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체, 시장 주도권 좌우 ‘관납’ 영업 유통업체 의존 일색
화려한 성장 불구 고마진 유통구조에 속수무책
“재주는 곰이 부리고 왕서방 배만채워” 볼멘소리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 국내 소독제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곰은 제조업체, 왕서방은 유통업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지난해 FMD 여파로, 소독제 붐이 일었지만, 실상 제조업체 손에 남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유통업체가 대다수를 가져갔다. 왜 그럴까. 따지고 들면, 결국 소독제 유통구조 문제가 걸려든다.
지난해 국내 소독제 시장규모는 570억원을 넘어섰다. 전년대비 22% 가량 늘어난 수치다. 2~3년 전 200억~250억원과 비교해 보면, 소독제 시장이 단시간에 얼마나 성장했는 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소독제가 침체된 동물약품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활짝 웃고 있어야 할 소독제 제조업체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밖에서 생각하는 ‘대박’ 분위기는 아예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예전이 나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역 곳곳에서는 소독제 전문 제조업체가 생겨났고, 소독제를 구색으로나 여겼던 나름 동물약품 종합 제조업체도 소독제에 많은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경쟁이 심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제조업체 참여 증가는 유통업체 마진율만 대폭 올려놓는 결과를 낳았다.
국내 소독제 시장은 관납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지자체 등이 소독제를 일괄구입해 농가, 방역기관 등에 나눠주는 게 일반적인 행로다.
그렇다보니, 관납성패 여부가 소독제 시장 주도권 향방을 좌우하게 된다.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관납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마땅한 판로가 없다보니, 관납 알선업체 또는 대리점, 판매점 등 기존 소독제 유통망을 활용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하지만, 능력있는 유통업체는 한정적이다. 제조업체들은 어쩔 수 없이 이들 유통업체에 몰리게 된다.
유통업체들은 보통 적게는 3~4개 품목, 많게는 수십 품목 소독제를 취급한다. 유통업체들은 당연히 마진율이 높은 제품에 주력하게 된다.
한 관계자는 “소독제 효능은 대동소이하다고 본다. 일정 기준, 즉 FMD 효능평가라든가 조달청 등록 등을 충족하면 된다. 마진율이 경쟁력이다”고 설명했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마진율이 낮다면 안팔면 그만이다. 다른 제품이 워낙 많기 때문에 특정제품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제조업체는 다르다. 여기 아니면 팔 곳이 없다. 유통업체에 목매달아야만 한다.
결국 제조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유통마진율을 올려줘야만 했다. 이러한 사업모델이 만들어지면서 유통마진율은 끝없이 올라갔다. 경쟁사 제품 팔면 100원 남지만, 내것 팔면 110원 남는다고 유통업체의 손길을 당부했다.
현재 소독제 유통마진율은 업체마다 차이가 크지만, 보통 40~60% 수준이다. 소비자가 1천원 짜리 소독제를 하나 사면, 500원 정도가 유통업체 몫으로 돌아간다. 제조업체 마진율을 훨씬 넘어선다. 물론, 관납영업이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반 동물약품 마진율이 15~30%이라고 봤을 때 소독제 마진율은 너무나 높다.
제조업체들이 조달단가를 높이려는 이유 역시 유통마진율과 맥을 같이 한다. 어차피 제조업체들이 유통업체에 공급하는 가격은 똑같다. 하지만, 조달단가가 높다면, 유통업체들은 판매가격을 유연하게 조절해 마진을 챙길 수 있다.
제조업체로서는 높은 유통마진율을 보장해야만, 유통업체들이 외면하지 않으니 애써 조달단가를 높이려고 하는 것이다.
시장에 2천배 이상 희석배수를 가진 소독제가 수두룩한 것도 어쩌면, 조달단가를 끌어올리려는 제조업체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높은 희석배수는 아무래도, 조달단가를 높이는 수단이 된다.
제조업체들은 특히 소독제에서 불기시작한 과도한 유통마진율이 점차 일반 동물약품으로 옮겨붙는 추세라고 불만을 터뜨린다. 재주는 제조업체가 부리고 있지만, 결국 유통업체 배만 불리는 꼴이 되고 있다고 토로한다.
사실, 소독제에 잔뜩 끼어있는 가격거품을 걷어낼만한 마땅한 해답은 보이지 않는다. 한두 제조업체가 유통마진을 내린다고 해서, 유통업체들이 흔들릴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내 제품을 팔지않아도 된다는 소리로 들릴 뿐이다.
모든 제품이 한꺼번에 그렇게 한다면 가능할 수 있다. 쉽지 않은 문제다. 다만, 제조업체들은 시장을 이끌만한 제품을 개발하거나, 아니면, 장기적인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