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형의 ‘황소 발자욱’ / 제2부 시련은 극복하라고 오는 것

  • 등록 2006.11.01 11: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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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가장인가 Ⅲ

내가 축산시험장에서 국립종축장으로 전출을 했을 당시 충남 성환에는 농림부소속인 국립종축장이 1968년에 설립돼 종축개량사업을 담당했고, 농촌진흥청소속인 축산시험장은 농촌진흥청이 가까운 수원의 오목천동에 있는 화산지장에 자리를 잡고 시험연구 전문기관으로 발족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직원의 배치와 인사에 많은 혼란이 있었으나 1969년 중반기에 가서 마무리가 됐다.
그런데 축산시험장이 두 기관으로 나뉘어 개편되면서 농림부 소속인 국립종축장에는 기술직기관장 보다는 행정직이, 농림부 국장이 차관보급인 1급 관리관(축산시험장은 2급인 이사관급)으로 승진을 해 왔다가 기회가 되면 다시 농림부로 영전(榮轉)을 하는 자리여서 재임기간이 1년이 넘지를 않았다. 따라서 새로 발족한 기관의 질서가 쉽게 정돈되질 않았다.
이러한 여건에서 내가 국립종축장으로 발령을 받은 것이 1971년 1월 15일이니까 설립이 된지 약 1년 반이 지난 시기로 기관내의 분위기는 좋지가 않아 흔히 하는 말로 무질서한 혼란이 계속되는 춘추전국시대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당시의 국립종축장의 상황을 요약하면 건초와 배합사료가 밖으로 심심치 않게 유출됐다. 겨울에 먹일 젖소 담근 먹이를 만드는 옥수수 열매는 사일리지를 만들 때에는 많이 보이지를 않는가 하면, 가축관리를 하는 보조원들은 이미 다루기가 어려워 어느 연구관이 일을 많이 시킨다고 곡괭이 자루를 들고 연구관을 때린 사건도 발생했던 상황에 처해 있었다. 물론 가축의 생산성은 두말할 것도 없이 좋지가 않았다.
여기에 내가 일을 하겠다고 겁 없이 자원을 해 전출을 왔으니 상상을 해보라, 내가 어떠한 심정으로 임했겠는가?
그 당시에 착유우사는 제1우사가 1백두, 제2우사가 1백두, 제3우사가 2백두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각 우사에는 연구관 1명과 연구사 1명이 배치돼 있었고, 나는 제3우사에 배치됐다. 소 관리를 위해 매일 새벽 4~5시면 우사에 나오는 등 노력을 했으나 매초와 건초가 부족해 볏짚을 많이 먹도록 한다고 소금을 조금 섞은 물에 불려서 먹이는 상황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를 못했고 또 한편으로는 건초의 유출을 막기 위해 며칠 밤을 건초사에서 새우잠을 잔 경우도 있었으나 이 역시 도둑을 잡는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연구관시험에 5배수 추천을 받아 어렵게 합격을 하고나니 송아지를 전담해 기르는 육성우사를 맞게 돼 그나마 소신 것 일을 할 수가 있었다.
한번은 송아지 사료가 밖으로 유출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 육성우사에서 신방리 마을방향으로 나가는 길목의 숲속에 숨어 3일째 밤샘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소에게 먹일 청예옥수수 또는 풀을 저장했다가 겨울에 먹일 풀 사료를 저장하는 사일로로 가더니 무엇인가를 등에 지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적으로 누구냐고 소리를 지르고 쫓아 같더니 배합사료 가마니를 던지고 도망가려다가 나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그때에 하늘은 맑아 별이 반짝 반짝 빛나고, 반달은 어렴풋이 밤길을 안내하고 있는 12시가 지난 새벽이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그 보조원이 어느 연구관의 사촌동생이란 것이어서 입장이 난처한 처지였다. 하지만 인정사정을 볼 것 없이 사표를 받아 처리를 하니 주변에 웅성웅성하는 분위가 오래 지속됐다.
뉴스관리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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