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오 교수(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스케일에 따르지 못한 디테일
농업 전체 생산액의 4할을 차지하는 축산, 품목별로도 농산물 생산액 상위 10위 안에 6개(돼지, 한우, 우유, 닭, 계란, 오리)를 차지하는 축산의 위상이 요즘 말이 아니다. 그럼 한국 축산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한마디로 요약하면 ‘스케일(scale, 경영규모)만 키웠지 디테일(detail, 세부적인 후속조치)이 따르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람도 몸이 커지면 그에 걸맞게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하고, 예의나 책임의식이 성숙해야 한다. 우리 축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축산은 1970년대부터 수요의 견인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해 왔다. 규모 확대의 추구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단위 생산비 절감으로 수익을 증대시키고, 새로운 시설도입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꾀할 수 있다. 그러나 규모가 커지면 그만큼 경영 리스크도 커지게 된다. 예를 들어, 좁은 공간에 많은 가축을 사육하게 되면, 가축들의 면역력이 약해지고, 질병발생시 급속히 확산된다.
또한, 규모 확대를 통한 수익 극대화를 과도하게 추구하다 보면,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지켜야 할 규정(또는 법)이 잘 안 보이게 되고, 또는 무시하기 쉽다. 지금 문제가 되는 축산환경 문제나 악취, 무허가 축사 등은 대부분 여기에서 기인한다.
본래 축산은 우회(迂廻)생산의 철학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가축-풀-부산물-분뇨-땅(사료 생산, 가축분뇨 환원, 가축이 자연 속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의 연결고리가 튼튼해야 한다. 한국의 축산은 그동안 이런 연결고리를 모두 끊어버리고, 기형적인 가공형 축산을 하면서 오로지 규모 확대에만 주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료곡물은 물론 건초까지도 수입에 의존하고, 가축분뇨는 환원될 땅을 찾지 못해 하천과 바다에 버려졌으며, 중소가축은 운동은 고사하고 아예 창문도 없는 공간에서 지내야 했다.
대규모 가축질병 발생은 이제 축산 부문을 넘어 국가적 재앙으로 이어지고 있다. 구제역과 AI(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2종류만으로 우리나라 주요 가축(한·육우, 젖소, 돼지, 닭, 오리) 모두가 피해 사정권에 들어가 버리니 얼마나 위험하고 취약한 구조인가? 구제역은 2010년, AI는 2003년에 처음 발생한 후, 근절되지 않은 채 간헐적으로 계속 발생하고 있다.
2010년 말~2011년 초의 구제역은 돼지 전체 사육두수의 3분의 1을 매몰 처분할 정도로 초대형이었으며, 1회 발생만으로 축산 부문이 입은 경제적 피해가 2조9천억 원에 달한다. 2016년 발생한 AI 역시 계란파동이 일어날 정도로 국민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여기에 계란 살충제 파문 등이 겹치면서 친환경축산을 포함하여 축산 전체의 안전관리가 국민의 불신을 받고 있다.
사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전문가들이 2011년 대형 구제역 이후 지속가능한 축산 시스템으로 조속히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실현되지 않아 중요한 골든타임을 놓쳤다.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 한국 축산 회생의 두 번째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회를 반드시 잘 활용하여 한국 축산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축산의 기본 틀(패러다임)을 바꾸지 않고 땜질식으로 그때그때 위기만 모면하려고 한다면, 앞으로 대규모 가축질병, 안전성 문제, 축산 환경문제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가축 사육환경이 바뀌고, 축산 농가의 의식이 변해야 하는데, 이를 고치지 않는다면 유사한 사고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면역력이 약화된 사람이 건강을 지키려는 의식마저 없다면, 감기 등 각종 질병에 걸리기 쉬운 것과 비슷한 논리이다.
미래의 비전이 보이지 않을 때는 과감하게 진로를 바꾸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우리와 유사한 경험을 겪고 구조개혁을 이룬 유럽의 축산 선진국들로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축산의 기본으로 돌아가 철저하게 지속가능한 축산을 실천함으로써,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고 강한 체질의 축산으로 거듭났다.
21세기형 미래 한국 축산의 기반 구축
첫째,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지속가능한 축산 시스템으로 기본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그동안의 축산방식이 효율성과 수익을 위해 지나치게 규모 확대와 ‘최대’만을 추구해 왔다면, 지속가능한 축산 시스템이란 기본적으로 생산자, 가축, 소비자, 지구환경을 아우르는 녹색성장 기조하에, ‘최적’의 규모(적정 사육두수)를 유지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야 토양 및 수질을 보전하고, 가축의 사육환경을 개선하여 동물복지를 증진시키며, 부산물을 사료로 이용하고, 또 가축분뇨를 유기질 비료로 재활용할 수 있는 순환형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좁은 국토면적과 많은 가축분뇨 발생량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에서 최적의 규모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적정 사육두수는 농가, 지역, 국가 단위로 가축분뇨 처리능력, 토양 내 질소·인 부존량 등을 감안하여 산정할 수 있다.
‘최적’의 규모는 ‘최대’ 규모에 비해 경영사이즈가 작아질 수 있으나, ‘최고’의 가치를 추구한다면 앞에서 열거한 구성체 모두가 공존하면서 축산농가의 소득도 향상시킬 수 있다. 지속가능한 축산 시스템은 가축의 면역력을 강화하여 가축질병을 예방함은 물론, 소비자들이 안전하고 자연지향적인 축산물을 선호하는 추세에 힘입어 높은 구매자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다수 축산 농가들은 배출되는 가축분뇨를 처리하기에는 농지가 턱없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 향후 만약 지역별, 농가별 적정 사육두수가 가축분뇨 처리능력과 연계될 경우, ‘퇴비(액비) 유통센터’가 이런 축산농가의 분뇨처리를 대행해 주고 소정의 ‘증명서’를 발급함으로써, 환경문제를 유발시키지 않으면서 축산기반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축산 시스템은 한국 축산의 생존이라는 측면에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다. 한국은 지난 수년간 EU, 미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토지 면적이 넓고 사육규모가 큰 축산 강국들과 잇달아 FTA를 체결하였다. 이들과의 가격경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우리가 살 길은 가축질병이나 식품안전에 강한 체질로 거듭나서, 값싼 축산물이 들어와도 ‘품질·안전·안심’으로 차별화 하여 우리 소비자로부터 사랑받는 것이다.
둘째, 일부 축산농가의 부주의나 잘못으로 전염성이 강한 대형 가축질병이 발생하면, 주변의 많은 축산농가와 관련 산업이 피해를 보게 된다. 축산업에서 가축질병 및 식품사고로부터의 ‘안전성 확보’는 공익성을 띠는 준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독·방역시설, 단위 면적당 사육마리 수, 교육이수 등 일정한 요건을 충족시킨 농가만이 축산업을 할 수 있게 하는 ‘축산업 허가제’(2013년부터 도입)는, 앞으로 더욱 엄격히 시행될 필요가 있다. 즉, 충분한 기술력을 갖추고, 사명감이 풍부한 정예 축산인이 경쟁력 있는 한국 축산을 이끌어 가도록 체질개선을 해 나가야 한다.
셋째, 현행의 가축보험 시스템이 일본의 가축질병 공제제도처럼 확대 재편될 필요가 있다. 즉, 가축의 폐사뿐만 아니라 질병 및 상해 사고 발생 시에도 치료비용이 공제금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농가도 이상 징후 발견 시 신속하게 공제 수의사에게 연락하게 되고, 공제 수의사가 가축질병에 대한 예찰활동을 강화하기 때문에. 질병의 조기 발견 및 억제 효과가 향상될 것이다. 이런 선순환 구조는 공제 보상금 및 가축방역사업 예산 절감에도 기여하게 된다.
넷째, 현행의 각종 친환경 축산 관련 인증제도(유기 축산물, 무항생제 축산물, 축산농가 HACCP, 환경친화 축산농장, 동물복지 등), 친환경 안전축산물 직접지불제, 축산물 가공·유통시설에 대한 HACCP 인증, 축산물 이력추적제도 등은, 이미 관련 법률이 제정되어 있고 정책 시행의 축적이 있지만, 차제에 이미 제기된 문제점들을 철저히 규명하고 개선하여, 다시는 유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감독 시스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정부는 지금 쌀의 공급과잉으로 생산조정을 실시하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쌀이 주곡이기 때문에 기상이변이나 통일에 대비하여, 논의 생산기반을 유지하면서 쌀 생산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논의 생산기반 구축에는 많은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경종농가의 논에서 식용 쌀 대신 TMR 형태의 총체 벼 발효 조사료, 사료용 쌀, 사료작물 등을 생산하여 축산농가에 공급하게 되면, 쌀 수급문제를 완화하면서 조사료 자급기반을 강화할 수 있다. 즉, 수입 사료의 대체효과와 함께, 양질의 조사료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어 축산발전에 새로운 기회요인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시급히 복원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참 축산인’으로서의 사명감이라고 생각된다. 가축질병이나 환경, 안전성 문제는 사양관리의 일부로서 각 농가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철저히 통제하고 관리하면 대부분 해소된다. 이 기본체제 위에 국가의 방역 및 안전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축산인들이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70년대 열악한 환경에서 맨 손으로 축산발전을 이루어냈던 불굴의 정신으로, 21세기형 지속가능한 축산의 기반을 구축했으면 좋겠다. 그 레일 위로 농업의 성장 동력이면서 국민에게 사랑받는 축산호가 우리 후손들에 의해 계속 힘차게 달리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