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민병진 기자] 국내 낙농산업이 수급불균형과 생산비 상승, 유제품 수입량 증가라는 삼중고로 유례없는 산업 붕괴 위기에 직면하면서 낙농가들은 생존을 위해 체질 개선을 통한 새로운 돌파구 모색에 나서고 있다. 경기 이천의 토끼실목장(대표 박찬훈)은 수정란 이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유전자 기반 관리를 통한 우군 정예화로 수익구조를 다변화한 곳으로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생산 중심의 전통적 낙농에서 벗어나 유전체 분석에 기반한 번식 전략 고도화와 분양, 한우 사육으로 새로운 생존 모델 구축에 성공한 토끼실목장의 경영 철학을 들어보았다.
하위 개체 과감히 배제…수정란 이식으로 우군 체질 개선
연간 30두 분양…재구매 이어지는 안정적 수익구조 확장
청정육종농가 전환 추진…미래 유전자원 경쟁력 확보
설계하는 낙농의 즐거움, 지속가능성으로의 변화 모색
‘선택과 집중’으로 우군 정예화
토끼실목장의 핵심 경쟁력은 유전자에 있다. 박찬훈 대표는 “수정란 이식은 수십년에 걸쳐 축적된 유전자를 한 번에 도입하는 것”이라며 “결국 시간을 사는 투자”라고 강조한다. 2005년 여주농업고등학교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낙농에 뛰어들 당시 학창시절 소를 출하해서 마련한 1천300만원을 서울우유 양평생명공학과학연구소 수정란 사업에 투자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
우군 선발에 있어서도 과감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박 대표는 전두수를 대상으로 유전체 검사를 실시한다. 어느 한 기관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국·내외 여러 기관에서 유전자 검사 결과를 받아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 착유우 중 상위 20%를 제외한 소들은 한우 수정란을 이식해 혈통을 끊어내고, 우수한 능력의 개체들에겐 각각의 유전적 보완을 할 수 있는 성감별 정액을 사용한다.
이는 개체수를 조절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군을 정예화시키면서, 한우를 통한 부수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일석이조 전략인 셈이다. 박 대표는 “목장에선 젖소가 직원이다. 산업이 어려울수록 앞으로의 경쟁력은 엘리트 우군을 갖고 있는가로 판가름 날 것이다. 특히, 개량의 결과물을 받아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정액을 선정할 땐 신중하게 사용하는 편”이라며 “체형과 생산성 밸런스 위주의 경제수명이 높은 정액 중심으로 수정시켜 필요할 때 현금화가 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개량 성과의 수익화
20여년에 걸친 개량은 목장의 기반을 튼튼하게 잡아주는 밑거름이 됐고, 고부가가치 수익 창출원이 되고 있다. 뛰어난 강건성을 자랑하는 토끼실목장의 젖소들의 두당 산유량은 32kg로 세균수·체세포 성적은 연중 1등급을 놓치지 않고 있으며, 유지방·유단백 모두 4.2~3%대로 뛰어난 성적을 자랑한다.
또, 2020년부터 6년 동안 엑설런트우를 배출하는 성과를 달성했으며, 전국·지역 단위 품평회 가릴 것 없이 참여, 출품축은 해당 부문에서 항상 1~2위를 놓치지 않고 있으며, 지난해만 하더라도 이천시 홀스타인품평회 주니어챔피언과 서울우유 홀스타인대회 11부 최우수를 차지하는 등 개량 농가로서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토끼실목장은 생산 중심에서 벗어나 분양이라는 또 다른 수익 모델을 안정적으로 구축했다. 토끼실목장은 연간 약 30두의 착유우를 외부 농가에 분양하고 있는데, 꾸준한 재구매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다. 농가들이 토끼실목장의 소를 찾는 이유는 명확하다. 체형이 크지 않은, 유두배열이 고르고, 부착이 잘된 생산량이 좋고, 착유하기 좋은 소위 돈이 되는 소를 두루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가격은 마리당 550만원대 수준으로 과도한 프리미엄 대신 가성비 있게 일정 수 이상 구매 시 송아지를 추가 제공하다보니 우리 목장의 젖소를 사가는 분들은 또 사러 와주는데, 목장당 10두씩은 가져간 것 같다”며 “육성우 육종농가를 하고 있는 입장에선 수정란 이식 때문에 육성우를 많이 확보할 수 밖에 없는데, 젖소 분양으로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최상위 유전자 선점, 청정육종농가 도약
청정육종농가를 목표로 토끼실목장은 3곳의 목장 중 한 곳을 2024년 육성우 육종농가로 전환했다.
육성우 육종농가는 5대 전염성 질병(우결핵, 구제역, 브루셀라, 요네, 류코시스)에 대해 음성 판정을 받은 미경산우 20두 이상을 보유하고 독립적 방역시스템을 구축한 목장으로 청정육종농가와 똑같은 혜택을 받아 북미산 상위 0.1% 이내 유전자원을 공급받을 수 있다.
그가 육성우 육종농가를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수직감염 차단이다. 준비 단계서 어미 초유를 먹이지 않고 분말 초유로 대체해 감염 경로를 차단함으로써 4년 경과 후 류코시스 감염률은 절반 수준까지 낮췄고, 청정 개체를 별도 우군으로 선별해 육성우 육종농가가 될 수 있었다. 지금도 6개월 이상 개체에 대해서는 전수 검사를 실시한다. 감염 개체는 예외 없이 한우 수정란을 이식해 감염을 원천 차단하는 방식으로 청정 우군 비율을 지속적으로 높여 착유 목장까지 청정화한다는 계획이다.
청정육종농가를 지향하는 이유는 훗날 더 발전한 목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결정이다. 박 대표는“도입 수정란을 통해 LPI·TPI 상위 개체를 확보할 수 있게 되면서,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최상위 유전자를 3~5년 먼저 직접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본토서 3대에 걸친 고능력우의 역사를 사오는 것으로 우리 목장의 발전을 빠르게 이뤄낼 수 있다”며 “또, 우리 목장에서 태어나는 수소가 향후 국내 낙농을 이끌 씨수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일의 즐거움이 만든 경쟁력
박 대표가 낙농업에 진심일 수 있는 원동력은 ‘재미'다. 그는 “단순 반복 작업만 해선 목장일이 지겨울 수 밖에 없다. 유전자를 설계하고, 그 결과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실제 토끼실목장엔 LPI 3천800 이상, 상위 0.1%에 해당하는 개체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겉보기엔 같은 소처럼 보여도 유전능력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 나에게는 마티즈와 벤츠 차이”라며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최근에는 사양관리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며 또 다른 재미를 찾았다. 이천 델몬트 물류센터와 협의를 통해 상품성이 없는 바나나와 파인애플을 받아, 육성우 사료에 배합해서 급여한다. 박 대표는 “기업에서 상품성이 떨어져 폐기되는 과일을 활용하는 방식이라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상생 모델”이라며 “소들이 먹는 모습을 보면 안할 수가 없다. 기호성이 좋아져 사료 섭취량이 늘면서 털도 반질반질해지고, 수태율과 생산성도 개선된 것 같다. 요즘 같은 어려운 시기에 비용을 줄일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현재 토끼실목장은 총 170두(착유우 약 70두), 서울우유 쿼터 2천300kg 규모다. 박 대표는 향후 3톤으로 쿼터를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는 “낙농산업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규모화가 필수라고 생각한다. 좋은 소를 확보하는 것이 곧 경쟁력이고, 부가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경영전략이 필요하다”며 “규모를 좀 더 키우고 직원을 한명 더 고용해서 조금은 여유롭게 목장을 운영하고 싶다. 아울러, 청정육종농가 전환을 완료하고 별도의 한우 농장도 만들어 브리더 목장으로서 개량에 힘쓰는 것이 꿈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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