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주 명예교수(건국대학교)
육계산업의 발전
국내 육계 산업은 완전히 전문화돼 반영구적인 축사에서 대량(호당 평균 5만3천수)으로 사육되고 있다. 물론 아직도 비닐하우스에 보온덮개를 이용하는 계사가 남아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트러스트 형 구조에서 온도, 습도가 자동으로 제어되고 사료와 음용수가 자동으로 공급되는 축사에서 육계가 사육된다. 육계의 사육기간은 수당 생체중 1.5kg를 기준해 30∼32일정도 걸린다. 부화 후 한 달 정도 자란 생닭을 도축하면 1.0kg 짜리 도계육이 되어 통닭 상품이 된다. 국내에서 육계 사육기간이 부화 후 한 달 정도 소요되지만 방역을 위한 휴지기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병아리가 한꺼번에 농장으로 들어와 한꺼번에 나가도록하는 전량입하 전량출하 방식으로 하고 있어서 농가는 보통 연간 5~7회전 가량 사육하고 있다.
육계 계열화 사업의 순기능
통상적인 축산은 농가가 자기 책임 하에 어린 가축과 사료를 구입해 자기 소유의 축사에서 사육한 후 시장에 내다 파는 형식이다. 그러나 육계는 90%이상이 계열화 방식으로 사육되고 있다. 즉, 육계 계열업체(닭고기 생산 전문업체)가 병아리, 사료 등 생산자재를 계약사육 농가에게 제공(맡김)하면, 계약사육 농가는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축사와 노동력을 이용해 닭을 키워 출하시킨 후 사전에 정한 보수(축산 계열화법에서는 이를 사육경비로 표현)를 계열업체로부터 받는 방식이다.
따라서 육계 계열화체계가 잘만 되면 계약사육 농가는 닭의 가격진폭에 따른 위험을 회피할 수 있으므로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 받고, 육계 계열업체는 계약사육 농가가 사육해 준 닭을 가공, 유통,·판매함으로써 자체 사육농장 없이도 이윤을 도모할 수 있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육계계열화체계를 통해 육계사육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기 때문이다. 즉, 2.0을 상회하던 사료 요구율이 1.7수준으로 떨어졌고, 출하일령도 40여일에서 30여일로 단축되었다. 현재, 전국에는 50여개의 계열업체가 운영 중이며 국내 전체 육계사육수수의 92%를 차지하고 있다.
육계 계열화사업의 개선 과제
육계농가와 육계 계열업체 간에 끊임없는 분쟁이 상존하고 있다. 대다수 사육농가들은 지난 30여년동안 육계 계열화 사업을 놓고 끊임없는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고 불만하면서 사육농가와 계열업체 간에 맺는 계약을 ‘노예계약’으로까지 비유했다.
육계 계약사육 농가들의 불만은 계열업체로부터 받은 사육 보수(사육경비)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룬다. 육계 사육 농가들이 받는 사육보수(사육경비)는 수당 200원(kg당 140원) 정도인데 이는 지난 30여년 동안 인상되기는 커녕 오히려 하락했고, 계열업체가 지원해 주는 축사 난방용 유류, 깔짚비, 상차비 등 부자재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현재 사육보수(사육경비)는 기준가격에 불과하고 만일 사전에 계약한 사료 요구율이나, 병아리 폐사율이 기준치를 초과하면 초과된 사료 값과 병아리 값을 사육 농가 변상하도록 계약되어 있다.
분쟁의 핵심은 사료, 병아리 등 생산자재의 품질과 사육농가의 평가방식이다. 병아리와 사료는 계열업체가 사육농가에게 제공하는 것이므로 그 품질에 대해 전혀 관여할 수가 없음에도 사료 요구율이 기준치보다 높거나 병아리 폐사율이 기준치보다 높은 것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사육농가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 사육농가들의 주장이다.
물론 사육농가의 부주의로 그런 결과가 나왔다면 몰라도 같은 축사에서, 같은 관리인이 같은 주의력을 기우려 사육했음에도 서로 다른 결과가 나왔다면 이는 사료와 병아리의 품질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계열업체의 소위 ‘갑질’ 문제가 생긴다.
사육농가 성적 평가방식 쟁점
육계 계열업체는 육계사육농가의 사육성적을 평가해 성적이 우수하면 보너스를, 성적이 부진하면 페널티(벌과금)를 물린다. 이는 육계사육농가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해 육계사육에 정성을 다하도록 독려하는 수단으로서 불가피한 조치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한 평가방식에는 ‘상대평가(순위위주 토너먼트)’와 ‘절대평가(기본적 토너먼트)’ 방식 두 가지가 있다.
상대평가 방식은 계열업체가 사육농가들의 폐사율, 사료요구율, 생산지수에 대한 사육성적 중 한·두 요소를 선택해 최고 성적부터 최하 성적까지 순위를 매겨 사육보수(사육경비) 또는 보너스 지급수준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방식은 사육농가들의 사육성적 순위에 따라 사육보수(사육경비)를 배분하면 되기 때문에 간단하고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계열업체 이윤 극대화를 위해서는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
왜냐하면, 계약사육 농가들의 능력에 대한 순위가 노출되기 때문에 상위 순위나 하위 순위에 속한 모든 농가들이 경쟁 동기가 유벌되지 못하고 육계사육 작업에 정성을 다함에 있어서 오히려 소극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상위나 하위그룹에 속해 있어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순위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 더 이상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계열업체 전체 이윤 극대화에는 크게 이바지 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상대평가방식은 사육 농가를 무한 경쟁으로 몰아가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계열업체에 같은 그룹내 농가들이 정보공유는 고사하고 농가 간 불신을 만연시킬 수 있다.
이러한 상대평가 방식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 절대평가방식이다. 이 경우 사육보수(사육경비)의 결정이 단순히 성적순위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사육농가의 개별 성적과 전체 그룹 평균 성적간의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상위 그룹 농가들은 자신들이 높은 순위를 예상한다 하더라도 평균과의 차이를 더욱 더 벌려 놓아야 그 보상이 많아지기 때문에 노력을 중단할 이유가 없고, 하위 그룹들도 평균 성적과의 차이를 가능한 한 좁혀 놓아야 벌과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노력을 중단할 이유가 없다.
상대평가 방식의 경우 순위에 따라 차등 보상이 이루어지고, 순위별 그 보상금액의 차가 일정하기 때문에 참여농가들 간 동질화가 대단히 중요하다.그러나 절대평가방식의 경우 보상금액이 개인성적과 평균 성적간의 차이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그룹의 동질성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면도 있다.
현재 국내 50여개 계열업체 중 3개 업체가 절대평가방식을 채택하고 있고, 몇몇 농가가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계열화사업 동반성장의 길
국내 육계 사육 농가 수는 계속 감소하고 있고 도로, 수송수단 등 인프라는 계속 개선되고 있다. 따라서 지역을 넘나들면서 사육농가가 계열업체를 선택하는 ‘사육농가 상위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사육농가가 ‘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대비해 계열업체는 시설 면에서나 기술면에서 우수한 사육 농가를 미리 확보해둘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자체 농장수를 늘려 해결할 수도 있겠으나 사육부분까지 계열업체가 장악하는 것은 또 다른 사회적 이슈가 되어 녹녹치 않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독일의 제도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한다.
독일에는 국내에서와 같은 완전수직계열화 방식은 없다. 독일법에서는 국내와 같은 완전수직 육계 계열화 방식에서 농가를 계열업체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종업원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계열업체는 농가에게 의무적으로 년간 20일 유급휴가를 주어야 하고, 육계를 생산할 수 없어도 임금을 지급해야 하므로 어느 업체도 수직계열화방식을 채택하려 하지 않는다. 농가도 독립사업자가 되면 건강보험, 연금보험을 유리한 것을 선택할 수 있고, 실업보험을 들 필요도 없으므로 누구도 수직계열화사업방식을 선택하려 하지 않는다.
독일 육계농가는 자기 책임하에 부화장, 사료공장, 수의사 등과 자재 및 서비스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도축장과는 육계 판매 계약을 체결해 완전히 독립된 경영체로서 사업을 수행한다. 육계판매가격도 사전에 어느 가격을 기준할 것인가를 계약하고 판매당일 시세에 따른다.
따라서 사육수수료나, 사료 및 병아리의 품질을 놓고 회사와 다툴 이유가 전혀 없다. 모든 거래가 농가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계열업체도 돈도 되지 않으면서 자칫 비난의 대상만 되는 생산부문까지 도맡아 수행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러한 독일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사육농가의 역량강화가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