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재의 축산 인사이트 11> 기술만능주의 넘어 맞춤형 혁신이 축산 미래 좌우

  • 등록 2026.02.26 10: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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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재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축산바로알리기연구회장

 

기술의 빛과 그림자
기술을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는 흐름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특히 오늘날 AI와 디지털 전환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의 생존을 결정하는 핵심 조건이며, 축산업 역시 그 중심에 서 있다. 모든 단계에 ‘스마트’ 라는 이름이 추가되어 마치 이러한 기술만 도입하면 축산업이 곧바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것 같은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시점에서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기술은 정말 축산업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은 무엇이며,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가?

기술이 있음에도 시작도 못하는 현실
축산업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도입이 가능했던 기술과 정책이 적지 않다. 그러나 실제 실행을 가로막은 것은 기술 부족이 아니라, 지역사회와의 갈등과 주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여러 현실적 여건들이었다. 사회적 동의가 부족한 이유 때문에 많은 정책이 시작 단계에서부터 막혀버린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분뇨 자원화 정책이다. 퇴·액비를 체계적으로 순환시키는 자연순환농업은 환경 보호와 지역경제 활성화, 지속가능성 확보 측면에서 미래 축산업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분뇨 이동 경로에 대한 오해, 처리시설 입지 갈등, ‘혐오시설’이라는 고정된 편견이 겹쳐지며 사업이 시작 단계에서부터 좌초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강원도 평창군은 2002년 시작한 광역 폐기물 처리시설 조성사업이 주민 소송과 갈등 끝에 지난해 무효 판결을 받았다. 사회적 토대가 마련되지 못하니 기술은 20년 넘게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현실이 제자리걸음이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술이 아니라 기술이 작동할 수 있는 사회적 신뢰의 회복이다. 축사 시설은 혐오시설이 아니라, 자원순환과 환경보전을 가능하게 하는 지역의 필수 기반시설로 인식이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주민과 농가가 함께 참여하는 투명한 교육·홍보, 정당한 이익 공유, 제도적 지원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해외 성공 모델이 한국의 정답이 될 수 없는 이유
최근 축산 분야에서는 ‘미국형’ 기술, ‘유럽형’ 스마트 시스템과 같은 해외 성공 사례가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선진국에서 효과를 입증한 기술이라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한국 축산업의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우리나라 축산업은 대규모 법인농 중심의 서구와 구조적으로 다르다. 중소농·소농이 주축을 이루고, 사육면적이 좁으며, 농가가 밀집된 지역 구조와 규제 환경도 매우 복잡하다. 이런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술을 그대로 들여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농가의 부담만 키울 수 있다.
예를 들어 미래 축산기술의 핵심으로 꼽히는 정밀사양만 봐도 그렇다. 이 기술이 국내에서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한국에서 사육하는 가축의 축종별 생리·영양 요구량에 대한 정밀한 데이터, 개체별 생체 정보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센서, 자동 사료급여 시스템, 그리고 이를 분석할 ICT 기반 빅데이터가 모두 갖춰져야 한다.
즉, 단순히 장비를 도입한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사양 환경과 농가 구조에 맞게 전반적인 시스템이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결국 기술은 ‘수입’이 아니라 ‘재설계’를 거쳐야 한다. 농가 규모, 기후, 사육방식 등 한국 축산이 가진 고유한 조건을 반영한 맞춤형 기술만이 실제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다.
또한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라 해도 도입 비용이 지나치게 높으면 농가에서는 적용할 수 없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규모의 경제에 맞지 않거나, 비용을 농가들에게만 전가하는 기술은 결국 탁상공론에서 끝나버릴 수 있다.

 

문제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와 구조
기술만 발전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은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그 한계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가령 전기차는 탄소 배출을 줄였지만 배터리 폐기물이라는 새로운 부담을 만들었고, 동물복지를 이유로 페이크 레더를 선택하자 오히려 플라스틱 쓰레기가 더 늘었다. AI 역시 단순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방대한 데이터 노동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산업 구조를 만들어냈다.
축산업도 이러한 기술만능주의에서 예외가 아니다. 예컨대 냄새 문제만 보더라도, 일부 농가가 “법적 기준만 지키면 된다”는 소극적 태도를 유지하는 한 아무리 첨단 설비를 갖추더라도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법 기준을 충족한다는 사실이 변화를 위한 압박을 약화시키고, 결과적으로 문제 해결을 더 늦추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결국 진짜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와 구조적 변화다. 농가 스스로 지속 가능한 축산업을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를 자문하고 적극적으로 개선 의지를 갖는 순간, 기술은 비로소 의미 있는 변화를 실현하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은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 도구일 수 있지만, 변화의 출발점은 언제나 사람의 의지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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