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국 낙농의 지속가능성, 해외 진출에 달렸다

  • 등록 2025.12.24 10: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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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성 원 교수
충남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필자는 지난 기고에서 이번부터 우유 생산비를 근본적으로 낮추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생산비 절감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2026년부터 시작하는 것이 나을 듯해, 올해 마지막이 되는 이번 기고에서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한국 낙농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우리 축산인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렇게 방향을 조정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지난 11일에 있었던 ‘농림축산식품부 업무 보고’의 내용 때문이다.
다섯 가지 중점 추진 과제 가운데 축산과 낙농은 없었다. 물론 정책 전반을 설명하는 발표였고, 실제 세부 내용에는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중점 추진 과제를 설명하는 자료에 ‘작물’, ‘과일’, ‘채소’, ‘한식’, ‘노지’, ‘농지’, ‘장터’라는 단어는 등장한 반면, ‘가축’, ‘축산’, ‘낙농’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동물이라는 표현은 반려동물, ‘동물 복지’, ‘동물 학대’에서만 언급될 뿐이었다. 필자가 정부 정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비교적 최근이어서 원래부터 이래왔던 것인지, 아니면 현 정부 들어 이렇게 된 것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지금의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림식품부일지는언정 축산과 낙농은 사실상 찬밥 취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히 말한다. 우리 낙농은 버리기에는 아깝지만 먹을 것은 별로 없는 계륵, 닭의 갈비가 아니다.
우유는 건강을 생각했을 때 대체가 불가능한 음료다. 필수아미노산과 칼슘, 필수지방산, 비타민이 풍부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혈당을 올리지 않는 다이어트 식품이며, 어떠한 합성물도 들어 있지 않은 100퍼센트 순수 자연 음료다. 채식자조차 건강과 맛을 이유로 유제품을 섭취하며, 국내 1인당 소비량은 연간 84kg으로 쌀 소비량 56kg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한국 낙농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305일 기준 두당 1만 kg이 넘는 산유량, 사료 1kg으로 약 1.3kg의 우유를 생산하는 높은 사료 효율, 개체 이력 관리, 후대 검정, 유전체 분석으로 이어지는 육종·개량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인공수정과 수정란 이식, 위생과 방역, 콜드체인, 협동조합 체계, 경영·정책·교육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선진적인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으며, 정밀낙농과 스마트 기술은 이미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이 모든 것을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냈다는 점이다.
이처럼 우수한 장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낙농은 위기를 맞고 있다. 생산 기술에만 집중하고 소의 먹거리, 즉 조사료를 자급하지 못하면서 사료비와 생산비를 줄이는 데 구조적인 한계가 생겼다. 여기에 자본주의의 특성상 생산비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우유 가격은 쉽게 올릴 수 없으니 수익성은 악화되고, 결국 유업체들마저 낙농에서 등을 돌리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산비를 낮추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며,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다. 다만 이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일이다. 세계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매우 좋다. K-팝, K-방역, K-민주주의의 힘을 바탕으로 K-낙농을 세계에 수출해야 한다. 지정학적 이점을 살려 신선도와 품질을 무기로 K-밀크와 K-유제품을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에 수출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비싼 우유로 수출이 가능하겠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홋카이도산 멸균우유가 리터당 1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우리의 기술과 전략이라면 충분히 프리미엄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또 하나는 기술 수출이다. 낙농업의 발전은 단일 기술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 기술이 오랜 시간에 걸쳐 융합되어야 가능하다. 하드웨어만으로도, 인력만으로도 성립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모든 요소가 함께 갖춰져야 비로소 낙농업의 기반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이를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이러한 기술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국내 낙농 관련 IT 및 장비 기업들이 해외 진출을 시작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낙농 관련 요소 기술을 패키지화해 수출할 수 있는 길은 이미 열리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중점 추진 과제의 두 번째로 ‘K-푸드 플러스 수출과 스마트 농업 기술 및 AI의 농업 전반 확산’을 제시하고 있다. 이 과제에서 가장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낙농이다. 낙농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힘과 지혜를 모은다면 한국 낙농은 세계적인 K-낙농으로 거듭날 수 있다. 과거 닭의 갈비가 먹을 것 없는 계륵으로 여겨졌다면, 지금의 닭갈비는 세계적인 K-푸드로 자리 잡았다. 우리에게는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기술과 잠재력이 분명히 있다. 필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행동하는 것뿐이다.

 

축산신문, CHUKSA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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