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서동휘 기자] 토종닭 시장의 활성화 방안 중 최우선 과제로 ‘소규모 도계장 설치’가 꼽히고 있지만, 토종닭 업계서는 진입장벽 높아 ‘그림의 떡’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설치 기준이 대부분 대규모 도계장의 것과 같아 실질적으로 일반 토종닭농가들의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허가를 받은 소규모 도계장이 전국에 2곳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현재까지 소규모 도계장 추진 과정을 짚어보고, 필요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진행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허가업체들을 통해 들어 봤다.
과도한 기준·복잡한 행정절차·막대한 비용 걸림돌
여러 법안 규제 작용…일각 주민동의서까지 요구
정부 다각적 지원에도 지자체 협조 없인 기대못해
산닭 유통기반 조성 위한 정책대안
한국토종닭협회(회장 문정진)에 따르면 소규모 도계장은 소비자에게는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고 생산농가의 소득을 향상시킴은 물론 순계 보호 육성을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다. 고병원성 AI의 방역 취약 등의 이유로 방역당국이 산닭 유통과 관련해 규제를 강화하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산닭 시장이 축소 되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토종닭의 원활한 유통을 위해 소규모도계장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9년 7월부터 ‘산 가금 유통 방역관리제’가 시행됐다. 이 제도는 산닭을 공급하는 농가, 가축거래상인, 판매점까지 주기적인 검사와 교육 등을 통해 선진화 된 방역 시스템을 도모하는 것이 목적으로 지난 2017년 6월, 전통시장을 통한 AI 확산에 따른 대책의 일환으로 계획됐다. 전통시장에서 이뤄지는 도축 행위를 근절해 토종닭 불법 도계·유통에 따른 방역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취지다.
토종닭협회 관계자는 “산닭 산업은 개인 농가들의 주된 출하처다. 산닭 산업의 축소로 사육 농가들의 경영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이며 이는 농가수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며 “소규모 도계장 추진을 통해 지속 가능한 산닭 유통 기반 조성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초라한 성적에 예산·목표 모두 줄어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2018년부터 전통시장 등의 인근지역에 소규모 도계장 설치 지원을 추진해 왔지만 다양한 법령에 의해 도계장 추진이 지지부진, 지금까지 단 2개소만이 운영되고 있는 현실이다. 사업 시행 초기 2022년까지 50개소 설치를 목표로 추진해 왔지만 초라한 성적이다.
사업진척이 더디다보니 예산도 목표도 줄어 들었다. 시행 당시인 2018년 34억6천500만원(정부보조, 지방비, 자부담 포함)이었던 사업예산은 2020년에는 17억3천300만원, 2021년에는 8억6천700백만원, 올해는 6억9천300만원으로 줄어들었으며 목표도 오는 2024년까지 23개소로 줄었다.
관련업계서는 이처럼 소규모 도계장 설치가 더딘 이유로 복잡한 행정 절차를 꼽았다.
토종닭협회 관계자는 “농식품부가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을 하고 허가를 위해 돕고 있지만 지자체의 벽을 넘는 것이 가장 걸림돌”이라면서 지자체들의 소규모 도계장 활성화에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실제로 지난해 지원사업에 참여했다가 최종적으로 취소한 충북의 한 토종닭 농가는 “소규모 도계장을 설치할 계획을 가지고 실행에 옮겼지만, 진행과정에서 설치 기준 등이 농가의 현실과 맞지 않는 데다, 주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포기하게 됐다”면서 “물론 주변의 민원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소규모 도계장의 설치 기준이 당초 목적에 부합되지 못하게 까다롭고,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소규모 도계장에 ‘도계장’이라는 명칭이 붙다 보니 현행법상 대형 도계장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규정을 따라야 하는 복잡한 행정절차가 발목을 잡고 있어, 진행상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라는 것. 또한 설치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지자체 축산과, 농지과, 환경과, 건축과 등을 거쳐 관련 법안을 해결해야 하는 것은 물론, 검사관 상주 문제, 나아가 일부 지자체는 주민 동의서까지 요구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자체 협조가 키포인트
반면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된 사례도 있다.
경기도의 경우 전국 최초로 법과 제도를 개선해 성남과 안성 두 곳에 소규모 도계장 설치를 허가한 것이다.
도축 시설 설치를 간소화하고 도축이 필요한 장소로 직접 이동해 도축검사를 제공할 수 있는 방식을 고안해 지난 2018년 국내 최초로 ‘찾아가는 이동식 도축(계)장’을 경기도가 직접나서 추진한데 이어, 지난 2019년에는 안성의 토종닭 농가(조아라한방토종닭, 대표 조이형)에는 소규모 도계장 설치를 허가했다.
조이형 대표는 “소규모 도계장 설치 지원사업이 시작되면서 적극적으로 해당 사업을 추진해 허가를 받게 됐다”면서 “기존에 없던 시설을 만들다 보니 시행 착오도 많았다.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토종닭협회와 지자체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소규모 도계장은 완성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12월에는 민간 주도로는 처음으로 경북 문경의 농업회사법인 문경통도리토종닭(대표 정태영)이 이동식 도계장 허가를 받았다.
정태영 대표는 “축산물위생관리법에는 이동식 도축장에 대한 시설 규정 등이 있지만 타 법에서는 따로 구분하고 있지 않아 대규모 도축장과 같은 규제를 받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한국토종닭협회 문정진 회장은 “지난 2018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허가를 받은 농업회사법인 조아라한방토종닭은 2.3kg 이상의 닭을 연간 30만수 이내로 잡을 수 있는 소규모 도계장의 최소한의 도축 시설 허가 기준을 만들었고, 지난해 이동식 도계장 허가를 받은 문경통도리토종닭은 토종닭 전용 이동식 도계장의 시설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그간 구체적인 사례가 없어 추진하지 못했던 소규모 및 이동식 도계장 운영을 희망하는 분들께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라면서 “하지만 아직도 해외의 소규모 도축장 운영 규정에 비춰보면 국내는 규제가 많은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문 회장은 “지역사회 발전과 농가 소득, 소비자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빠른 시간에 공급함은 물론, 토종닭 종자(순계)를 보호·육성해서 국가 식량 안보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당 지자체들은 소규모 도계장 활성화에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세계 각국(미국, 프랑스, 일본 등 축산 선진국)은 소규모 도계장 설치 절차를 간소화해 운영 중이다. 토종닭업계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법과 제도를 개선해 토종닭의 종자 유지·보존·발전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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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문경통도리토종닭 정태영 대표
경북 문경에 소재한 농업회사법인 문경통도리토종닭(주)(대표 정태영·전종섭)에서 추진해 온 이동식 도계장이 지난해 말 경상북도로부터 도축업 허가를 받았다. 국내에서 이동식 도축장에 대한 법적 근거는 지난 2017년 11월 27일에 관계 법령인 축산물위생관리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마련돼 경기도와 성남시가 주도적으로 이동식 도축장을 추진, 성남시 소재의 염소와 토종닭을 도축할 수 있는 도축장이 마련됐었다. 이 성남의 이동식 도축장이 경기도 등 정부의 주도였다면, 문경에서 허가받은 이동식 도계장은 민간 주도로 이뤄진 첫 사례인 것. 정태영 대표를 만나 도계장 허가 과정의 얘기를 들어봤다.
현실 맞게 설치 기준 개선 절실
여러 국가 관계볍령 수집·설계 벤치마킹
총 288가지 서류 준비해 하나하나 보완
정태영 대표는 수년 전부터 토종닭 도계장 인·허가 준비를 해 왔다.
토종닭협회 관계자들과 함께 일본·대만과 프랑스·네덜란드·독일, 미국 등 아시아와 미주·유럽 주요 국가를 방문해 소규모 도계장 운영 현황 및 관련 법령을 수집했고, 이동식 도계장 설치를 위해 국내 유수의 컨테이너 및 도축 시설 업체를 방문해 국내 현실에 맞는 도축 시설 배치도 등을 설계했다. 이같은 준비에도 도축장 인허가 과정을 거치며 무수한 어려움을겪어야 했다.
정태영 대표는 “무엇보다 부지마련 및 시설설치, 그리고 각종 건축인허가를 받는 과정이 힘들어 사실 몇 번이고 중간에 포기하려고도 했었다. 대규모 도계장에 맞춰 마련된 기준을 개인이 맞추기가 힘들었던 것”이라면서 “농가들의 현실에 맞게 설치 기준의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건축, 환경, 폐수, 폐기물 등 도축업과 관계된 직접적인 법령들 외에도 지역 민원, 수도, 전기, 도축장 부지, 진입로 등 총 288가지의 서류를 준비해야 했다는 것. 미흡한 사항들을 하나하나 보완해 가는 과정에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수없이 많았지만 끝까지 도계장을 추진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태영 대표는 “국내의 첫 토종닭 전문 이동식 도계장으로 그 역할과 소임을 감당할 것”이라며 “특히 최근 코로나 19 및 고병원성 AI의 발생으로 토종닭이 소비 위축을 겪고 있어 제대로 토종닭을 사육하고 전문 도계장에서 도축해 일품 토종닭을 생산해 소비 저변을 넓혀 나가겠다”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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