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산인들 “한·미FTA 폐기”…정부 “개정협상 최선”
정부, 농축산 분야 추가개방 없어…국익 위한 협상할 것
유명희 산자부 국장 “미국 주장에 끌려가지 않을 것”
지난 22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한·미 FTA 개정 관련 농축산업계 간담회’<사진>가 농축산업계 관계자 약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지난 10일 한·미FTA 개정 관련 공청회가 농축산단체의 거센 반발로 파행을 빚었던 것에 반해 이날 간담회는 무난하게 진행됐다. 간담회에서는 농축산분야에서 더 이상의 추가 시장개방이 있을 경우 농축산업의 존폐여부까지 불투명하다는 우려가 빗발쳤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한우협회,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등 농축산 단체들은 정부의 통상정책을 비판하며 한·미FTA 폐기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파면 등을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학계서도 유독 우리나라가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농축산분야가 불리하게 협상이 체결돼 있다고 꼬집었다.
산업통상자원부 강성천 통상차관보는 인사말에서 “농업은 우리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산업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국가의 근간”이라며 “과거, 현재, 미래에도 농업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 김경규 기획조정실장은 “정부는 추가 개방은 불가라는 입장이며 미국 측이 농업 분야에 대한 추가 개방을 요구하면 우리도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하라는 의견을 당당히 개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진 주제발표시간에 농촌경제연구원 한석호 박사는 ‘한·미FTA 농업부문 영향 및 시사점’을 발표했다. 한 박사는 “한·미FTA로 인해 농축산물 무역수지가 악화됐으며, 국내 농축산물 가격하락으로 소득 감소 피해가 발생했다. 추가 농산물 시장개방 확대는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며 “특히 축산농가 및 과일농가 등은 수입량이 증가함에 따라 가격하락에 따른 소득감소 및 농가수 감소, 자급률 하락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진 패널 토론은 농축산 분야 학계, 전문가 및 농민단체 관계자, 산업통상자원부와 농림축산식품부 담당 국장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날 토론의 좌장을 맡은 한두봉 고려대 교수는 “헤비급(미국)과 경량급(한국)이 싸우는데 어떻게 싸워야 공정한 싸움이 가능한지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오늘 이 자리가 그러한 방안을 마련 할 수 있는 자리가 돼야겠다”고 말했다.
첫 번째로 토론에 나선 전국한우협회 김홍길 회장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급증으로 인한 농가 피해를 막아준다는 세이프가드는 발동기준 자체가 너무 높아 무의미하다”며 “정부가 마련한 농가 피해대책 중 FTA 직불금 1만3천500원/1두당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김 회장은 “한·미 FTA로 인해 한우 농가수가 반토막이 났다. 폐업농가가 다른 축종(농업)으로 전향하는 등 도미노현상으로 모든 농업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시절에 농민들에게 FTA를 폐기해야 한다고 본인이 직접 주장했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국농민회총연맹 박형대 정책위원장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애초 미국에 한·미FTA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생산자들과 공동 분석을 제시했다”며 “그러나 생산자와는 상의없이 개정협상을 진행시켰다. 이는 공공연한 사기행위인 만큼 김 본부장을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한민수 정책실장도 “미국의 부당한 시장 추가 개방 요구가 제기될 경우 통상당국과 농식품부는 한·미FTA 협정 폐기 카드까지 거론하면서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며 “만약 미국의 압력으로 농업 분야가 협상 대상에 포함되는 경우 대표적 불평등 조항인 쇠고기·낙농품 등에 적용되는 농산물 세이프가드 발동기준 개선은 물론, 무관세 쿼터(할당) 배정 등의 부당한 조건을 삭제하는 등 실질적인 개선 조치를 강력히 요구해 관철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낙농육우협회 낙농정책연구소 조석진 소장은 “오늘 간담회가 정부의 요식행위가 아닌 농축산업계의 의견이 반영 될 수 있는 자리가 돼야 한다”며 “한·미FTA는 전 세계를 둘러봐도 전례가 없는 불평등한 협상이다. 실제로 미국 유제품 수출업체들은 한·미FTA를 타국과의 협상에 본보기로 제시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이익 균형이 갖춰져 있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불리한 협상은 타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 정일정 국제협력국장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도 국회에서 ‘농업은 레드라인, 쌀은 손대는 순간 끝’이라고 말하며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며 “농업 추가 개방 요구시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임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유명희 통상정책국장은 “협상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한·미FTA 폐기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정부는 국익의 극대화를 위한 협상을 타결하는 것이 목표다. 이 자리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협상안에 적극 반영 할 것이며 농식품부와 긴밀히 협조해 국내 농축산업에 불리하지 않은 협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국장은 이어 “한·미FTA 폐기를 논의해야 농업을 지킬 수 있다”는 전국농민회 박형대 정책위원장의 거듭된 주장에 “(폐기도) 옵션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답하면서 “다만 현재 단계에서는 협상하면서 이익균형을 맞추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미국측의 일방적 주장에 끌려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정부는 간담회 결과를 다음달 1일 예정된 제2차 공청회 등에 반영하고, 개진된 의견수렴 결과를 충분히 검토해 국회에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날 의견들을 어떻게 반영한다는 구체적 제시가 없어 단지 농축산인들을 달래기 위한 요식행위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염려하며 내달 1일에 있을 2차 공청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