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달걀과 삼겹살은 ‘밥상의 신호’ 가축질병과 식량 자급의 현실

  • 등록 2026.02.04 10: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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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갑 원
경제학 박사
 

 

요즘 장을 보다 보면 예전과는 다른 장면들이 눈에 들어온다. 달걀 진열대 앞에서 가격표를 한 번 더 보게 되고, 삼겹살을 고를 때도 잠시 주머니를 확인하게 된다. 빵집에서는 “원가 부담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하소연이 들리고, 햄이나 소시지 가격도 슬슬 오르는 게 느껴진다. 통계보다 먼저, 우리의 일상에서 체감되는 변화다. 작년 겨울 산란계의 6% 가까이가 살처분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여파로 달걀 한 판 가격이 7천 원대를 훌쩍 넘겼던 기억도 아직 생생하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반복되는 가축질병이 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는 해마다 겨울이면 되풀이되고,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특정 지역이나 시기를 가리지 않는 상존 위험이 됐다. 질병이 발생할 때마다 산란계와 돼지는 대규모로 살처분되고, 축산 현장과 시장은 동시에 흔들린다. 살처분 이후 닭을 입식하더라도 산란이 안정되기까지는 다시 몇 달의 시간이 필요하고, 돼지는 재입식 후 출하까지 반년 가까이 걸린다. 이 시간차가 가격을 먼저 움직이게 만든다. 가축질병은 더 이상 일시적인 변수가 아니라, 축산업과 식품 시장을 압박하는 구조적 요인이 됐다.
달걀은 이런 구조를 가장 빠르게 보여주는 품목이다. 산란계가 줄어들면 달걀 생산은 즉각 회복되지 않는다. 닭을 입식한다고 해서 곧바로 알이 나오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급 공백이 생기면 가격은 빠르게 반응하지만, 생산이 회복되는 속도는 훨씬 더디다. 그래서 달걀 가격은 오를 때는 빠르고, 내려올 때는 늘 한 박자 늦다. 이 여파는 가정 식탁에만 머물지 않는다. 달걀은 빵과 과자, 제과·제빵 제품 전반에 쓰이는 기본 원료다. 달걀 값이 오르면 제빵업계와 외식업계의 부담이 커지고, 그 영향은 빵값과 디저트 가격, 급식비 인상으로 이어진다.
돼지고기도 다르지 않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 발생 즉시 살처분이 불가피한 가축질병이다. 돼지고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육류인 만큼, 생산 기반이 흔들리면 삼겹살 가격부터 반응한다. 여기에 더해 돼지고기는 햄과 소시지 같은 가공육의 핵심 원료이기도 하다. 돼지고기 수급이 불안해지면 가공육 원가가 오르고, 외식과 급식, 가정간편식 전반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축질병 하나가 밥상 전체를 흔드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수입은 늘 가장 빠른 대응 수단으로 등장한다. 최근 달걀 가격이 오르자 수입 달걀을 들여와 시장에 공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장의 수급과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에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런 대응이 반복될수록 근본적인 질문은 남는다. 가축질병이 발생할 때마다 밖에서 들여오는 임시방편 외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해법은 없는가 하는 점이다.
달걀이나 돼지고기는 쌀처럼 오래 저장해 둘 수 있는 품목이 아니다. 신선도가 중요하고, 물류와 유통 여건에 따라 가격과 품질이 크게 좌우된다. 지금은 해외에서 들여오는 것이 가능해 보이지만, 국제 물류가 흔들리거나 해외 생산국에서도 질병이 확산된다면 상황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자급률이 몇 퍼센트인지 따지는 숫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평시 생산량보다 중요한 것은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버티고, 얼마나 빨리 회복할 수 있는지다.
이쯤에서 식량자급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가축질병과 기후 위험이 반복되는 시대에 식량자급은 단순한 생산량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회복력의 문제에 가깝다. 방역과 살처분, 재입식과 수급 관리로 이어지는 과정은 개별 농가의 부담을 넘어 사실상 공공의 영역에 놓여 있다. 축산업의 기반을 유지하지 못하면, 그 비용은 결국 가격이라는 형태로 국민의 밥상에 돌아온다.
달걀과 삼겹살 가격이 알려주는 신호는 분명하다. 수입에 기대는 단기 처방만으로는 반복되는 가축질병 시대를 버텨내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축산업의 기반을 지키고, 위기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가는 정책적 선택이다. 밥상이 흔들리면 사회 전체가 흔들린다. 식량자급은 평온할 때의 숫자가 아니라, 흔들리는 순간에도 밥상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힘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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