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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섬세함은 목장 경쟁력…자부심 갖고 역량 개발 힘써야

■서울우유조합 발전과 여성의 역할/ 본지 좌담회 지상중계

기자  2012.09.17 13: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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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 윤여창 원로(서울우유)

- 손명란 대의원(길평목장) 

- 신재칠 대의원(장호원목장) 

- 백화영 차장(묵동지점)

- 서지혜 대리(광고홍보실) 

<이상 무순>


◇일 시: 2012년 9월 6일(목)  ◇장 소: 본사 4층 회의실

◇사 회: 조용환 상무 ◇기 록: 이희영 차장 ◇사 진: 김길호 부장


동등한 위치서 목장경영 분담...사회진출 독려 정책적 뒷받침을


사회=공사다망하심에도 불구하시고 오늘 자리를 함께 해주신 참석자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우선 오랜기간 서울우유 발전에 기여한 윤여창 원로님께서 말문을 열어 달라.  


▲윤여창 원로=고향 식구들을 만난 것 같다. 본인은 68년도에 개간을 시작하고 양계와 양돈도 했다. 그렇지만 판로에 애로가 있어 낙농으로 전환했다. 68년 10월 1일 서울우유조합에 가입(조합원 번호 776)하고, 도시화로 99년 목장을 폐업할 때까지 30년 4개월 26일간 납유를 했다. 납유일은 1만1천92일이다. 

십 수 년 전에 故신형태 교수(성균관대)는 후진을 위해 함께 책을 쓰자고 제의를 해왔었으나 무산이 됐다. 본인은 지난 30년 동안 납유를 할 때의 기록이나 행사장에서 받았던 각종 리본과 모자들이 정이들은 나머지 버리지를 못하고 지금까지 모아두어 아파트 거실과 방에 쌓여있다. 

본인이 목장을 시작할 때는 컴퓨터는 물론 기계화가 덜 된 시대로 기록이 그리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왜 했느냐 하면 기록은 곧 사업이며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낙농은 투자하는 사업으로 뭘 알아야 하기 때문에 기록을 했다.

낙농참여 초창기는 유대가 월 3회 나왔다. 착유도 매일 3회 실시했다. 그런데 농업은 비 계산적이었고, 대충주의식이었다.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하여 기록과 계산을 중시했다. 0.1kg까지 꼼꼼하게 계산했다.

내가 하는 행동을 보고 많은 사람이 비웃었다. 물론 보성고와 서울농대를 나온 본인과 경기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약학대학을 졸업한 妻가 50년 전에 시골로 귀농한다고 할 때 주의에서는 모두 이상하다고 했고, 오해도 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도 서울로 올라갔었을 때였으니 말이다.

낙농은 요즘에도 월 2회 유대를 받는다. 24모작인 셈이다. 보름 경영은 아주 쉬운 일이다. 얼마를 벌지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낙농은 절대 상인하고 싸울 일도 없다.

70년대 초 서울우유에서 초대 대의원을 역임도 했다. 그런데 남성들은 대부분 근시안적으로 당장 눈앞의 헛된 꿈만 봤다. 결국 대의원 총회는 둘로 분열되기도 했다. 일부 남성들은 아직도 고질적인 지연, 혈연, 학연을 중시하여 갈림이 많다. 그런 연유로 여성의 역할은 더욱 중요시 되고 있다. 당시 한명도 없던 여성 대의원이 현재 7명으로 늘었다고 하지만 앞으로는 1/3로 늘어나야 할 것이다.


여성의 능력, 정치·경제·문화 등 다방면서 재평가

이젠 ‘암탉이 울면 황금알 낳는다’는 긍정표현으로

가사에 육아까지…여성 능률향상 위한 배려 절실 


▲손명란 대표=4대째 대의원을 하고 있다. 참석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혹여 실수를 하지 않을까 걱정 반 우려 반이다.

오늘의 서울우유는 과거 원로 조합원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현재 지원금도 많고, 환원금도 많아서 참으로 괜찮은 조합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동안 원로조합원들의 공로 때문이다. 

앞으로 보다 위대한 조합으로 거듭 나기 위해서는 걸림돌을 하나하나 치워야 한다. 우선 조합 구성원들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의식전환이 안되면 위대한 조합으로 가기가 지난하다. 우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일은 그 다음이다.

사람은 동반자와 동반자가 아닌 사람으로 구분되어야 한다. 조합이 잘 되려면 진짜 일할 사람과 봉사하는 사람도 선별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일부 지도자는 감투에 연연하고 이해관계에 얽혀있는 것 같아서 편견이 생기고, 분열을 낳고 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있다. 요즘에는 ‘암탉이 울면 황금알을 낳는다’고 한다. 그만큼 여성의 능력이 정치·문화·사회 등 다방면에서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포천에서 열린 여성낙농인 심포지엄에 참가를 했다.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또는 역할을 많이 하기 위해서는 법률적으로 불이익이 많이 따르고 있음을 읽었다.

가령 지역축협과 쇠고기 이력제는 남편으로 돼 있고, 서울우유 조합원은 본인이 맡고 있다. 따로 하는 것은 아니라 우리부부는 그동안 그렇게 일을 해 왔는데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지 않으면 면세를 받을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명의를 하나로 묶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는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느 한사람으로 명의를 통일 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대부분 목장의 남편은 아내에게 명의를 주지 않는다. 따라서 많은 여성은 고민을 많이 한다. 본인도 본인의 명의로 돌려라 해서 모든 것의 명의를 바꾸다보니 너무 복잡하다. 이런 부분은 정부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단순하게 개선해 줘야 옳다.

서울우유는 많은 여직원이 있다. 그런데 본인이 대의원하는 동안 임단협 협상을 감안하면 여성이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사실이다. 육아문제에서부터 시부모를 모시고, 살림살이를 해야 하는 등으로 여성이 하는 일은 산더미다.

그런데 우리조합은 여직원 복지 문제가 임단협에는 하나도 안 들어가 있다. 조합에서 배려하지 않으면 여직원들의 능력개발은 어렵다는 사실이다. 정부도 복지 개선을 위해 육아문제를 중요시하여 어린이집 등을 만들고 있다. 

따라서 전부 남직원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임단협에 여직원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면 여성이 사회생활에서 좀 더 다가가고 조합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백화영 차장=88년 공채 10기로 고졸사원으로 입사했다. 당시 함께 입사한 여성사원은 9명이었다. 일부 남직원들은 “여성들에게는 잘해줄 필요가 없다. 평생을 같이할 직원은 남자다”라는 인식이 팽배하여 차별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본인이 서울우유에 근무한 기간이 내년이면 4반세기가 되다보니 많이 변했다. 신용사업부문만 해도 13개 신용점포에 지점장 1명과 차장급으로 승진한 여직원도 본인을 포함하여 10명을 상회한다. 물론 실적이 좋고 고객의 반응이 좋아서다.

근년 들어 40대 여성 직장인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불황으로 경기가 안 좋다보니 많은 기업이 여직원을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본인은 안정된 직장! 서울우유에서 근무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따라서 남직원 보다 더 열심히 근무한다. 책임감도 비례하여 커져서 업무는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평생 다녀야할 직장이기 때문이다.

다만 신용사업부문은 기간계약제 여직원들이 많다. 다른 농협보다 근로조건이 썩 좋은 조건은 아니다. 그렇다고 업무량도 많지는 않지만 봉급이 적다보니 일을 가르쳐주면 대부분 다른 곳으로 간다. 

또한 기간계약직원은 7급과 6급을 채용하는데 7급 정리가 안 되어 있다. 신용업무 특수 업무로 생산직인 공장과는 다른데도 직급상으로 비교가 되기 때문에 좋은 인력이 빠져 나가는 것은 안타깝다. 신용사업은 신뢰가 중요하다. 꿈과 승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직장인들 사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삼성그룹은 굉장히 냉정하다고 한다. 반면 우리 서울우유는 가족적이다. 협동조합이다 보니 가능한 것이다.


▲신재칠 대의원=여성의 역할 주제로 생각을 해봤다. 대부분 목장은 부부가 함께 경영을 하는데 남편들은 아침에 착유를 하고나면 집 밖으로 나가서 저녁때 착유시간에 맞춰 들어온다. 따라서 온 종일 목장에는 여성만 있다. 

결혼 전 직장생활을 하다가 시골에 와서 살다보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도 있었지만 젖소를 쳐다보는 것이 일과였다. 목장에 대하여 아무것도 몰랐었지만 젖소의 상태를 계속 바라다보니 서서히 알 수가 있었다. 

이제는 젖소의 눈동자만 봐도 기분이 좋은지 아니면 침울한지를 알겠다. 또 걷는 모습을 보거나 착유실에 첫째로 들어오던 개체가 꼴찌로 들어오면 어디가 심하게 아프다는 것 등 젖소 개체별 컨디션과 상태를 통해 질병유무도 알 수 있게 됐다.

남성과 여성의 두뇌는 다르다. 때문에 느끼는 감성도 다르다. 가령 백화점을 갈 때 여성끼리는 두말없이 가고 서로 느끼는데 남편과 갈 경우는 왜? 라는 물음표가 우선 따라 붙었다. 성별의 차이는 크다.

모든 가정과 직장이나 조합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 남성이 큰 그림을 그린다면 여성은 그 큰 그림 안에 내면을 채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목장의 경우를 보더라도 남성들은 모든 일을 대충하는 식이다. 반면 여성들은 꼼꼼하여 그렇게 내면을 차곡차곡 채우는 목장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반면 여성이 꼼꼼하지 못한 목장은 쪼그라들고 심지어 닫게 되더라.

모든 여성은 지금 처한 현실을 당당히 지켜야 한다면 날 도와줘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이 세상은 각박하고 외롭고 끝없는 전쟁이다. 따라서 내가 여성으로서 남성과 동등하려면 그에 견줄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더 노력하고 세미나도 열심히 다니는 등 솔선수범하여 자기 그릇을 키워야 한다. 가정이나 직장도 마찬가지다. 리드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리드해 나가야 한다. 마음의 훈련과 몸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자리에서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내 길을 가는 것이다. 이런 노력으로 700kg에 머물던 하루 납유량은 지난해  2톤을 넘어서 쿼터도 샀다.

▲서지혜 대리=여성상이 많이 변했다. 생각을 읽지 못하면 미래에 대처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대통령 후보자가 여성이 나왔다. 조합의 대의원도 여성이 7명이나 된다. 앞으로 그 수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조합직원도 근년 들어 여직원이 많이 늘고 있다. 수학연한도 길어지고 있으며 남직원 보다 더 많이 뽑고 있다. 생산직인 공장은 남성들이 많지만 본 조합에는 여성이 많다.

본인은 2008년에 입사했다. 당시 조합은 적자가 났고, 2010년 초겨울부터 2011년 봄까지 몰아닥친 FMD로 인하여 조합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지만 그런 어려움과 재앙을 이겨내기 위해 많은 임직원이 노력했다. 본인도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해병대 훈련을 다녀왔다. 해병대훈련은 지난 3월과 5월에 각각 1박2일간씩 진행했는데 굉장히 힘들었다. 남자랑 똑같이 훈련을 받았다. 

훈련에 참여한 직원이 한 직원도 낙오 없이 이수를 했다. 서울우유는 대단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직원들의 단합된 모습을 지금 생각하면 감개무량하다.


농업경영체 등록시 ‘부부 공동명의 인정’ 제도개선을

총원의 6% 불과한 여성 대의원, 소신있는 역할 귀감 

‘조합 발전이 곧 나의 발전’ 마인드 전환서 출발해야 


▲신재칠 대의원=서울우유 여성대의원은 7명으로 총 대의원수 116명 대비 6%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재 남성대의원 가운데 일부는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남의 말만 듣고 움직이는 경우가 있지만 여성대의원은 그렇지 않다. 소신을 갖고 얘기를 하고 있다. 누구를 따라가지 않는다.

남성들은 군중심리에 의해 움직이지만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서울우유의 발전을 위해서는 직원들의 마인드가 전환돼야 옳다. 협동조합은 손실이 나면 조합원이 희생하고 직원들도 희생해야 한다.

직원들은 내 평생직장이라 생각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투명하게 모든 행정을 깨끗하게 하면 직원들은 건강해 질 것이다. 

누가 뭐래도 옳은 일인지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손명란 대의원=서울우유는 위대한 조합이다. 위대한 조합은 몇 년 전에 흑자를 얼마 안내다가 적자를 보기도 했다. 또 몇 년간은 많은 흑자를 냈다. 일반 기업체는 가족이라는 표현을 안 쓰지만 서울우유는 가족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근년 들어 많은 조합원이 지원금을 많이 받고 있으며, 환원사업 혜택도 받는 것은 선배 조합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재삼 강조한다. 우리조합은 희망이 분명히 있다. 여성 종사자에 대한 혜택을 강구했으면 한다.

▲윤여창 원로=과거에는 가족끼리 농사를 져도 남성이 하는 일만 표시가 났다. 따라서 많은 남성은 갖가지 구실을 만들어 집에서 빠져나가곤 했다. 

그러나 부부는 같은 일을 함께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좋다. 그런 일은 농업이 유일하다. 목장을 처음 할 때 본인의 나이는 30세였다. 당시 인생은 60이라고 했다. 세상사 절반을 살아서 남은 인생 30년을 妻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목장이라고 생각했다.

3급 공무원이던 妻와 목장을 한다하자 많은 사람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항의까지 받았다. 그러나 남은 인생을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이 농업이라는 나의 본심과 진리를 읽은 사람들은 공감했다.

당시 기관으로부터 ‘새농민 상’을 받았는데 남성인 나만 주더라. 농업은 내조가 뒤따라야 더 좋은 결실을 맺게 마련인데 말이다. 따라서 그 이후로 어떤 행사든지 부부가 함께 받도록 건의하여 현재까지 실행되고 있다.

내외가 목장 밖을 나올 경우라도 함께 다니길 권유한다. 어떤 일도 같이 다녔으면 한다. 우리 부부는 내가 볼일이 있거나 부인이 볼일이 있어도 함께 다닌다. 아무튼 여성낙농가는 자부심을 갖고, 체력 관리를 잘하길 바란다.

▲사회=서울우유조합과 여성의 역할에 대하여 장시간 열띤 토론에 응해주신 참석자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