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시 혁 교수
서울대학교
농생명공학부
꿀벌은 농업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수분매개자 중 하나이지만, 최근 수년간 꿀벌집단 폐사와 봉세 약화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꿀벌응애, 질병, 기후변화, 영양결핍 등 다양한 요인이 논의되어 왔으나,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온 문제가 바로 벌통 내부에 축적되는 농약 잔류이다. 최근 국내외 연구 결과들은 벌통이 단순한 ‘서식 공간’을 넘어, 농약이 농축·축적되는 화학적 노출 환경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벌통 내부는 외부 환경과 달리 꿀벌이 직접 채집한 화분, 꿀, 수지(프로폴리스), 그리고 밀랍이 지속적으로 축적되는 폐쇄적 공간이다. 문제는 이들 물질이 모두 농약 잔류의 저장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밀랍(wax)은 지용성이 강해 대부분의 농약 성분이 장기간 잔류·축적되기 쉽다. 더구나 벌통 내부에서 꿀벌응애 방제를 위해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살비제는 지용성이 높아 밀랍에 흡착되어 장기간 잔류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해외 조사에서는 하나의 벌통 밀랍에서 플루발리네이트, 아미트라즈 대사체, 쿠마포스 등 꿀벌응애 방제용 살비제를 비롯해, 농경지에서 사용되는 수십 종 이상의 농약 성분이 동시에 검출된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국내 실태조사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관찰되고 있다. 살비제뿐만 아니라 살충제, 살균제, 제초제 등 다양한 성분이 벌통 내부에서 검출되며, 이들 중 대다수는 꿀벌에 급성 독성을 유발하지 않는 아급성(sublethal) 농도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저농도 농약에 대한 만성 노출은 꿀벌의 해독대사계, 면역계, 행동 패턴에 지속적인 부담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독으로는 치명적이지 않더라도, 여러 성분이 혼재된 상태에서는 이른바 ‘칵테일 효과’를 통해 벌무리(봉군) 건강을 서서히 약화시킬 수 있다.
특히 우려되는 점은 벌통 내부 농약 잔류가 병원체 감염과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농약에 노출된 꿀벌은 해독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바이러스, 세균, 진균, 원생동물 등의 병원체에 대한 면역력이 저하되고, 이는 낭충봉아부패병, 날개불구병, 노제마병 등 각종 질병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농약 잔류는 급성 폐사의 직접 원인은 아닐 수 있으나, 벌무리의 전반적인 건강성을 저해하는 만성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재 벌통 내부에서 잔류할 가능성이 높은 항생제나 살비제에 대한 잔류허용기준은 사람이 식품으로 섭취하는 벌꿀을 대상으로만 설정되어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꿀벌의 생리에 만성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밀랍, 화분, 화밀 내 잔류량 기준 설정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다. 아울러 국내에서도 다수의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와 피프로닐을 비롯한 침투이행성 농약이 빈번히 사용되고 있어, 이들에 의한 화밀과 화분 오염 역시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벌통 내부 농약 잔류에 대한 허용기준 설정, 정기적인 모니터링 체계 확립, 밀랍 교체 주기에 대한 과학적 가이드라인 제시, 그리고 양봉 환경을 고려한 농약 사용 지침 개발이 시급하다.
앞으로의 대응은 보다 입체적이어야 한다. 첫째, 벌통 내부 매트릭스(밀랍·꿀·화분·봉충)에 대한 체계적인 잔류 실태조사가 정례화되어야 한다. 둘째, 검출 빈도가 높은 농약 성분을 중심으로 꿀벌 아급성 독성 및 혼합독성 평가가 병행될 필요가 있다. 셋째, 오래된 밀랍의 단계적 교체, 저잔류 농약 사용 유도, 작물 방제 시기와 꿀벌 활동 시간 간 조정 등 현장 적용이 가능한 관리 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
꿀벌 보호는 단순히 한 종을 지키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농업 생산성, 생태계 안정성, 그리고 식량 안보와 직결된 문제다. 벌통 내부 농약 잔류에 대한 과학적 실태조사는 꿀벌집단 폐사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퍼즐 조각이며, 이제는 이를 정면으로 다뤄야 할 시점이다. 보이지 않는 위험을 외면한 채 지속 가능한 양봉과 농업을 논할 수는 없다.
축산신문, CHUKSANNEW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