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이일호 기자]
농가·육가공, ‘박피’ 대표성 상실 공감…협상 본격화될 듯
지급률 조정폭 놓고 큰 시각차…일부 등급별 정산제 추진도
농가 “탐탁치는 않지만…”
농림수산식품부는 도매시장 돼지경락가격 대표성 강화를 위해 지난 1일부터 농식품부의 대표 기준가격을 기존의 박피가격에서 상장물량이 많은 탕박가격으로 조정한다고 밝혔다.
박피가격의 대표성에 의문을 제기해온 육가공업계는 전반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탕박으로 기준가격 변경과 함께 충분한 지급률 상향 조정이 뒤따르지 않는 한 직접적인 손실이 불가피한 양돈농가들은 “개인간의 거래에 까지 영향을 미칠수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무작정 반대를 외칠수 만은 없는 처지.
박피가격의 대표성 상실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인 만큼 이미 정부 방침이 확정된 상황에서 이를 되돌릴 만한 마땅한 명분을 찾기 힘들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내 도축물량 가운데 탕박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08년 88.2%에서 지난해 95.7%까지 확대됐다.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았던 도매시장에서도 지난해 74.8%를 차지하는 등 매년 탕박거래량이 증가해 왔다. 더구나 박피물량이 감소, 큰 폭의 가격변동이 반복되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자 일부 양돈농가들 사이에서도 대표가격에 대한 개선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주판알 두드리기’ 한참
그러다보니 이제는 정부 방침이 가져올 영향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는 양상이다.
이번 조치로 당장 정부 발표 모든 통계지표가 변경될 뿐 만 아니라 정부 보상금 산정시에도 탕박 가격이 적용되게 됐다. 각종 분쟁시에도 탕박가격이 활용될 전망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관심사는 민간에서 이뤄지고 있는 돼지가격 정산방법의 향방이다.
강제성은 없더라도 이번 정부 방침은 어떤 형태로든 박피가격을 기준가격으로 적용해 왔던 육가공업계와 양돈농가간 돼지가격 정산체계의 변화가 본격화되는 도화선이 될 것이라는게 전반적인 시각이다.
아직까지 표면화되지 않고 있지만 육가공업계나 양돈농가들은 저마다 주판알 두드리기에 한참이다.
한 양돈농가는 “우리(농가) 입장에서는 기존의 박피가격 정산제 유지를 바라고 있다”며 “하지만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지금처럼 공급량이 달리며 양돈농가가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에 있을 때가 적기라는 시각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정부의 대표가격 변경 발표를 계기로 정산방법 변경과 함께 자급률 조정을 육가공업계에 요구하고 나서는 사례도 속속 확인되고 있다.
육가공업계도 탕박을 기준가격으로 하는 정산방법 개선이 ‘나쁠게 없다’ 는 입장인 만큼 본격적인 양측이 ‘협상테이블’에 앉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성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5~6%p는 돼야”
하지만 육가공업계와 양돈농가간 협상이 이뤄지더라도 쉽사리 합의점을 도출해 낼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기준가격 변경시 지급률의 조정에 대해서는 양측모두 공감하지만 1% 미만의 지급률 차이만으로 연간 손익에 적잖은 영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양돈농가들은 최소한 정산가격 변경에 따른 손실은 없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탕박의 경우 일반적으로 박피 보다 지육률이 높은 반면 가격은 낮게 형성되고 있는 만큼 기준가격 변경이 이뤄질 경우 최소한 5~6% 정도의 지급률 상향요인이 발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피와 탕박이 동일한 수준의 가격이 산출될 수 있도록 하거나, 탕박과 박피의 지육률 차이만큼 지급률이 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8~2011년 4년간 평균가격은 박피가 지육kg당 4천710원, 탕박은 4천383원으로 kg당 327원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박피의 지급률 70%를 기준으로 탕박의 지급률이 75.22%는 돼야 동일한 가격으로 정산이 이뤄질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러한 접근방법이라면 박피와 탕박의 지급률 조정폭은 5.22%P가 되는 셈이다.
“현실적으로 무리”
이에반해 육가공업계는 구체적인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며 저마다 공식적인 언급은 피하고 있는 분위기속에서도 양돈농가들의 주장을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형육가공업체의 한관계자는 “근래들어 돼지공급 부족현상이 지속되면서 지급률이 비현실적으로 높게 형성되고 있다”며 “더구나 지난해부터는 탕박과 박피의 가격차가 크게 줄었을 뿐 만 아니라 탕박가격이 더 높게 형성되는 경우도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5%p 이상 지급률을 높이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육가공업계 일각에서는 2%가 적정선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양돈농가와 육가공업계간 갈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또다른 육가공업체 관계자는 “아직까지 돼지가 부족한 상황에 섯불리 선두에 나섰다간 농가들의 집중포화를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따라서 양돈농가와 협상이 본격화되면 육가공업체들 마다 눈치보기가 치열해 질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따라서 정산방법 변경이 지연되거나 당분간 수면아래로 가라앉을 수도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돼지 공급 증가가 예상되는 하반기 들어서는 육가공업계 주도하의 정산방법 변경 시도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존의 생체 정산방식에서 벗어나 아예 등급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육가공업체도 출현하고 있어 향후 추이에 양돈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