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공유, 원유보다 싸게…유업체 구매 통해 생산량 증대”
농가 “생산비 밑도는 원유 누가 생산하나…수입 장려책 전락”
수정안 제시하며 농가 설득 나섰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낙농제도개선이 공전을 거듭하는 동안 국산원유가 외산 유제품에 비해 가격경쟁력에서 점차 밀려났고, 결국 수입량 폭증으로 이어져 자급률이 하락했다며, 만약 현 상황이 계속된다면 국내 낙농산업의 지속가능성은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농식품부는 ‘낙농산업발전위원회’를 거쳐 용도별차등가격제 도입을 정부안으로 내놓았다.
기본 방향은 음용유는 현 수준의 가격을 유지하는 대신 가공유는 더 싼 가격을 적용하고, 유업체에게는 정부지원을 통해 구매부담을 덜도록 한다는 계획이었다.
정부안대로라면 현 203만톤의 원유생산량이 222만톤으로 확대되면서 유업체가 구매하는 원유량도 늘어나 농가소득이 증대될 뿐만 아니라 자급률도 52%까지 올라간다는 것이 농식품부의 의도한 바였다.
당시 ‘낙발위’에서는 용도별차등가격제 도입(안)을 두고 실효성에 의문을 품은 유업체를 포함한 일부 인사들이 전반적인 정책방향에는 동의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반면, 생산자들은 정부안은 농가소득이 감소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수입산 장려효과를 불러올 뿐이라고 전면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안은 발표됐지만 생산자들의 거센 반대로 벽에 부딪힌 농식품부는 농가의견을 반영한 수정안을 내놓으며 돌파구 마련을 시도했다.
생산량을 단기간에 늘리기가 어렵다는 일부 농가들의 의견에 따라 용도별차등가격제 적용 첫 해에는 음용유 190만 톤(1천100원/L)과 가공유 20만 톤(800원/L)으로 책정하고 두 번째 해부터는 음용유 185만 톤과 가공유 30만 톤, 그 다음 해에는 음용유 180만 톤과 가공유 40만 톤과 같은 형태로 용도별 물량을 시장 상황을 고려하며 적용해 나간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생산자들은 수정안 역시 정부안 강행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며 용도별차등가격제의 허점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생산성 향상에 제약 많아
생산자들은 생산비 폭등과 각종 환경규제로 인해 우유증산 자체가 어렵다고 반발했다.
실제 지난해 원유생산량은 203만5천톤으로 전년대비 2.6% 감소했는데 이는 사료가격 폭등(배합사료 약 20%, 조사료 약 50%), 마이너스쿼터제 운영(4~10%), 폐업농가 급증(전년대비 67% 증가) 등 우유생산환경 악화가 주요인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수정안대로 생산예측치(195만 톤) 보다 8% 증가한 210만톤의 원유를 생산하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생산자측 입장이다.
또한 농식품부는 현장 조사를 통해 생산성을 높일 여력이 충분하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생산자들은 단순히 통계치만을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되는 문제이며, 일부 현장의 의견을 전체 농가로 확대해석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사육공간이 부족한 농가들이 부지기수일뿐더러 사육두수 확대로 인해 뒤따라오는 시설·설비 확대, 축분처리, 노동강도 증가 등과 같은 문제점들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3분기 젖소관측에서 1,2분기 원유생산량 감소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누락된 것과 관련해 생산자들이 정부안 당위성 확보를 위해 농식품부가 통계치를 은폐한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하는 등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생산비 폭등, 가공용 원유 생산 불가
농식품부는 농경연의 원유생산량 예측치 195만톤을 가정해 수정안을 적용하면 시행 첫해 농가소득이 1천500억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생산자들은 2020년 기준 리터당 809원었던 생산비가 현재 10% 상승한 900원대로 추정되고 있다며 생산비 이하 수준의 가격으로 원유를 생산할 수 있는 농가는 없다고 반박했다.
게다가 지난 20년간 생산비는 76.6%가 증가했는데 생산비의 55%를 차지하는 사료가격의 경우 한 차례 더 가격이 인상됐으며, 고용노동비 증가율은 313.83%, 정부규제 강화로 농구비·시설비 증가율은 83.02%에 달하는 등 생산비 증가요인은 여전히 산적한 상태다.
또한 현 체제에서 유업체에게 증산된 원유를 사용하도록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것을 문제삼았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지원을 확대해서라도 계약량이 모두 구매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으나 유업체는 ‘낙발위’에서 가공용 원유가격을 국제가격(400원/L) 수준으로 공급받지 않을 경우 구매의사가 없다고 밝힌 바 있어, 생산자들은 농식품부가 제시한 가격(600원/L)으로 유업체가 원유를 구매할지 장담할 수 없어 원유생산과 사용을 담보할 수 있는 세부실행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입산 장려대책 될 수도
생사자들은 농식품부가 유업체의 일방적 의견만 반영해 음용유를 190만톤으로 설정해 놓고 낙농가를 위한 정책이라는 것은 위선이라고 반박했다.
농식품부는 용도별차등가격제가 도입되어도 농가들의 쿼터가 감축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가공용 원유 구매에 대한 이행강제력이 없는 이상 유업체에게 쿼터삭감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단계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
생산자들은 이미 유업체가 70만톤(원유환산기준)의 유제품을 수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계적으로 가공용 원유 물량을 늘려가는 것은 결국 정상유대를 받는 음용유 사용량을 줄이면서 가공용 원유를 손쉽게 수입산으로 전환할 수 있는 ‘수입산 장려대책’이 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생산여건 악화로 원유생산량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는 위기 속에서 농가와 유업체간 대등한 거래교섭력과 생산자율권 확보, 국산 유가공품 생산과 사료가격 안정을 위한 정부재정투입 없이 용도별차등가격제를 도입할 경우 결국 국내 낙농기반이 붕괴하게 될 것이라고 생산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축산신문, CHUKSAN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