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부장 농협중앙회 축산경영부
최근 생산과잉과 소비 침체로 원유가 남고 있다. 지난겨울 예년에 비해 높은 기온으로 젖소의 원유 생산량은 늘어났지만 우유 소비는 오히려 줄었다.
원유가 남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직시할 점은 과연 우리나라에서 소비되고 있는 모든 유제품을 만들고도 원유가 남는가라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2013년 기준 연간 358만2천톤의 원유를 소비했다. 그러나 국내 원유 생산량은 2천100천톤에 불과했다. 개방화의 여파로 유제품 시장의 40% 이상이 외국산에 점령당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위생과 품질을 자랑하는 국내산 원유가 남아도는 배경을 들여다보면 수입산 유제품 원료가 시장에서 넘쳐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낙농 선진국이라고 하는 덴마크, 호주, 뉴질랜드 등에 비해 아시아 국가들의 낙농기술력과 원유품질은 낮다는 통설이 이어져왔다. 국내의 많은 소비자 사이에서도 수입산을 높게 쳐주는 분위기가 만연돼 있다. 이미 한국낙농의 수준이 세계 최고에 올라섰다는 점이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젖소의 우유생산량은 세계 4위 수준이다. 젖소사양관리와 낙농가들의 기술은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낙농선진국과 겨뤄도 유제품의 위생수준과 품질은 결코 밀리지 않는다. 문제는 거대한 자연자원을 기반으로 하는 낙농선진국과 가격경쟁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과연 유제품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수입산의 잠식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확실한 대안이 있다. 바로 치즈다. 치즈 1kg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유 10kg이 들어간다. 국내 치즈 시장은 원유로 환산할 경우 약 92만톤에 달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44%를 소비할 수 있는 커다란 시장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국내산이 치즈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4%, 2만2천톤에 불과하다. 국내 치즈시장의 98%가 수입산이다.
수입산에 절대 우위를 빼앗겨버린 우리나라 치즈산업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선 일본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 역시 개방의 여파로 낙농산업이 크게 위축되는 위기를 맞았었다. 그러나 업계 전반에서 치즈산업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치즈기금 도입과 치즈용 원유공급 안정대책사업 등 다양한 대응을 통해 치즈 자급률을 2010년 19%까지 끌어올렸다. 치즈 산업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모두가 합심한 결과다. 굳이 일본 얘기를 꺼낸 것은 개방에 대한 대응방식을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의지를 얘기하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세계적인 품질을 가진 국산치즈가 만들어지고 있다. 임실치즈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한 번 맛본 소비자 모두가 호평을 할 정도로 맛도 좋다. 문제는 기술과 품질을 이미 갖췄지만 수입산에 밀려 널리 알려지지 못하면서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빼앗긴 시장을 되찾아야 한다. 국산치즈 시장을 늘리는 길이 한국낙농이 가야할 길이라는 공감대부터 형성하자. 낙농산업을 지키는데 민간과 정부가 따로 없고, 낙농가와 수요자의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국내산 원유로 만든 치즈가 온 국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낙농업계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더 좋은 치즈를 개발하고, 대대적인 공동마케팅으로 원유자급률을 높여야 한국낙농의 생로가 열린다. 낙농가가 마음 놓고 원유를 생산할 수 있는 시대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보자. 세계 곳곳에 한국산 유제품의 깃발을 꽂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