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품종의 유전적 다양성이 무너지고 있다

  • 등록 2026.04.22 14: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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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형욱 교수(국립인천대학교 생명과학부)

[축산신문]

 

최근 국내 양봉 현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변화는 봉군 폐사 그 자체보다도, 그 배경에 있는 유전적 기반의 약화다. 꿀벌의 집단 붕괴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바이러스, 응애, 기후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그 충격을 견디는 힘은 결국 품종과 계통의 유전적 다양성에서 나온다.
문제는 지금, 이 기반이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양봉은 오랫동안 생산성 중심의 개량과 외래 계통 도입에 의존해 왔다. 꿀 생산량, 온순성, 관리 편의성 등 단기적인 성과를 기준으로 계통이 선택되고 확산됐다. 이러한 흐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려는 체계적 관리 없이 특정 계통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데 있다.
국내 양봉 산업의 규모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으며, 우리나라에 있는 서양벌의 봉군 수는 1990년 약 53만 봉군에서 2023년 약 257만 봉군으로 증가했으며, 세계적으로도 상위권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장과 달리, 꿀벌 품종과 계통에 대한 유전적 특성 분석과 데이터 기반 관리 체계는 아직 충분히 구축되지 못한 상태다. 유전적 다양성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가 없이 전통 육종을 하게 되면, 겉으로는 생산성이 유지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환경 조건이 바뀌거나 질병 압력이 증가하는 순간, 봉군은 급격히 무너진다. 이는 특정 병원체의 문제가 아니라, 버틸 수 있는 유전적 폭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꿀벌은 일반 가축과 다른 특성을 가지는데, 한 마리의 여왕벌이 여러 수벌과 교미하는 일처다부제 구조를 가지며, 하나의 봉군이 유전적으로 다양한 하위 집단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구조는 본래 환경 변화와 질병에 대응하기 위한 자연의 전략이다. 그러나 인위적인 계통 집중과 관리 미흡은 이 구조를 약화시키고 있다.
최근 현장에서 더욱 우려되는 부분은 꿀벌응애에 대한 저항성 저하다. 반복적인 약제 사용과 제한된 계통 내 교배는 장기적으로 응애에 대한 내성을 약화시키고, 바이러스 감염을 더욱 쉽게 확산시키는 조건을 만든다. 또한 특정 생산성이나 온순성, 성장 및 번식생리 등 단일 목표를 중심으로 품종을 개발할 경우, 기후변화와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하나의 공통된 원인으로 귀결된다. 유전자원에 대한 정밀한 이해 없이 이루어진 개량의 한계다. 유전자는 단순한 정보의 집합이 아니라 행동의 표현과 생리·생태적 적응으로 드러나는 특성의 총합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2000년대 후반 이후 우리나라에서 질병과 기후변화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하는 꿀벌 집단이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단순한 환경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는 유전적 기반의 불안정성과 구조적 변화가 누적된 결과로 볼 수 있으며, 오랫동안 한반도에 자리 잡고 있던 다양하고 안정적인 유전형질을 가지고 있던 꿀벌의 유전 다양성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외래 계통 도입 시 문제가 되는 것이 환경에 해로운 영향을 주거나, 기존 토종 생물자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현상 및 유전자의 빈도가 급격히 변화하는 현상(유전적 부동, genetic drift)이 일어 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인위적으로 될 경우, 기존의 고유 생물자원에 급격한 영향을 주어, 심지어는 국가 생물자원을 잃어버리거나 무시하게 되는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늘 유전적 다양성의 문제에서는 외래 계통 도입을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지역 환경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한 계통이 확산될 경우, 기존 유전자원과의 교잡을 통해 오히려 전체 집단의 적응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품종 문제가 아니라, 국가 유전자원 관리의 문제이므로 매우 신중한 관리와 연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접근은 이미 해외 주요 양봉 선진국에서 구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대학과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육종 프로그램이 구축돼 있으며, 민간 종봉업자와 협력해 계통 선발과 현장 적용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응애 저항성 등 특정 형질을 목표로 한 장기적인 육종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계통 관리와 유전자 분석이 병행되고 있다. 호주의 경우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과 민간 산업이 협력하는 형태로 국가 단위의 유전자원 관리와 육종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Plan Bee’와 같은 프로그램은 꿀벌의 유전적 특성, 생산성, 환경 적응성을 데이터로 축적하고 이를 기반으로 계통을 선발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와 함께 해외에서는 인공수정 기술을 활용한 정밀 육종이 이미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선발된 계통의 유전적 특성을 유지하고 특정 형질을 강화하기 위해 교배를 정밀하게 통제하며, 응애 저항성과 같은 형질을 안정적으로 고정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기술은 유전자 분석과 결합된 분자육종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데이터 기반으로 계통을 설계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구조가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정부, 연구기관, 민간이 역할을 분담하면서 유전자원 분석, 정밀 교배, 계통 관리가 통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국내는 아직 이러한 체계가 충분히 구축되지 못한 상태다. 결국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품종 보존의 문제가 아니라, 양봉 산업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토종벌이든 서양벌이든 각 품종과 계통의 유전적 특성과 생리·생태적 차이를 과학적으로 규명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안정적인 생산 기반은 물론 고부가가치 양봉산물 개발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꿀, 화분, 프로폴리스와 같은 1차 생산물뿐만 아니라 기능성 소재나 사료 자원으로의 활용까지 고려할 경우, 품종별 특성에 대한 정밀한 데이터 확보는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농가의 경험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꿀벌의 행동, 생리 상태, 환경 반응, 생산성을 통합적으로 수집·분석하는 디지털 양봉 플랫폼의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품종과 계통의 특성을 표준화하고 생산성과 기능성을 동시에 평가할 수 있어야, 우리나라에서도 경쟁력 있는 양봉산물과 관련 사료 개발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계통 확산이 아니라, 유전자원의 정밀한 분석을 기반으로 한 과학적 관리다. 각 계통의 유전적 특성, 질병 저항성, 환경 적응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그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하며, 이러한 기반 위에서 비로소 데이터 기반의 계통 관리와 디지털 정밀 육종으로의 전환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양봉에 있어서 궁극적인 질문을 바꿔야 한다. 즉, “왜 봉군이 죽었는가”가 아니라, “왜 이 계통은 버티지 못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 문제는 단순히 양봉 농가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
유전자원 보존, 계통 관리, 장기 육종 전략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산업이 함께 다뤄야 할 영역이다. 2019년 ‘양봉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그러나 여전히 현장에서는 단기 대응과 개별 관리에 의존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유전적 다양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어떤 방제 기술도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약을 바꾸고, 장비를 도입하고, 관리 방식을 개선해도 버틸 수 있는 유전적 기반이 없다면 붕괴는 반복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생산성 중심의 개량을 넘어, 유전적 다양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전략적 접근이다. 양봉 선진국과 안정된 농업생태계를 위해서는 데이터 기반의 꿀벌 계통 관리, 그리고 과학적 정밀 육종이다. 이제 꿀벌 산업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유전적 기반을 회복할 것인가, 아니면 반복되는 붕괴를 감수할 것인가. 이 선택의 결과는 양봉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는 곧 축산과 농업 전체의 안정성과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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