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우 박사의 산티아고 순례길<2>

  • 등록 2020.09.02 1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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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루트 출발지 항공기 목적지 변경해 착륙
착오에도 모두 담담…순례길의 여유로움 느껴져


▶ 성지순례길 출발점에 서다. ( 5월 22일 수요일 )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지내고 북쪽 루트 출발지인 이룬(Irun)으로 가기 위해서 산세바스타안(San Sebastian)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1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거리이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국내선 Vueling항공)에 올랐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한 시간 정도를 날아간 비행기가 목적지가 아닌 빌바오(Bilbao)공항으로 내린다는 기내 방송이 나왔다. 이어지는 설명은 빌바오에서 목적지 공항까지는 버스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승객들은 모두 어리둥절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쩌겠는가. 빌바오공항에 도착하자 승객들은 짐을 찾아서 대기 중인 버스에 올랐고 118 km나 떨어져 있는 당초 목적지 산세비스타안 공항까지 1시간 40분이나 걸려서 가야했다. 첫날부터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주로 스페인 사람인 승객들 중 항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아니 항공일정에 이렇게 큰 착오가 생겼는데도 모두 조용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난리가 났을 텐데 의외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이런 조용한 반응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상대의 사정을 이해해주는 여유로운 마음이 저변에 깔려있는 게 아닐까. 무언가 훈훈한 인심을 느낄 수 있는 해프닝이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배낭을 메고 1.6km를 걸어서 이룬 순례자 알베르게(Irun Pilgrims Albergue)에 당도했다. 알베르게(Albergue)란 스페인어로 공동숙소를 뜻하는데, 순례자들의 숙박편의를 위해서 순례길 곳곳에 설립해서 운영한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공공(Municipal) 알베르게가 있는가 하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 운영하는 민간 알베르게도 있다. 이룬은 시골의 작은 마을로 읍보다는 작고 면보다는 큰 곳인데 산티아고 순례길 북쪽루트의 출발지로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마을이다. 

우리가 묵을 알베르게는 하루 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도미터리(domitary)형 공동숙소였다. 입구에 들어서니 먼저 온 순례자가 등록절차를 밟고 있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여권을 제시하고 등록을 하니 순례자여권(크레덴시알 Credencial)을 발급해 주었다. 이 크레덴시알은 앞으로 이용할 알베르게에 제시해야만 순례자임이 증명되어 침대를 배정받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중요한 증표다. 순례자 여권에는 총 40개의 네모난 빈칸이 있어서 도중에 알베르게, 성당, 박물관, 카페 등에서 스탬프를 받아야 그 곳을 거쳐 왔다는 증거가 되고, 완주증명서를 발급받는데 필요하므로 분실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이 알베르게는 자원봉사자들이 무보수로 순례자들을 위해 봉사한다고 했다. 우리를 맞이한 봉사자 두 분 모두 6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은퇴자 같았다. 접수를 받고 방을 배정하는 분은 아주 밝고 진지한 모습으로 즐겁게 일을 했다. 기부금으로 운영된다고 해 아침식사까지 포함해 10유로를 모금함에 넣었다. 우리를 방으로 안내하고 숙소를 안내해주는 일을 하는 분도 신명나게 설명을 해주었다. 천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배정된 방에는 2층 침대가 10개가 있으니 총 20명이 한 방에서 자는 숙소였다. 이런 방이 세 개가 있으니 모두 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알베르게였다. 남녀노소의 구분 없이 선착순으로 침대를 배정하는 게 특이하다. 여기서는 모두가 같은 길을 걸으며 동행하는 순례자인 것이다. 숙소는 빈틈없이 꽉 찼다. 출발지라서 그런 것 같았다. 나는 초보자라 1층을 쓰고 친구는 2층 침대를 썼다. 친구 왈, 초보라서 혹시 2층에서 떨어지면 큰일이란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공동이지만 남녀는 구분된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세탁실, 조리실, 식당은 모두 1층에 있었다. 저녁은 어제 산 바게뜨 빵에 슬라이스 하몽과 치즈를 넣고 과일과 함께 먹었다. 대장정의 출발점에서 첫 밤을 지냈다. 스무 명이 한 방에 자는데도 다들 잘도 잤다. 나도 내일 아침 산뜻한 출발을 기대하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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