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이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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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타결 어떻게 이뤄졌나‘출하중단’ 배수진…정부 ‘협상’ 선회
삼겹살 할당관세 수입을 둘러싼 정부와 양돈업계의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전국 돼지출하 일제중단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오후 3시30분경 과천 정부 청사에서 이뤄진 만남이 첫 공식 협상자리였던 만큼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실제로 대한한돈협회가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정부 투쟁을 공식 선언한 이후에도 정부는 양돈농가들이 적자상황은 아니었음을 주장하면서 ‘수입철회는 없다’는 기존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양돈업계의 출하중단 예고가 각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핵안보정상회의와 총선에 쏠려있던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책임 소재를 떠나 출하 중단에 따른 돼지가격 폭등시 가장 큰 피해자는 소비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여론이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총선을 눈앞에 둔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가 탄력적인 할당관세 운용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그동안 양돈업계 설득 수준을 넘지 않았던 정부의 행보가 협상쪽으로 급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하중단만은 막아보자’ 는 공감대가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 형성된 것이다.
출하중단이 자신들의 ‘최후의 카드’ 였던 양돈업계로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무조건 외면할 수는 없는 처지였다.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내는데 일단 성공했지만 정부와 대치국면이 장기화될 경우 양돈현장의 피해가 누적, 출하중단 대열에서 이탈하는 현상이 도미노처럼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더구나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하게 되면 어떠한 ‘출구전략’ 도 무의미할 뿐 만 아니라 양돈업계가 걷잡을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가 대정부 투쟁을 주도해온 한돈협회 집행부에게는 큰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상황에 소비자 단체의 압력은 정부와 양돈업계 모두를 전향적인 태도로 협상에 임하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회장 김연화)가 지난달 30일 성명을 통해 생산기반과 국민 먹거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대화를 통해 사태해결에 나설 것을 양측에 주문한 것이다.
정부가 할당관세 물량 5만톤 감축이라는 파격적인 수준까지 물러난 것이나, 한돈협회가 ‘수입이 철회되지 않는 한 출하중단은 강행돼야 한다’ 는 양돈현장의 여론을 외면해가며 첫 공식협상 자리에서 정부와 손을 잡은 것도 이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양돈업계 무엇을 얻었나
정부·국민에 양돈산업 존재감 각인
양돈업계의 이번 대정부 투쟁은 할당관세 물량 감축과 하반기 돼지가격 하락시 정부지원 확대라는 경제적인 측면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는게 무엇보다 큰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양돈산업의 존재감을 정부와 국민들에게 각인 시키는 한편 양돈농가들의 결집과 함께 그 힘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돈협회가 대정부 투쟁 선언과 함께 농장경영에 큰 타격이 불가피한 돼지출하 일제중단을 어떠한 전제조건도 없이 전격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양돈농가들은 물론 관련 조합들도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이번 출하중단에 동참치 않을 경우 대한민국에서 양돈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압박감이 양돈현장에 팽배해지면서 도축장과 육가공업체들도 속속 지지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경기도의 한 도축장 관계자는 “양돈농가들이 이번처럼 똘똘 뭉치는 모습은 처음”이라며 “(출하중단 동참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돈협회의 한 관계자는 “한-EU, 한-미FTA 발효나 지난해 첫 할당관세 수입이 이뤄지는 과정에서도 양돈현장의 심경을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게 우리들의 현실이라는 상실감이 농가들 사이에 만연해 왔다”며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신감을 되찾게 됐다”고 분석했다.
■남은 과제는
하반기 돈가폭락 서둘러 대비해야
이제는 하반기 가격폭락 대책에 모든 양돈업계가 힘을 모아야 할 시기라는데 이견이 없다. 최근의 경기침체와 수입육에 의한 시장잠식, 그리고 사육두수 증가세속에서 웬만한 대책으로는 약효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그 배경이 되고 있다.
이에따라 이번 정부협상에서 약속된 상시 T/F팀을 지금부터라도 가동, 장단기 대책을 수립하고 바로 실천에 옮기는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 선제적 대응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협상과정에서 두배로 늘어나게 된 정부의 민간자율비축자금이 보다 현실적인 방법으로 지원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돼지고기 수입이 정부의 물가정책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 가격폭등시에도 민간차원의 보다 능동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양돈업계의 대외활동 방향이 점차 다각화돼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전국의 양돈농가가 7천호를 밑도는 것으로 추정되는데다 그나마 갈수록 감소하고 있는 만큼 정치세력화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양돈업계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양돈업계 원로는 “사안이 생길 때 마다 출하중단을 하겠다고 윽박지를 수는 없지 않느냐”며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농업인으로서 입지를 유지하면서도 각계 요로에 양돈산업의 우군을 만드는 노력이 상시화 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양돈업계 대정부 투쟁 일지
3월20일
기재부, ‘수입삼겹살 할당관세 수입적용기한 연장·7만톤 추가’발표
3월21일
한돈협회, 할당관세 수입 즉각 중단 및 철회 촉구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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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돈협회 1차 긴급대책회의, 출하중단·총궐기 등 강경대응 입장 확인
3월26일
한돈협회, 기자회견서 대정부 투쟁 공식선언-농성돌입
2차 긴급대책회의, 4월2일 출하중단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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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유성서 전국양돈지도자 ‘출하중단 적극 동참’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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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돈협회 비상대책회의, 대정부 협상단에 권한 일임
과천 정부청사서 정부-한돈협, 협상 타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