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최윤재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축산바로알리기연구회장
‘저탄소 축산’이라는 말이 어느새 익숙해졌다. 정부 발표자료에도, 학술 세미나 현수막에도, 언론 기사에도 저탄소 구호가 넘쳐난다. 그러나 정작 축산 현장의 농가들에게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냉정하다. ‘그래서 나한테 남는 게 뭐냐’는 것이다.
이런 반응을 두고 이기주의라 비판할 수는 없다. 농가가 탄소 감축을 위해 노력하고 설비에 투자할 수 있도록 그에 걸맞은 보상이나 경쟁력이 뒤따라야 구호가 구호에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저탄소 축산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는데 문제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보고, 기존 인증 체계의 구조적 문제부터 함께 논의해봐야겠다.
인증 제도의 현실, 비용의 벽 앞에서 멈춰 선 농가들
우리나라 저탄소 축산물 인증제는 2023년 한우를 시작으로 시범 도입된 이후 2024년 돼지와 젖소까지 확대되었다. 제도의 방향성은 옳다. 그러나 농가 입장에서는 인증을 받는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 부담 또한 커 현실적으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가령,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계량화 가능한 과학적 측정이 필수인데 이 검사는 챔버 장비 등 특수 시설이 있는 전문 연구기관에서만 가능하다. 문제는 이런 기관에 맡기는 인증 과정에 수반되는 비용이 고스란히 사료첨가제 회사나 농가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현재 저탄소 축산물 한 품목의 인증을 완료하는 데 드는 비용은 1억5천만 원에서 2억 원에 달한다. 대학 측은 정부 지원이 없으니 그 비용을 기업에 청구할 수밖에 없고, 영세한 사료첨가제 회사들은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계량화가 가능하지 않은 비계량 기술에 대해서는 항목별로 기준에 맞추어 사료를 급이하거나 필요한 설비를 설치한 후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규모가 작은 농가에서는 각 항목 내용을 챙기거나 설비를 무작정 투자하는게 간단한 선택은 아니다. 농촌의 고령화도 무시 못 할 진입장벽이다.
또한 설령 인증을 신청하더라도 결과를 보장하고 효과를 확신할 수도 없으니, 투자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유망한 저탄소 기술이 시장에 나오지 못한 채 묻혀버리고, 인증 제도는 활성화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게 되는 것이다.
HACCP이 준 교훈, 제도는 정부 투자가 있어야 뿌리 내린다
저탄소 인증 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HACCP의 역사에서 일부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HACCP이 도입되었을 때 현장 반응은 지금의 저탄소 축산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낯선 기준, 복잡한 절차, 추가 비용에 대한 거부감이 팽배했다.
그러나 정부는 거기서 물러서지 않고 직접 투자를 결정했다. 농가 교육을 지원하며, 인증 취득 비용의 일부를 보조했다. 정부 자원이 지원되니 농가에서 문제가 생기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컨설팅 업체가 자생적으로 육성되었다. 컨설팅 업체가 농장을 교육하고, 행정 실행에 필요한 부수적인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나갔다.
농가들 또한 실제로 해보니 생산 효율이 올라가고 경쟁력이 생긴다는 것을 경험하게 됐다. 그 결과 사료부터 농장, 도축장, 유통 단계까지 이어지는 공급망 전체에 HACCP이 체계적으로 지원되고, 산업 표준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저탄소 인증 역시 HACCP이 걸어온 경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인증기관에 연구비와 운영 지원을 제공해 인증 비용을 낮춘다면, 더 많은 농가가 저탄소 인증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이러한 참여가 확대되면, 저탄소 인증은 일부 선도 농가의 선택을 넘어 시장 전반의 표준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저탄소 인증이 시장 경쟁력이 될 수 있도록
농가들이 인증을 받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인증을 받아도 그것이 실질적인 가격 프리미엄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저탄소 인증을 받은 제품이 실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지원도 병행되어야 한다. 인증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통·가격·소비까지 이어지는 구조가 마련될 때 비로소 농가의 참여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경우 저탄소 축산물 인증을 통해 EU 시장을 노리고 있다. 브라질 농업연구공사(Embrapa)는 세계 최대 식품회사 중 하나인 MBRF와 공동으로 초지 관리와 혼농임업 시스템을 결합한 ‘탄소중립 소고기’ 인증 프로토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수목과 통합된 축산을 통해 반추동물의 장내 메탄 배출을 토양 탄소 흡수로 상쇄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생산성 또한 증대시켰다.
핵심은 저탄소 인증이 곧바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환경 규제가 빠르게 강화되고 있는 유럽연합 시장에서는 이러한 인증이 사실상 ‘진입 조건’이자 ‘프리미엄’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현재 국내 저탄소 축산물 인증을 받은 농가는 전체 축산 농가의 약 1% 정도이다.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제도임을 고려해도 여전히 극소수인 것은 사실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인증 제도에 필요한 진입장벽을 낮추고, 인증이 ‘의무’나 ‘부담’이 아니라, 인증이 곧 경쟁력이 되는 시장을 설계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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