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최근에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몇 번에 걸쳐 일어난 경제위기로 인하여 살림살이들이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살아가는데 힘이 들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 보다는 하나의 요행에 희망을 거는 경우가 많아진다.
로또 명당이라 불리는 곳에 긴 줄이 늘어 서있는 광경과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북적이는 정선 카지노와 경마장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번개에 맞을 확률보다 적다는 그러한 경우의 수에 기대어 어서어서 나무 그루터기에 토끼가 부딪혀 죽기만을 바라는 수주대토(守株待兎)의 마음들을 가진 것이 참으로 어리석어 보인다. 하지만 그 어리석음이 잘못되었다고 꾸짖기가 난감한 것은 그만큼 그들에게 있어 현재의 세상살이가 참으로 녹록하지 않음을 알기에 그렇다.
예전부터 우리 민초들에게는 미래불(未來佛)로서의 미륵을 믿어 현세에서의 어려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미륵신앙이라는 것이 있다. 로또나 경마 등도 현재의 미륵불이라 할 수 있다.
언제 올지 모르지만 현재의 어려움을 벗어나게 만들어주는 존재라는 점에서 종교적 색채를 벗어난 물질적 미륵불인 것이다.
미륵불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먼동이 트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먼동이란 세상이 고요한 어둠에 잠겨 있다가 새롭게 날이 밝아오는 동쪽을 일컫는 말이다. 이 말은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기대하며 많이 쓰던 말이다. 먼동이 트기 전에는 어둠이 있었고, 어둠이 있기 전에는 밝은 낮이 있었으며, 그리고 그 전에는 다시 어둠이 있었던 것이 바로 음(陰)과 양(陽)의 교대작용으로 이루어지는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운행법칙이다.
이렇듯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운행법칙은 사람으로 하여금 절망과 희망에서 희망을 선택하게 만들어주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단순히 먼동이 트면 무엇인가가 해결될 것이라는 수주대토의 막연함에 넋 놓고 있다가는 영원토록 희망이 구체적 결실로서 맺어지는 것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주역(周易)의 계사전(繫辭傳) 상편(上篇)에는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하는 것이 도이니 그 길을 잘 잇는 것이 선이요 그 길을 잘 이루는 것이 본성이다(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라고 하였다.
또한 하편(下篇)에서는 ‘역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 지속된다. 이 때문에 하늘이 도우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易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是以自天佑之 吉無不利)’라고 하였다.
주역의 역(易)은 바뀐다는 뜻으로 음양(陰陽)의 변전원리(變轉原理)를 해독하는데서 얻어진다.
밤이 가면 낮이 오고, 여름이 있으면 겨울이 있으며,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고,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듯이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도 이와 같다.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원치 않는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천지만물의 운행법칙을 거스르려하지 말고 주어진 환경아래에서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앞날을 대비하는 노력을 궁(窮)하게 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궁(窮)은 ‘곤궁(困窮)하다’는 뜻이 아니고, ‘궁구(窮究)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궁(窮)하게 한다는 것은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는 뜻이 아니고, ‘궁구하여 최선을 다하게 한다’는 뜻이다.
궁즉통(窮卽通)은 아주 어려운 가운데서도 변화에 대처하여 통하게 만드는 정신이다.
이순신이 명량해전에 임하기 전에 지휘할 수 있었던 함대는 배설에게서 넘겨받은 전선 등을 합하여 모두 열두 척이 전부였지만 이순신은 자신이 가진 작은 힘으로 강대한 적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그 때와 장소를 찾은 끝에 명량에 이르러 열두 척의 전선으로 삼백여 척의 전선들을 격파하였다.
우리의 삶 역시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먼동이 터오기를 기다리면서 비록 작은 힘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최대한 응축하여 흔들림 없이 때를 기다려 일시에 폭발시킬 줄 아는 지혜와 능력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이런 지혜와 능력을 배워 갖출 수 있다면 그 누구라도 결코 위기 앞에서 요행만을 바라보는 어리석음 앞에 무릎 꿇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서양의 동화 중에는 희망과 행복은 먼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표현한 작품으로 파랑새가 있다.
채근담(菜根譚)에도 ‘하늘과 땅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으나 만물을 낳고 이루는 작용은 잠시라도 쉬거나 멈춤이 없으며, 해와 달은 밤낮을 번갈아가며 끊임없이 자리를 바꾸지만 그 빛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天地寂然不動 而氣機無息稍停 日月晝夜奔馳 而貞明萬古不易)’고 하였다.
세상의 이치는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며 노력하는 자만이 운(運)을 붙잡는 법이다.
‘하늘의 운행은 건실하다. 군자는 그것을 본받아 스스로 힘쓰며 쉬지 않고 굳세게 행하라(天行健 君子以 自强不息)’라는 주역의 내용을 가슴에 담고 삶이 팍팍하고 어려운 때일수록 넋 놓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그 어떠한 일이든지 최선의 노력을 다한 뒤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마음가짐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