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덴마크서 열린 ‘49차 세계양봉대회’를 다녀와서

  • 등록 2025.12.16 12:5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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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벌꿀 기준 대폭 강화’ 아피몬디아 선언문 발표

[축산신문 기자]

 

한상미 과장(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양봉과·한국양봉학회장) 

 

1. 인류와 꿀벌의 공존을 논의하는 지구적 협력의 장
2. 지속가능한 양봉산업을 위한 세계적 연구·정책의 흐름
3. Apimondia 2025, 꿀의 진정성을 말하다.
4. 유럽의(덴마크) 벌통 앞에서 본 우리 양봉의 현재와 나아갈 길

 

지난 2025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세계양봉대회(APIMONDIA)는 그 어느 대회 때보다 ‘벌꿀의 본질’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다. 대회 기간 매일 열린 Global Honey Talks에서는 연구자, 정책 담당자, 산업계가 한목소리로 ‘벌꿀의 진정성(authenticity)’을 논의하였고, 그 결실로 공식 선언문 ‘APIMONDIA Statement on Immature Honey Production’이 발표되었다. 이번 선언문은 단순한 권고문이 아니라, 국제 벌꿀 시장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기준이자 양봉산업의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중대한 이정표다.
 

벌꿀은 ‘자연의 산물’인가, ‘가공품’인가
국내외 일부 양봉농가가 벌꿀을 충분히 숙성하지 않은 채 조기 채밀하고, 이후 장비를 이용하여 수분을 인위적으로 제거해 ‘벌꿀’로 유통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생산량을 늘리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벌꿀의 정의와 정체성을 훼손하며 정직한 양봉농가와 소비자를 동시에 위협한다. APIMONDIA는 이러한 행위를 명확히 ‘벌꿀 부정행위(honey fraud)’로 규정했다.
꿀벌이 아닌 인간이 숙성 과정에 개입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벌이 만든 식품’이 아니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지침으로, 벌꿀의 가치를 영양성분이나 맛의 수준이 아니라, 벌·생태계·시간·공간이 함께 만든 과정 그 자체로 재정의한 선언문이었다.
 

왜 지금 ‘진정성’이 국제 의제의 중심이 되었는가
이번 대회에서 유럽 전문가들이 특히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유럽은 세계 벌꿀 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소비·수입 지역으로, 벌꿀을 일상 필수식품으로 인식한다. 이들은 벌꿀의 정의가 흐려질 경우 정직한 양봉농가의 소득이 감소하고 저품질의 농축 벌꿀이 시장을 잠식하여 소비자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며, 결국 양봉산업 전체의 지속가능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선언문 발표는 이러한 우려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증거다. 지금 세계 양봉산업은 ‘물량’이 아닌 ‘진짜 벌꿀’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한국 양봉산업의 현실 수출국은 아니지만, 결코 안전지대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벌꿀 수출은 2024년 기준 8.5톤에 불과하지만, 수입은 2천137톤에 달한다. 한국은 수출 시장의 압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보이지만, 산업 내부의 구조적 문제는 더욱더 복잡하다.
① 벌꿀 소비 감소와 시장 침체 : 소비자는 단맛을 제공하는 대체식품과 건강기능식품이 풍부한 시대에 “왜 벌꿀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기존의 신뢰 기반만으로 벌꿀 시장을 유지하기 어렵다.
② 국산 벌꿀의 정체성과 경쟁력 약화 : 저가 수입 꿀뿐만 아니라 고가 수입 프리미엄꿀도 증가하면서 국산 벌꿀의 위치는 더욱 모호해지고 있다. 동시에 소비자는 벌꿀의 품질을 시각적으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양봉농가의 양심’에 의존하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고, 이는 산업 신뢰를 불안정하게 한다.
③ 벌무리(봉군) 밀도 과도 및 밀원 감소 : 한국의 벌무리(봉군) 밀도는 1ha당 21.79 벌무리로, 미국·중국·뉴질랜드보다 월등히 높다. 이는 밀원 부족, 생산량 감소, 농가 소득 악화를 불러오는 구조적 한계다. 이러한 현실에서 APIMONDIA 선언문은 우리 양봉산업에도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벌꿀의 미래는 ‘진정성’에서 시작된다
APIMONDIA 2025 선언문은 단순히 부정행위를 규제하려는 것이 아니다. 벌꿀을 다시 ‘자연이 만든 식품’의 자리로 되돌리려는 국제사회의 의지다. 우리나라의 벌꿀 또한 단순한 축산물이 아닌 ‘한국 자연의 가치’로 세계와 공유할 때, 더욱 높게 평가받을 것이다.

축산신문, CHUKSA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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