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법칙과 진리는 옛날이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을 것으로 생각 하면서 문득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1993년 어느 날, 작지만 큰 사건이 축산시험장에서 발생했다. 사건의 발단은 다름 아닌 실험실의 원심분리기. 내가 축산시험장장으로 발령 후 3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나는 어느 연구실을 방문해 연구원들과 시험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연구원 한 사람이 갑자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말씀만 하시지 마시고 연구 성과를 높이기 위해 원심분리기부터 한대 제 앞으로 구입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말의 뜻을 이해 할 수가 없어 무슨 이야기이냐고 되물어 보았다. 그 연구원의 말인즉슨 축산시험장에 원심분리기가 작은 것과 큰 것 몇 대가 있는데 연구원 각자의 소유품과 같이 관리되고 있어 한번 빌려서 사용하자면 힘이 들고, 고장이 우려돼 되도록 직접사용은 자제하게 하니 이래가지고 어떻게 올바른 연구사업이 추진되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리 이리 저리 이해를 하려고 해 봐도 그런 경우가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한 후 연구실을 수시로 다니면서 실험기구들에 대한 공부를 하며 실태 파악에 나섰다. 그리고 6월 월례조회 시간에 마침내 이야기를 꺼냈다. “현재 우리 축산시험장에는 연구실이 아닌 사무실에서 연구원 각자의 비품인 것처럼 실험기기를 비치해 사용하고 있어 주위에 책과 서류뭉치 그리고 실험기기와 잡품들이 널려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연구 환경에도 좋지 않고 연구능률에도 장애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모든 실험기기를 한곳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곧 종합연구실을 준비하는 연구팀을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그 당시에 축산시험장에는 사료분석을 위한 사료분석실이 있을 뿐 기타 모든 실험기기는 연구원 각자의 사무실에서 비치하고 이용ㆍ관리를 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연구원들의 표정은 별로 달갑지 않아 보였다. 특히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이미 전임 장장들께서 모두 실험기기를 한곳으로 모아서 관리를 하겠다고 천명했으나 헛구호에 그쳤으니 이번 일 또한 불가능할 것이라는 데 목소리가 모아졌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추진하겠다는 뜻을 다시 밝히고 종합실험실을 준비하는 팀을 연구원 5명으로 구성해 3~6개월 내에 결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그러나 추진상황은 지지부진할 뿐만 아니라 될 수가 없는 일이니 내 생각을 접으라는 의견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더욱 오기가 발동한 나는 그 해 가을부터 연구팀으로 하여금 대전 대덕연구단지의 LG연구소, 경상대학교 종합실험실, 건국대학교 종합실험실 등을 답사해 장단점을 정리해 종합적인 검토를 하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는 연구팀의 계획수립결과에 따라 1년만인 다음해 6월에 번식 및 생명공학연구실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하게 됐다. 그런데 연구실을 통합하고 난 후에 돌발적인 사건이 또 발생했다. 1994년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더위가 심했다. 때마침 수정란 이식관련 연구를 하는 연구원들이 낮에는 더워서 기기작동이 정상적이지 못해 정확도가 떨어진다며 새벽에 나와 일을 해도 결과가 좋지 않으니 연구실에 냉방기를 구입해 달라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