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우 박사의 산티아고 순례길<5>

  • 등록 2020.09.24 10: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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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크해안 지질공원 절경에 경이로움 느껴


위대한 자연 앞에 인간의 만용 성찰 계기


▶ 유네스코 자연유산을 만나다. (5월 25일, 3일차)

오늘 걸은 거리는 18km로 전날의 24km에 비하면 짧지만 매우 난코스였다. 게다가 아침부터 비가 와서 비옷과 판초우의로 완전무장을 하고 출발했다. 우중에는 길이 미끄러워 몸의 균형을 잡기도 힘들고 넘어질 위험도 훨씬 높다. 혹 발을 잘못 디뎌서 발목을 다치기라도 하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앞에 가던 순례자는 미끄러져서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됐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게따리아에서 데바(Deba)로 나아가는 길은 두 길이 있는데 하나는 해변을 끼고 가는 길인데 험난하고, 다른 길은 도로를 따라 병행하는 길인데 수월한 길이다. 우리는 전날 대만 순례자의 극찬도 있고 해서 해안코스를 택했다. 길은 처음부터 가파른 언덕을 지그재그로 오르는 난(難)코스였다.

그러나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했던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오르니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이라니! 봉우리들이 바다를 향해 고개를 바짝 세우고 뽐내는 듯이 솟아있다. 여기에 질세라 시샘하는 바다물결은 바람을 일으켜 파도를 만들고 파도는 봉우리의 발끝을 세차게 때린다. 대서양 바다가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에 이마에 맺힌 땀이 날려간다. 가슴이 탁 트인다. 여기로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다. 

내려가는 길로 들어서서 아름다운 포구를 끼고 있는 작은 마을 쑤마이아(Zumaia)에 도착, 다리를 건너 커피 한잔 하려고 카페에 들어서니 까미노 친구들 여럿이 먼저 와있다.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젖은 몸을 녹이고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조금 가다보니 길을 잘못 들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길바닥에 표시된 화살표를 못보고 지나친 거였다. 마침 지나가는 중년 신사에게 길을 물으니 친절하게도 길 초입까지 몸소 우리를 안내해준다. 이곳 사람들의 친절을 직접 경험하면서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앞을 올려다보니 왼쪽에 목장을 끼고 한참 오르막길이다. 길 양쪽 언덕 기슭에는 포도밭이 길게 이어졌다. 비탈진 언덕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포도가 당도가 높아서 좋은 포도주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 포도들이 이곳의 특산품인 차콜리 와인을 만드는 원료다. 반시간은 족히 걸어서 포도밭의 끝에 닿았다. 거기가 언덕배기이고 바로 와이너리(winery)가 있었으나 문을 열지 않아서 차콜리와인 맛을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비스케이만(Bay of Biscay)을 끼고 가는 해안코스로 접어드니 바람이 불고 길이 많이 질척거렸다. 땅이 검은색을 띤 질흙이라서 길바닥이 매우 미끄러웠다. 한발 한발 소처럼 천천히 걸어서 목적한 해안코스에 제대로 올라섰다. 와! 참으로 절경이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곳은 유네스코가 자연유산으로 지정한 바스크해안 지질공원( Basque Coast Geoparque)이라고 한다. 왠지 다른 곳에서는 못 본 처음 보는 광경이다. 이런 장관이 만들어진 것은 아주 옛날에 바다였던 지층이 지각변동으로 융기하면서 육지로 솟아올랐다고 한다. 헤아릴 수도 없는 세월 동안 눈비와 바람 그리고 파도에 침식되어 이런 멋진 장관을 연출해 낸 것이다. 퇴적암층으로 형성된 바위들이 나란히 줄지어 도열하고 있는 멋진 풍경이다. 

전날 들은 대로 그로테스크하고 판타스틱하다. 바위 절벽에 부딪쳐서 부서지는 파도, 바닷물이 부서지며 만들어 내는 하얀 포말, 한 줄기 파도가 휩쓸고 가면 다음 파도가 또 따라온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자연의 향연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놀랍지 않은 것이 없다. 경이로운 전율이다. 자연의 위대함에 절로 경외감이 든다. 위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 나의 글재주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방법이 없었다. 어찌 보면 나의 감동을 표현할 적절한 언어를 찾을 수 없었다. 보고 느끼는 것이 전부였다.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올라 대서양을 향해 팔을 활짝 펼치고, 가슴에 쌓인 묵은 것들을 대양으로 날려 보냈다. 신선한 감격이었다. 오락가락 비는 내리고 길은 질척이고 발은 무겁고 고생이 많았다. 미끄러질 뻔도 여러 번, 참 조심해야만 했다. 그러나 자연의 대 향연 앞에서 몸은 날아갈 듯이 들떴다. 

해안 길을 따라 들꽃도 많이 피었다. 작지만 소중해 보이는 들꽃들은 섬세한 미와 군락의 아름다움으로 그로테스크한 장관과 어우러져 돋아 보였다. 작은 아름다움조차도 결코 놓치지 않는 자연의 완벽함에 놀랄 뿐이다. 세상 살면서 큰 것만을 보려하지 말고 작은 것에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교훈을 내게 주는 듯했다. 분명 자연은 다양한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마술사다. 그런 위대한 자연 속에 잠시 거쳐만 가는 우리 인간들이 자연에 상처를 내고 있다. 교만해진 인간들이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자연에게 준 상처가 어떻게 해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줄도 모르고, 아니 알면서도 모르는 채 만용을 부리고 있다. 이제라도 인간은 자연 앞에 겸손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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