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민병진 기자]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단으로 800두 규모의 한우농장을 이끄는 여성이 있다. 경북 문경 백상농장 김경숙 대표다. 1989년 결혼하면서 받은 암소 2두로 한우와 인연을 맺은 그는 37년간 개량과 번식, 사양관리를 이어오며 현재 6개 농장, 약 800두 규모의 육종농가로 성장했다.
유전체 분석·계획교배에 ‘소 보는 눈’ 더해 보증씨수소 배출
기록·관찰·사양관리 삼박자…세 아들과 2세 경영 준비 착착
김경숙 대표는 남편과 함께 농장을 일구던 시절부터 사양관리를 직접 챙겼고, 약 3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농장을 흔들림 없이 지켜왔다. 김 대표에게 개량은 단순히 좋은 씨수소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암소를 정확히 파악하고, 농장의 부족한 형질을 찾아 다음 세대에 보완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백상농장의 개량은 인기 있는 정액을 따라가는 방식이 아니다. 김 대표는 현재 보유한 암소의 유전능력과 부족한 형질을 먼저 살핀다.
김 대표는 “유전체 분석 결과와 개체별 주요 형질을 비교해 농장에서 보완해야 할 부분을 찾는다. 이후 필요한 형질을 가진 정액을 선택해 계획교배를 실시한다”고 말했다.
백 상 농 장 에 서 생 산 된 우 수 개 체 가운데 KPN1694가 보증씨수소로 선발된 것도 이러한 개량의 결과
다 . 그 러나 김 대표는 씨수소 선발이 개량의 끝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교배계획을 잘 세우는 게 전부가 아니다. 원하는 후대가 나오는 확률은 20% 정도다. 나머지는 환경과 사양관리가 같이 따라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자신 있게 말하는 또 하나의 경쟁력은 ‘소를 보는 눈’이다.
2010년 육종농가로 선정된 이후 백상농장은 개체별 관리도 한층 세밀해졌는데, 송아지가 태어나면 개체번호와 출생체중, 외형적 특징 등을 기록하고 100% 친자검사를 실시하는 등 일반 번식농가보다 훨씬 세밀한 관리를 해야 한다.
하지만 김 대표는 기록에만 의존하지 않고, 축사에서 소를 직접 관찰하며 작은 변화를 발견하고, 발정 시기와 적정 수정 시기, 송아지의 포유 상태까지 개체별로 파악한다.
김 대표는 “송아지 울음소리만 들어도 젖을 안 먹었구나, 언제부터 안 먹었구나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며 “결혼 전 산부인과에서 근무했던 경험도 번식과 분만 관리에 도움이 됐다. 사람이 아이를 낳는 것이나 소가 새끼를 낳는 것이나 비슷한 부분이 많아 소의 번식과 생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규모가 있어야 우군 내에서 선발과 도태를 충분히 할 수 있고, 번식과 비육을 연계해 농장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800두를 관리하는 만큼 노동력 절감은 중요한 과제였다.
과거에는 하루 농장 안을 22~24㎞씩 걸어 다녔지만, 지금은 스키드로더와 트랙터 등을 활용해 분뇨 처리와 사료 운반 등 반복 작업을 기계화했다.
사료비 절감을 위해 벼와 조사료도 직접 생산한다. 벼 약 1만2천평과 여름철 조사료 약 4만5천평 등 7만
평이 넘는 농경지를 활용하고 있으며, 직접 생산한 조사료를 최대한 이용하고 부족한 부분은 수입 조사료로 보완한다.
김 대표가 37년간 한우산업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끊임없는 공부가 있다.
여주에서 2년간 공부한 뒤 경북대학교 축산학과에 편입해 학업을 마쳤고, 축산산업기사와 축산기사, 인공수정사 면허를 비롯해 유기농업기능사와 축산기능사까지 취득했다. 번식과 개량은 물론 분뇨관리와 농장운영까지 직접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또 , 김 대표는 여성의 농장 참여 역시 단순히 축사 일을 돕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농장의 경제권을 직접 쥐어야 사료비와 농기계 구입비 등 경영 전반을 고민하게 되고, 결국 소와 농장을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세 아들이 축산을 전공한 만큼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도 진행 중이다. 건폐율을 고려하면 시설을 약 30% 더 확충할 여지가 있는 만큼 두수를 늘리고 부족한 퇴비사도 추가로 마련할 계획이다.
작은 체구가 무색할 만큼 대장부다운 기개로 농장을 이끌어온 김 대표. 그가 말하는 개량의 핵심은 결국 좋은 유전자를 고르는 눈과 그 유전자를 제대로 발현시키는 사양관리, 그리고 매일 소를 관찰하는 농장주의 책임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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