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27주년 제1특집
민원에 우는 한국축산
경기도에서 돼지 2천두를 사육하는 A씨는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며 지난해 FMD로 돼지를 묻은 이후 1년이 넘도록 재입식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물론 해당기관으로부터 재입식 허가는 받았지만 법보다 무서운 민원법이 A씨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농장문 앞까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30년을 넘게 해온 양돈업을 계속 해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각종 민원으로 인해 축산업이 멍들고 있다. 단순히 ‘신경쓰이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있다. 상대적으로 강도가 심한 축종의 경우 사육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주요인의 하나로 지목될 정도다. “민원 때문에 못해먹겠다”는 양축농가들의 푸념이 이젠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농장 신축, 까다로운 기준 충족해도 민원 접수땐 ‘스톱’
공무원 “난감하니 소송하라” 공공연히 권유…부담 가중
증개축시도 ‘주민동의서’ 명문화…사실상 시한부 양축
축산 제대로 알리기 홍보·악의적 민원 제동장치 절실
축사 신축 ‘하늘의 별따기’ 충남에서 종돈장 신축을 모색하던 B씨는 최근 관할군청으로 행정소송을 권유받았다. 신축에 필요한 인허가 절차를 모두 밟고 수없는 설득 끝에 마을 주민의 동의까지 받아놓았지만 이번엔 멀리 떨어진 건넛 마을 주민들이 들고 일어선 것. “군청관계자가 절차상 아무런 하자가 없어도 민원 접수되면 허가를 쉽게 내줄 수 없다고 하더라. 그러나 법원판결을 받아오면 ‘군청입장에서도 어쩔수 없었다’는 변명이라도 주민들에게 할 수 있으니 번거롭고 불편하더라도 사정을 봐달라고 하소연하는데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B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농장 신축은 이제 법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불가능하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축을 사육하는 농장이라면 거리에 관계없이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보는 주민들의 등살에 대부분 지자체들이 농장신축시 절차에도 없는 주민동의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농장을 사육하고 싶으면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한다는 속설도 이젠 과거의 이야기가 되버린지 오래다. 양축농가들은 “지자체에 따라서는 지방조례를 통해 주거밀집지역으로부터 최고 2km까지 가축사육을 제한하고 있다. 이 규정을 피해 부지구하기도 어려운데 주민동의까지 받을수 있는 신축부지가 대한민국에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농장신축을 검토하고 있는 양축농가들은 ‘소송’을 당연히 거쳐야할 절차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증·개축까지도 무조건 터부 증축은 물론 민원 해소를 위한 개축까지도 민원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강원도에서 20년간 양돈장을 해온 C씨는 무려 농장개축을 시작한지 2년만에 비로소 완공을 할 수 있었다. 관할시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농장 리모델링 사업이 착공에 돌입하자 주민들이 ‘결사반대’를 외치며 공사를 막고 나선 것. C씨는 “사육두수를 늘리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냄새나지 않고 가축분뇨로 인한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공사를 한다고 해도 막무가내 였다”며 “주민들의 요구는 기존 시설에서 할때까지 하다가 한계에 도달하면 양돈을 그만두라는 것이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물론 1년6개월에 걸친 지리한 법정공방 끝에 승소, 리모델링 공사를 마무리할수 있었지만 지금도 주민들과 동화되지 못한채 긴장속에서 양축을 지속하고 있다. C씨의 사례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많은 지자체들이 가축사육제한구역 지정 이전에 지어진 축사라도 증개축시에는 주민동의를 받도록 조례에 명문화, 해당농가들로서는 법에 호소해도 구제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결국 시한부 양축이 불가피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양축농가들은 주민 눈치보기에 바쁘다.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산다”는게 이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충남에서 돼지를 사육하는 D씨는 지인들이 자신의 농장을 찾는 게 달갑지만은 않다. 개축 공사 당시 인근 주민의 잘못으로 지인의 차량과 접촉사고가 발생했지만 막상 모든 책임은 지인이 떠안아야만 했던 경험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개축공사를 중단토록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해당주민의 반응을 접한 지인이 D씨에게 불이익이 올 것을 우려, 아무런 항의도 못한채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려 보험처리를 해야만 했던 것. D씨는 “지인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아무런 항의 조차 못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무능력한 기분이었다. 그 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화가난다”고 씁슬해 했다. “주민들에게 항시 감시당하고 있는 느낌”이라는 양축농가들도 적지 않다. 충북에서 대형양돈장을 운영하는 E씨는 “의도적이지 않더라도 가축분뇨가 조금이라도 흘러내리거나 냄새가 더 심하다 싶으면 바로 민원이 접수된다. 주민들이 우리 농장을 항상 주목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각종 정책사업도 민원에 ‘발목’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정책사업도 민원으로 인해 큰 차질을 빚고 있다. 공공처리장이나 공동자원화사업의 경우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가로막혀 수년간 지연되고 있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이들 시설만 철썩같이 믿고 있던 가축분뇨 해양배출 농가들이 공황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 이 뿐 만 아니다. 정부의 FTA 핵심대책으로 추진되고 있는 축사시설현대화사업 대상자 가운데 상당수가 지방조례의 거리제한, 민원으로 인해 사업을 포기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민선 지자체 주민 눈치보기 급급 이처럼 축산시설에 각종 민원의 타깃이 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가축사육이나 유관시설이 경제수준의 향상과 함께 ‘삶 질’을 지향하는 국민들 사이에 혐오시설로 낙인찍혔기 때문이다. 소위 ‘표’로 먹고사는 민선 단체장의 지방자치제 출범도 민원을 부채질하는 주요 배경이 되고 있다. 종사자수가 현격히 감소하고 있는 축산업계로서는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축산업의 비중이 높은 지자체의 한관계자는 “각종 민원의 대상으로 섣불리 감싸안으려 했다간 자신의 ‘표’를 갈가먹는 원인이 되는 반면 소득세까지 국세로 편입, 지방재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축산업을 어느 민선 단체장이 달가워 하겠느냐”며 “솔직히 지자체 입장에서는 축산업은 천덕꾸러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상황에 지난해 FMD로 인한 살처분 매몰지 환경문제까지 겹치며 축산업에 대한 거부감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 전원주택이 늘어나고 귀농·귀촌 운동이 전개되면서 농업지역에 도시민들이 대거유입되고 있는 최근의 추세도 민원을 심화시키는 또다른 요인이 있다는 분석이다. 전남의 한 양계농가는 “20년동안 거의 산속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농장을 운영해 왔다. 이를 모를리 없는 한 도시민이 농장 인근에 전원주택을 지어놓고선 냄새가 난다고 수차례 민원을 넣고 있다. 말이 되느냐”며 어이없어 하기도 했다. ‘홧김에’ 근거없는 민원 비일비재 문제는 양축농가나 축산시설에 대한 민원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농장이 내 주변에 존재하는 것은 무조건 싫다”는 인식이 만연하면서 시도, 때도없이 무차별적으로 민원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전북에서 낙농을 하고 있는 F씨의 사례는 그 심각성을 뒷받침한다. “수년전 이웃주민으로부터 분뇨를 불법으로 흘려보낸다는 민원이 접수됐다. 관할기관 조사 결과 무혐의로 드러나 큰 피해는 없었지만 실제 민원이 이뤄진 동기를 우연히 전해듣고 어이가 없었다. 민원인이 농장 앞을 지나가는데 개가 짖어서 기분이 상해 홧김에 했다는게 말이되나.” 상황이 이런데도 관할 행정기관은 별다른 근거없이 이뤄지는 악의적인 민원까지 아무런 여과없이 수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로인해 정상적인 농장운영이 불가능할 정도. 경북에서 양돈을 하고 있는 G씨는 민원인을 상대로 영업방해 행위에 대한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인근 전원주택 분양자들이 냄새를 이유로 민원을 접수했지만 관할기관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자, 그마저 믿지 못하겠다며 국민권익위원회에까지 민원을 제기한 것. 결국 권익위는 현장조사를 토대로 G씨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수개월간 민원해결에 매달리며 농장운영에 차질을 빚은 것은 물론 심신이 모두 탈진할 지경에 이른 그는 분을 참지 못하고 있다. 분쟁 막을 법·제도 장치 긴요 축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한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사회활동 확대를 주장해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금까지 수동적 대응 형태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민원에 맞설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수 있도록 축산업계 차원의 다각적인 노력이 시급하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최소한 뚜렷한 근거없이, 악의적으로 이뤄지거나 ‘민원을 위한 민원’에 대해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축산업계가 당당히 맞설수 있는 수준의 농장환경 개선 노력을 전제한 것이기는 하나 그만큼 민원의 폐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유럽 역시 경제발전과 함께 축산업에 대한 환경문제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며 민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현실은 유럽이 겪었던 과도기적 상황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오랜시간 축산업의 성장을 지켜봐 왔던 축산학계원로의 경고를 의미깊게 새겨들어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