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민병진 기자]국내 낙농산업이 생산비 급등과 물량 감축, 수입 유제품 확대라는 삼중고 속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낙농가들은 원유가격이 아닌 제조·유통 단계의 과도한 마진과 정부의 제도 운영 미흡이 현재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주장하며, 한국낙농육우협회(회장 이승호)는 생산기반 유지를 위한 근본적인 제도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우유값 상승 원인은 유통마진…유통구조 혁신 필요
역마진·물량 감축에 폐업 속출…생산기반 붕괴 현실화
계획생산체제 도입·가공용 원유 확대 등 3대대책 요구
▲우유 소비자가격 근본 원인은 비대해진 유통마진
협회는 지난 20년간 우유 소비자가격 상승폭(1천706원/ℓ)은 원유가격 상승분(567원/ℓ)의 3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가격 인상 요인의 약 70%가 생산 현장이 아닌 제조 및 유통 단계에서 발생한 것.
아울러, 국내 우유 유통 마진율은 35.1%로, 일본(16.8%)의 2배, 미국(8.8%)의 약 4배 수준이다. 유통 마진의 비대화는 시장의 배분 효율성을 저해하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대표적인 ‘시장 실패(Market Failure)’ 요인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일본보다 음용유용 원유가격이 저렴함에도 최종 소비자가격은 훨씬 비싸게 책정되는 기형적인 구조를 보이고 있다.
정부 또한 보도자료를 통해 우유 가격 안정화를 위해서는 유통 효율화 및 유통마진 개선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바 있다.
협회 관계자는 “소비자가 마시는 우유 가격이 높은 이유는 낙농가가 받는 원유가격 때문이 아니라, 유통과정에서 과도한 거품이 끼어있기 때문”이라며 “이 기형적인 유통 마진 구조를 혁신하지 않고서는 소비자 부담 완화도, 도산 위기에 처한 낙농가 구제도 불가능하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밀크플레이션’의 대표 품목으로 지칭되는 빵류, 과자류 등의 가공식품 내 우유 및 유제품 사용 비중은 1~7%(빵류 우유 사용량 2.4%, 과자류 버터 1.0% 등)으로 극히 미미하며, 이마저도 수입산 유제품을 주로 사용하고 있어 국내 원유가격 인상과는 인과관계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료가격 변동이 최종 제품 물가에 미치는 ‘비용인상 인플레이션(Cost-push Inflation)’의 파급 효과가 극히 제한적인 것으로 입증되었다.
협회는 정부도 보도자료를 통해 원유가격 인상이 가공식품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며, ‘밀크플레이션’은 과장되었다고 인정한 바 있다며 제조·유통사가 원유가격 인상을 빌미로 가공식품의 가격을 올리는 것은 농민을 방패막이 삼아 기업의 이윤만 극대화하려는 기만적 프레임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생산비 반영 절벽, 물량 감축으로 폐업 급증
젖소 한 마리가 생산에 투입되기까지 최소 2년이 소요되며, 생산비 폭등과 물량 감축으로 인해 회복 불가능한 수준의 산업기반 붕괴가 우려되고 있다.
2021~2025년 농가 평균 생산비는 171원/ℓ 폭등했으나 원유가격 반영은 88원/ℓ(반영률 51.5%)에 그쳤다. 나머지 83원/ℓ(48.5%)의 생산비 상승분은 오롯이 농가가 빚으로 감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전체 농가의 41%를 차지하는 소규모 농가(50두 미만)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소규모 농가의 2021~2025년 생산비는 평균보다 훨씬 높은 280원/ℓ 폭등했다. 그러나 원유가격 인상액은 똑같이 88원/ℓ에 묶이면서, 소규모 농가는 생산비 상승분의 68.6%에 달하는 사실상 리터당 192원/ℓ의 ‘출혈 경영’을 강요받으며 실질 원유가격 인하의 폭탄을 맞았다.
특히 2025년에는 생산비(1천252원/ℓ)가 음용유용 원유가격(낙농진흥회 평균, 1천249원/ℓ)을 추월하는 ‘역마진 구조’에 진입했다. 이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는커녕 생계비조차 챙기지 못해, 고령·소규모 농가들이 더 이상 경영을 지속할 수 없는 ‘한계 상황’에 직면했음을 의미한다.
용도별 차등가격제 제도 시행 이후 유업체로부터 정상 원유가격을 지불받는 낙농가의 물량(음용유용 원유 구매량)이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정부가 당초 약속했던 ‘집유주체 총량’ 기준의 정산방식을 이행하지 않고 유업체의 임의적인 물량 감축을 방치함에 따라, 농가가 체감하는 쿼터는 실질적으로 11.5%에서 최대 26.5%(남양유업 거래조합 소속 농가 -26.5%, 매일유업 거래조합 소속 농가 -22.1%)까지 삭감된 것과 다름없는 결과를 낳았다.
낙농업은 시설 투자 등으로 인해 생산량과 무관한 고정비가 생산비의 약 30%를 차지한다. 따라서 물량을 줄일수록 리터당 고정비가 상승해 실질 생산비가 증가하고 농가 수익성은 악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낙농가 호당 평균 부채(2025년 기준)가 5억 원을 상회하는 가운데, 2021~2025년 젖소 두당 차입자본액은 45.6%, 차입금 이자는 68.6% 급증했다. 그 결과 최근 5년간 전체 농가의 13.7%(834호)가 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영 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폐업했다.
▲수입 대체가 부른 수급 불균형, 왜 농가만 책임지나
협회는 우유 수급 불균형의 본질은 소비 감소가 아니라 정부의 불성실한 제도 운영과 유업체의 국산 원유 외면에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당시 “제도가 개편되어도 농가의 소득 감소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확언하며, 가공용 물량 20만 톤 확대를 통해 농가 소득을 증대시키고 낙농가가 우려하는 쿼터 감축은 전혀 없을 것이라고 정책 약속을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실상은 예산 확보와 물량 담보에 대한 정책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실제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실제 제도 참여 유업체 소속 낙농가들이 2025년 생산한 음용유용 원유 생산량(참여 유업체의 음용유용 원유 구매량)은 농가 보유 쿼터 대비 81.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가 당초 제도로 보장하겠다던 음용유 구간(쿼터의 88.5%)보다 7.3%p나 축소된 수치로, 정부의 이행 담보장치 부재 속에 정책의 실효성이 상실된 상태임이 드러났다.
유업체들이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이윤 확대를 위해 수입산을 선택하고 대체음료 시장으로 급격한 사업 전환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한 수급 문제를 ‘거래상 지위’가 절대적으로 열위한 농가에게 물량 감축으로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 협회 측의 설명이다.
국내 원유생산량은 FTA 발효 직전년도인 2010년 207만3천 톤에서 2025년 195만1천 톤으로 5.9%(12만2천 톤)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유제품 수입량(원유 환산)은 113만5천 톤에서 242만8천 톤으로 114%(129만3천 톤) 급증하면서 국산 우유·유제품 자급률은 2025년 45.8%까지 하락했다.
2025년 혼합분유를 비롯한 분유 수입량(원유 환산)은 2010년 대비(45만7천 톤) 49.5%(22만6천 톤) 증가한 68만3천 톤으로, 국산 원유의 가공유용 사용량(34만3천 톤)의 두 배에 달한다.
정부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수입량(252만5천 톤, 원유 환산) 중 20%(50만5천 톤, 원유 환산)를 유업체가 직접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국산 원유의 가공용 사용량(25만 톤)의 두 배로 국내 가공용 원유 시장을 심각하게 교란시킨다는 지적이다.
▲낙농가 회생을 위한 3대 긴급대책 촉구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도입한 용도별 차등가격제 역시 도입 목적인 가공용 원유 확대는커녕, 유업체의 음용유용 물량 감축만을 유발하는 정책 왜곡을 낳았다. 그 결과 생산비 폭등과 고정비 폭탄을 맞은 고령·소규모 농가들은 생산비가 원유가격을 추월하는 ‘역마진 구조’에 직면하며 도산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 협회측 주장이다.
이에 대해 협회 이승호 회장은 “유업체의 자의적인 물량 조절에 국내 낙농 시장이 흔들리지 않도록 일본·캐나다형 MMB(Milk Marketing Board)를 벤치마킹한 생산자 중심의 ‘계획생산 체제’를 조속히 도입하여 국산 가공유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하며, “우선,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은 고령·소규모 농가를 위해 폐업 보상 등 국가 차원의 ‘안정적인 퇴로(연착륙 전략)’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협회는 정부가 제도 도입 당시 공언했던 ‘농가 소득 보장’과 ‘생산 기반 유지’ 정책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가공용 원유 물량 확대 ▲긴급 금융 및 재정 지원 ▲유통 및 공정 질서 개혁을 정부에 강력히 촉구했다.
이승호 회장은 “유업체의 일방적인 쿼터 삭감과 물량 감축은 농가당 고정비 분담을 높여 생산비를 이중으로 폭등시키는 ‘고정비 폭탄’이자 사형선고”라며 “올해부터 우유 및 유제품 관세 철폐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생산 기반의 붕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비정상적인 우유 유통 구조를 즉각 개혁하는 동시에, 낙농가가 원유 재생산 구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즉각적인 정책 결단에 나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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