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충 현 교수
호서대 동물보건복지학과
변화하는 한국인의 식탁, 위기에 처한 축산업
2022년은 한국 농업사에 하나의 챕터를 만들어 주었다. 오천년 쌀이 주식이였던 민족이, 육류가 주식인 민족으로 바뀌었다. 1인당 육류 소비량은 2022년 59.8㎏을 기록하면서 그해 1인당 쌀 소비량(56.7㎏)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해마다 쌀·육류 소비량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문제는 자급률이다. 2024~2025년 기준 국내 육류 자급률을 보면 쇠고기 약 40%, 돼지고기 70%대 초중반, 닭고기 80%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특히 돼지고기의 경우, 한때 80%에 달했던 자급률이 60%대로 급락한 적도 있었다. 고생산비와 저돈가의 악순환 속에서 양돈농가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이는 곧 국내 생산기반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필자가 25년간 현장에서 목격한 변화는 더욱 극명하다. 1990년대 후반 자유무역 바람이 불어닥치면서 저렴한 수입 돼지고기가 물밀듯 밀려들었고, 소비자들의 거부감도 점차 사라졌다. 그 결과 한국 양돈업은 생존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한국의 축산업 보호 전략, 그 진화사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자국 축산업을 지켜왔을까? 그 역사를 돌이켜보면 세 가지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는 ‘직접적 차단’ 시기였다. 과거에는 단순히 ‘수입 금지’로 버텼다. 하지만 WTO 체제가 본격화되면서 이런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2단계는 ‘가격 및 검역 장벽’ 구축이었다. 고관세와 까다로운 검역 절차를 통해 수입품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전략이었다. 지금도 유효한 방법이지만, 국제적 압력과 소비자 부담 증가라는 부작용이 따랐다. 3단계는 현재 진행 중인 ‘질적 장벽과 가치 소비’ 전략이다. K-축산 브랜드 구축, 환경 기준 강화, 안보 논리 활용 등이 그것이다. 이는 ‘무역 보복을 피하면서도 국내 농가 생존권을 지키는 정교한 기술적·제도적 장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였다. 그리고 이제 4단계가 시작되고 있다. 바로 ‘동물복지’라는 새로운 무기가 등장한 것이다.
EU-칠레 협정이 보여준 동물복지의 위력
2023년 12월 체결된 EU-칠레 현대화 협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물복지가 어떻게 무역 장벽으로 작용하는지 알 수 있다. 이 협정에는 ‘동물 감정 능력 인정’, ‘성장촉진제로 사용되는 항생제 단계적 폐지’, ‘농장에서부터 도축까지 전 과정의 동물복지 기준 적용’ 등이 명시되어 있다.
칠레 축산업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EU 시장 접근을 위해서는 따를 수밖에 없지만, 농가들의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칠레 축산업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전환비용을 지원해주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농가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2023년 체결된 EU-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이다. EU는 뉴질랜드로부터의 쇠고기 수입 할당량을 설정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목초지에서 자연 방목으로 기른 쇠고기만 받겠다. 집약적 사육시설에서 나온 고기는 안 된다.”
이는 단순한 품질 기준이 아니다. 생산 방식 자체를 규제하는 것으로, 사실상 강력한 비관세 장벽인 셈이다. 뉴질랜드 농업부도 “우리 축산업의 생산 방식을 EU 기준에 맞추라는 압력” 라고 해석했다.
EU의 마스터플랜: 2025-2029 동물복지 무역블럭
EU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5년 2월 발표된 ‘EU 농업식품 비전 2025-2029’는 더욱 충격적이다. 핵심 내용은 단순명료하다. “앞으로 EU에 들어오는 모든 동물성 제품은 EU와 똑같은 동물복지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올리베르 바르헬리 EU 보건·동물복지 담당 집행위원은 “2026년까지 케이지 사육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첫 번째 입법안을 내놓겠다. 그리고 이 기준은 수입품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그 파괴력을 알 수 있다. EU 140만 명이 서명한 ‘케이지 시대 종료’ 시민발의에 응답하여 농장동물의 케이지 사육을 전면 폐지할 예정이다. 더 나아가 150만 명이 서명한 ‘모피 없는 유럽’ 시민발의에 대한 응답도 2026년에 나올 예정이다. 이는 빈말이 아니다. EU는 이미 수입 통제 강화를 위한 전담 태스크포스를 구성했고, “현장에서의” 수입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2025년부터 동물복지 기준 미준수 제품의 EU 시장 진입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EU의 이런 전략은 WTO 규범상 ‘공공도덕(public morals)’ 범주로 분류되어 합법적이다. 이미 EC-물개제품 사건(2009-2014)에서 동물복지가 무역 제한의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있다는 판례를 확보한 상태다. 당시 WTO 상소기구는 “동물복지에 대한 우려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도덕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라며 EU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국 축산업에게는 위기인가, 기회인가?
그렇다면 이런 변화가 한국 축산업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위기로만 볼 일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첫째, 동물복지 기준은 수입품에 대한 강력한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다. 현재 한국으로 들어오는 저렴한 수입 육류의 상당수는 집약적 대량 생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태국, 인도 등 주요 축산물 수출국들이 EU 기준을 맞추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한국도 EU처럼 동물복지 기준을 수입품에 적용한다면, 이들 제품의 경쟁력은 크게 약화될 것이다. 둘째, 국내 소비자들의 인식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최근 대형마트의 동물복지 인증 제품 매출이 전년 대비 30% 증가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동물복지가 구매 결정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셋째, 수출 경쟁력 강화의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EU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동물복지가 점차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먼저 준비하면 오히려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EU의 ‘브뤼셀 효과(Brussels Effect)’를 생각해보자. EU가 정한 기준이 결국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는 현상이다.
EU-칠레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동물복지는 단순한 윤리적 부담이 아니라, 국제 시장에서의 경쟁력이자 국내 산업 보호의 새로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5년간 현장을 지켜본 입장에서 확신한다. 동물복지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한국 축산업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K-축산이 진정한 K-브랜드로 거듭나는 길이다.
축산신문, CHUKSANNEW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