…개방 선도국 우리나라 첫 FTA 상대국이었던 칠레는 개방정책을 통해 농식품산업을 키웠다. 놀랍게도 칠레는 세계 58개국과 경제협약을 체결한 개방정책의 선도국가였다. EU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들과 FTA를 체결했다. 우리나라가 수출 드라이브를 통해 국가경제를 키웠듯이 칠레는 수출을 통해 농식품산업을 성장시키고 오늘날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발전했다. 칠레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1만5천불에 육박하고 최근 5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4.5%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선진국의 모임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1번째 회원국이 됐다. OECD 가입은 남미 국가에서는 처음이며 최근 10년만에 처음 가입된 회원국이라고 한다. 10년간 농업수출 성장률 세계 1위 이러한 칠레에서 가장 눈부신 성장을 보인 분야가 농식품산업이다. 지난해 112억불을 수출했으며 수출의 성장곡선은 계속 솟아 오르고 있다. 1996년 49억불이었던 수출액이 132%나 성장했으니 그 성장속도가 무섭다. 칠레 정부는 2010년에도 농업부문의 수출이 5% 정도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997~2007년 10년 사이 성장률로만 따지면 세계 1위라고 한다. 농림수산식품 부문의 생산액이 칠레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4%,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농림수산분야 GDP 비중이 3%가 채 안되고 무역수지 적자가 200억불을 넘어서는 상황이니 비교하기 민망하다. 칠레는 2015년 농식품분야 수출목표를 200억불로 잡고 있다. 2030년에는 620억불을 달성하여 전체 인구의 3분의1이 관련산업에 종사토록 하겠다는 대담한 구상을 갖고 있다. 무모하게 보이는 이 목표는 과연 달성가능한 것인가. 칠레 정부는 ▲세계인구의 증가 (2015년 78억명 전망), ▲ 수명의 증가 (2050년 세계인구의 20%가 60세 이상), ▲ 고부가가치 식품(지중해식 다이어트식품) 수요의 증가, ▲ 가공식품 수요의 증가 (여성의 사회참여와 소비패턴의 변화)로 인해 농식품의 수출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판단하고 그 기회가 칠레에게 있다고 여기고 있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나 다 알고 있는 글로벌 식품시장의 변화 방향이다. 하지만 칠레는 자신들이 가진 자연환경과 기후, 글로벌 시장에서 다져온 경쟁력, 정부와 관련 업계의 협력, 선도기업이 이끄는 강력한 인테그레이션으로 이같은 변화의 흐름을 자신들의 기회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애그리비즈니스 분야에서도 괄목할 성장을 보이는 분야는 육류산업이었다. 돈육과 가금육(닭고기, 칠면조고기)분야는 세계 각국으로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이 나라 육류의 주력은 닭고기. 2009년 59만8천톤(도체중량)을 생산(이중 85%가 닭고기 나머지 15%는 칠면조육)해서 12만톤을 수출했다. 수출액만을 따지면 전년대비 20%가 늘었다고 한다. 가금육으로만 2억6천만불어치를 수출했고 2015년에는 이 품목에서만 5억불을 수출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국시장의 개척이 필요하고 8월에 그 신호탄을 쏘았다. 수출로만 보면 돈육의 비중이 더 크다. 칠레의 돈육산업은 최근 10년 사이 연평균 8.6% 성장하고 있다. 10년 동안 8.6배 커졌다는 의미다. 지난해 51만톤을 생산해서 21만톤을 해외에 내다 팔았다. 돈육으로만 3억6,800만불을 벌어들였고 2015년에는 8억불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칠레 돈육의 최대 시장은 일본과 한국이다. 지난해 수출국 비중으로 일본이 34%, 한국 31%를 차지했다고 한다. 전체 수출량의 65%가 태평양을 가로질러 일본과 한국으로 가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은 돼지고기 부위별 선호가 다르고 같은 배로 수송할 수 있으니 칠레로서는 기막힌 시장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칠레는 한국의 수입돈육 시장에서 미국 캐나다 다음으로 3위에 올라 있다. 가격과 품질에서 유럽을 제친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와 같은 스케일을 갖지 못하면서도 강력한 경쟁력을 발휘하는 칠레 식육산업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우리는 칠레정부와 육류생산협회와의 미팅, 최대 기업인 아그로수퍼의 현장을 방문한 뒤 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우선 자연환경이었다. 칠레는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인정하는 구제역 무백신 국가, 돈콜레라 청정국가다. 2009년에는 BSE에서 관해서도 경미한 위험국으로 지위가 격상됐다. 가축이건 식물이건 질병 발생으로부터 안전한 국가라는 점이다. 남북으로 길게(4,200㎞) 뻗은 국토가 서쪽으로는 태평양, 동쪽으로는 안데스 산맥, 북쪽으로는 건조한 사막지대, 남쪽으로는 남극으로 차단되어 있다. 천연의 요새인 셈이다. 포도 과일 야채 올리브 등의 생산에 적합하고 기온의 변화가 크지 않아 계절의 변동과 관계 없이 가축생산이 연중 안정적으로 가능한 것이다. 농업으로는 축복받은 나라인 셈이었다. 두 번째는 수직통합된 경영시스템이었다. 종축과 사료, 사육, 가공, 유통, 판매의 공급사슬이 빈틈없는 연결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특히 아그로수퍼는 모든 분야를 직영하는 완전 수직통합경영으로 원가와 품질 경쟁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있었다. 식육관련 기업들은 수출국이 요구하는 위생과 품질기준을 맞추기 위해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면서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었으며 질병 청정화와 환경규제 및 동물복지에 부응하는 기준을 갖추는데도 애쓰는 모습이었다. 정부 규제보다 자율경쟁 유도 세 번째는 정부의 개방정책과 시장경쟁 칠레정부는 특정기업의 국내시장 점유율이 70% 가까이에 이르러도 규제하지 않았다. 독점의 폐해가 없느냐는 질문에 시장 점유율보다는 시장가격의 교란 요인의 발생여부를 감시한다고 말했다. 국내시장에서도 외국기업들까지 가세해 자유롭게 경쟁하는데 정부가 점유율을 제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업계의 조직력과 협력체계도 인상적이었다. 칠레의 돈육생산자협회(ASPROCER - Asociacion de Productores de Cerdo de Chile)와 계육생산자협회(APA-Asociacion de Productores Avicolas de Chile A.G.)는 한 몸이나 다름없었다. 협회의 이름만 다를 뿐 회장( Juan Miguel Ovalle)도 같고 사무실도 함께 쓰고 직원들도 공동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품목이 다를 뿐 수출을 통해 육류산업의 키우고 경쟁력을 더 기르자는 목표가 일치하고 있었다. 해외로 수출하는 육류에 대한 공동상표도 개발 사용하고 있다. 협회장은 업계의 대표로서 권위와 리더십을 갖추고 있었다. 원숙한 풍모에서 풍기는 리더십과 권위,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는 전문성과 막힘없는 영어 실력도 갖추고 있었다. 칠레의 축산업과 식육산업이 자국내에서 갖는 지위와 산업의 권위를 이들에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칠레의 농축산업은 작지만 강했다. 이들은 세계 시장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식품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들이 가진 강점을 최대한 살리며 산업을 발전시켜 가고 있다. 이들의 경쟁력이 커지고 부가가치가 높아갈수록 우리의 축산업과 식품산업은 위축될 것이었다. 칠레는 지구 반대편의 먼 나라가 아니라 우리의 축산업과 식품산업을 위협하는 보이지 않는 경쟁자였다. 문제는 우리가 그들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