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아버지는 성격이 급하다. 이를 지켜보는 아들은 숨이 가쁘다. 성격은 다르지만 이들 사이에는 끈끈한 믿음이 있다. 부자간에는 대화가 없을 뿐 서로를 신뢰하는 마음이 이어져 있다. 참외로 유명한 경북 성주. 이곳에는 5년째 아버지는 끌고, 아들은 밀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 목장이 있다. 이 목장의 이름은 중목장. 목장을 만든 주인공 아버지 김원태씨와 아들 김영탁씨는 매일 이곳에서 함께 일한다.
父, 느긋느긋 아들 “답답해” vs 子, 성격 급한 아버지 “숨가쁘죠”
끈끈한 믿음 안에 서로의 단점 유기적 보완…“언제나 든든”
- 목장은 언제부터?
▲父=1980년에 대구에서 착유소 3마리로 시작한 목장이 35년 만에 70두 규모의 쿼터 1톤 목장이 됐다. 나름 최선을 다해 노력한 땀의 결과이기에 자랑스럽다. 아들은 일반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목장을 경영하기 위해 한국농수산대학을 다시 들어가 공부를 마치고 5년 전부터 이곳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子=목장에 들어온 지 5년 정도 된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께서 목장을 하셨지만 이것 이어받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척 고생스러워 보였고, 더 편안한 일이 없을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목장을 이어받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결국 목장에 들어오게 됐다. 하지만 처음 2~3년간은 마음이 잡히지 않아 고생도 많이 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목장 일에 대한 재미와 흥미를 찾아가고 있는 단계다.
- 함께 일해 보니 어떤가?
▲父=부자가 함께 일한다고 남들은 부러워 할 수 있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딱히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나는 워낙에 성격이 급하고, 일을 막 찾아서 하고 다니는 스타일이다. 말도 많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 하지만 아들은 답답할 정도로 느리고, 모든 일에 신중한 스타일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나랑은 좀 다르다. 나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목장을 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아들은 그렇지 않다. 아들의 마음이 움직일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 한다. 좀 더 욕심을 내줬으면 하는 생각은 있다. 수업료가 필요한 부분이다. 작년 4월에 아들에게 통장을 넘겨줬다. 아들이 좀 더 적극성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했다.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에 대한 믿음이 높아졌고, 내 짐을 나눠지게 됐다는 생각에 편안해졌다.
▲子=아버지 말씀이 맞다. 나는 일을 신중하게 하는 스타일이고, 성격이 내성적이라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아버지가 그런 면을 마음에 안 들어 하시는 것을 알지만 타고난 성격이고, 어떤 면에서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외부 업무는 아버지가 도와주시고, 목장 내부의 경영이나 금전 관리 등 내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내 역할을 다할 뿐이다.
믿음을 줘야 한다. 돈 문제에 대해서는 좀 철저한 면이 있다.
이런 부분을 믿어주시는 것 같다. 빚을 지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데 이런 것을 아버지가 좋게 보시는 것 같다.
누구에게든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무척 기분 좋은 일이다.
- 칭찬할 만한 일은 없는지?
▲父=소를 정말 잘 다룬다. 어떤 일이 있어도 소에게 매질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상황에서건 소를 세심하게 다루는 능력이 있다. 주사를 놓을 때도 절대로 함부로 다루는 법이 없이 차분하게 작업을 하기 때문에 소들이 주사 맞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별로 없다.
초산우들의 경우 착유실에 잘 들어가지 않아 애를 먹이는 경우가 많은데 영탁이는 어떻게 하는지 큰 소리 한번 안치고도 소들이 줄줄이 알아서 착유실로 들어온다. 이럴 때보면 나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다.
▲子=소가 나보다 훨씬 크다. 결국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소와 함께 지내려면 소들이 잘 알아서 잘 행동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소를 잘 달래놓으면 편할 것 같아 그렇게 하고 있다. 주사 역시 마찬가지다. 한번 놓고 두 번 다시 놓지 않을 주사라면 상관없겠지만 언젠가 또 주사를 맞아야 할 것이라면 세심하게 관리해 주면 다음번 작업시 훨씬 수월하다.
- 고마웠던 일은 없는가?
▲子=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에 고마움을 느낀다. 특히 내 부족한 부분을 많이 채워주신다. 지난해 송아지를 좀 팔아야 했을 때도 아버지께서 직접 나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언제든 빈자리를 채워 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 예전에 췌장염으로 급하게 병원에 한 달 간 입원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아버지께서 목장의 빈자리를 채워주셨다. 든든했다.
▲父=나이가 많아지면 투자가 두렵고, 때문에 목장이 경쟁력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영탁이가 들어오면서 그런 고민이 없어졌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보완하고, 고칠 것이 있으면 고치고, 그렇게 함께 일하는 재미가 있다. 옆에 있어주니 든든하다.
- 올해의 목표는?
▲父=영탁이가 연애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것 말고는 별로 바라는 것 없다.
▲子=연애하기를 바라는 것은 알고 있다. 나 역시 연애가 하고 싶다. 하지만 여건이 좋지 않다. 농촌에서 일하는 남자 특히, 목장에 매어 있어야 하는 낙농가는 여자에게 인기가 없다. 아버지가 부탁하시니 노력은 해보겠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父=아들과 이렇게 속에 있는 말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마음속으로는 생각하고 싶었지만 말로 잘 표현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남에게는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기 쉽지만 가족에게는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아들에게 속에 이야기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 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았다. 오늘의 자리가 매우 뜻 깊은 것 같고, 부자간의 간격이 한 걸음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子=대한민국 대다수의 남자는 성인이 되면 집을 나간다. 때문에 아버지와 갈등을 빚을 일이 별로 없다. 목장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부자가 함께해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연애도 하고, 대인관계를 넓혀 나가는데 더 노력해 볼 생각이다. 또한, 목장 일에도 더욱 적극성을 갖고 임해볼 생각이다.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