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불로 사라지는 꿀벌…우리 식탁 위협받고 있다

  • 등록 2025.07.31 08:3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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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성현 농촌진흥청 양봉과 전문연구원

[축산신문 기자]

“경북 의성에서 40년간 양봉을 해오던 김 씨는 올해 봄,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산불이 지나간 후 1천 개에 달하는 벌통과 2천만 마리의 꿀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2025년 3월 한 언론사의 보도내용이다. 산불이 한 양봉농가를 덮친 비극을 조명한 기사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우리 식탁에 오르던 벌꿀이 한순간 사라질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평균 451건의 산불이 발생해 축구장 5천300 개 크기의 숲이 사라진다고 한다. 특히 올해는 역대 최악으로 기록된 해로서 산불 건수는 347건으로 평년보다 적었으나 피해 면적은 서울 면적의 약 1.7배에 달해 통계 작성 이래 최대였다.
양봉농가가 입은 피해도 컸다. 150여 농가에서 약 4억 마리의 꿀벌을 잃었다. 우리나라 산불의 61%는 3~4월에 집중된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꿀벌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벌꿀 생산의 황금기로 아까시꽃, 밤꽃 등 꿀을 생산하는 주요 꽃들이 피는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특히 봄철 산불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강원도와 경상북도는 우리나라 양봉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경북 안동과 청송의 아까시나무 군락지는 전국 양봉농가가 모이는 곳인데 이번 대형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지구온난화로 산불 위험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산불 위험을 나타내는 ‘화재위험지수’는 2000년 10.6이었으나 최근 13.4로 크게 높아졌다. 이는 마치 체온이 36.5도에서 38도로 오른 것처럼 심각한 변화다. 산불 조심 기간도 봄철에 3일, 가을철에 2주씩 더 늘어날 전망이라 양봉농가가 입을 피해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산불이 양봉장을 덮치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호주와 아프리카 연구에 따르면 한 해 산불로 평균 21.3%의 벌통이 손실되며, 심하면 66.4% 벌통이 소실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수십 년간 일궈온 양봉장이 하룻밤에 잿더미가 되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꿀벌의 먹이가 되는 밀원식물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불탄 숲이 원래대로 회복되는 데는 최소 10~20년이 걸린다. 어떤 지역은 80년이 지나도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고 한다. 아까시나무나 밤나무 같은 주요 꿀 생산 나무가 사라지면, 그 지역 양봉업은 완전히 기반을 잃게 될 수 있다.
최근 연구 결과는 더 놀라운 사실을 보여주는데, 산불 연기가 직접적인 산불보다 벌에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산불 연기의 초미세먼지는 일반먼지보다 10배나 더 해롭다고 한다. 2020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산불 사례에서 산불 연기가 농작물의 4.5~21.6%에 간접 피해를 줬다는 조사 결과를 봤을 때 작은 몸집의 꿀벌은 산불 연기에 더욱 취약하리라 생각할 수 있다. 산불이 지나간 후 1~5년 동안은 산사태 위험도 늘어난다. 나무가 타버려 드러난 토양은 폭우가 내리면 그대로 쓸려 내려가게 된다. 이는 산비탈에 있는 양봉장은 산불 후에도 오랫동안 산사태 위험에 노출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우리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과거 산불 이력을 확인하고 급경사지를 피해 양봉장 위치를 선정해야 한다. 벌통을 신속히 옮길 수 있는 이동 장비를 준비하고 화재 감지 센서를 설치해 조기에 대응하며, 이웃 양봉농가와 비상 연락망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장기적으로는 고온과 가뭄에 강한 꿀벌 품종을 도입하고, 꽃이 피는 시기가 다른 밀원수를 심어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 또한, 제도적으로는 연기 피해까지 보상할 수 있도록 농업재해보험을 개선하고 양봉농가 간 상호부조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우리 식탁도 위험해진다. 꿀벌은 농작물 수분을 도와 우리 먹거리의 3분의 1을 책임지고 있다. 정부는 산불 예방과 피해 복구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고, 양봉 업계는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소비자에게는 국산 벌꿀의 가치를 알리고 양봉산업의 소중함을 인식하도록 홍보해야 한다.
강원도 철원의 아까시꿀과 경북 안동의 아까시꿀이 서로 다른 향과 맛을 지닌 것처럼, 벌꿀은 그 지역의 자연환경과 계절의 변화, 그리고 양봉농가의 땀과 노력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산불로 이러한 지역별 특색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 우리 벌꿀의 다양성을 지키는 일은 양봉산업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우리 식문화와 생태계를 지키는 일이다.
그 해의 꿀은 꿀벌이 최고의 꽃을 고르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 만드는 것이다. 우리도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나은 선택을 해서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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