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우유가 8일부터 22일까지 9개 지역을 순회하며 개최한 한마음대회<본지 2687호 기사참조>가 성공을 거둔 데는 강사를 잘 선정했다는 분석이다.
국제변호사 하일씨는 안산·서부·북부센터에서, 코미디언 엄용수씨는 동남부·남부·중부센터에서, 전 권투선수 박종팔씨는 경인·동북부·동부센터에서 각각 ‘지금은 다문화 시대’, ‘신바람 스트레스 해소’, ‘고통은 있으나 실패는 없다’라는 제하의 특강했다.
그 가운데 전 권투선수 박종팔씨<사진>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모친을 여위고, 레슬링 김일 선수와 김기수 권투선수처럼 운동으로 성공하겠다고 다짐하고 무작정 상경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그대로 밝혔다.
특히 박종팔씨는 “자장면 배달은 팔과 다리의 근력을 키워주는 운동이라 생각하고 음식을 열심히 날랐다”며 헝그리복서 동기를 말하고 “보통 몇 년 걸려 도전하는 신인왕전에 8개월 만에 도전, 신인왕(1977)이 됐다. 서울우유를 하루에 세잔이상 마셨다. 1978년 한국미들급 챔피언이 되고, 동양미들급 챔피언을 19차례 방어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미들급 한계체중이 72kg으로 신장 177cm에 평상시 체중이 85kg인 그가 체중감량 13kg은 힘든 과제로 한 체급 올려 IBF(국제복싱연맹)슈퍼미들급이 되기까지의 고통도 전했다.
그는 또 김득구 선수가 맨시니 펀치에 고인이 되는 등 미국 원정경기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던 시점에서 당시 39승1무3패의 기록을 지닌 비니카토를 3회에 다운시켜 동양에도 중량급의 강타자가 있음을 서양인에게 알리고, 국민에게 감격을 줬었다.
그래서 붙여진 호칭 ‘한국의 호랑이’처럼 그는 세계를 호령하고 IBF 타이틀 8차례 방어에 이어 WBA(세계권투협회) 슈퍼미들급 챔피언을 2차례 방어하면서 그의 별명은 은팔이·금팔이·돈팔이로 불러졌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