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김 충 현 교수(호서대 동물보건복지학과)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면서 탈옥하는 주인공을 응원한 적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쇼생크가 같은 처지의 동료 수감자들과 함께 저녁노을을 보며 맥주를 마시던 순간이었다. 그 장면에서 나는 상황과 처지를 뛰어넘은 시간이 주는 자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자신을 가두었던 모든 공간을 뛰어넘어 한계 없는 바다에서 배를 고치는 쇼생크를 보며 얼마나 후련했는지 모른다.
최근 필자가 사는 대전에서,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대전오월드의 늑대 한 마리가 사육장을 탈출한 것이다. ‘늑구’라는 이름의 이 두 살배기 수컷 늑대는 쇼생크와 같이 갇힌 공간을 뛰어넘어 9박 10일 동안 도심과 야산을 넘나들었다. 인근 학교는 등교 시간을 조정하거나 외부 활동을 중단했고, 동네에는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드론과 열화상 카메라, 수십 명의 수색 인력이 동원되었지만, 늑구는 포위망을 뚫고 유유히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흥미로운 것은 늑구의 상태였다. 열흘 가까이 야생에 있었다면 탈수와 저혈당으로 지쳐 있었을 법한데, 늑구는 추격을 따돌릴 만큼 건강 상태가 양호했다. 사람들은 늑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고, 포획에 나선 전문가들의 움직임도 분주했다. 필자는 우산 장수와 짚신 장수를 둔 어머니의 심정으로, 비가 오면 어쩌나 날이 맑으면 어쩌나, 잡히면 어쩌나 안 잡히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응원과 걱정을 동시에 품고 사태를 지켜보았다. 다행히 늑구는 살아서 무사히 포획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늑구가 어떤 마음으로 탈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일은 우리나라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의 복지 수준에 대해 다시 한번 묻게 만든다. 오늘은 그 질문의 핵심에 있는 행동, 바로 ‘정형행동(stereotypic behavior)’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정형행동이란 무엇인가
갇혀 지내는 동물에서는 야생에서 전혀 관찰되지 않는 행동들이 나타난다. 생존이나 번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머리를 흔들거나, 좁은 공간 안에서 좌우로 왔다 갔다 걷거나, 같은 자리를 맴도는 행동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정형행동이 관찰된다면, 이미 그 동물의 뇌 일부가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행동이 한번 자리 잡으면 환경이 개선되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갇힌 상태가 아니더라도, 혹은 더 좋은 사육 환경으로 옮겨가더라도, 한번 정형행동을 보인 동물은 회복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형행동이 관찰된다는 것은 그 동물이 현재 혹은 과거에 매우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행동은 동물원 관람객에게도 유독 눈에 띄기 때문에, 동물원 흥행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관람객들은 우리 안을 맴도는 동물을 보며 불편함을 느끼고, 이는 곧 동물원 전체의 복지 수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왜 하필 8자 그리기인가
정형행동 중에서도 특히 자주 관찰되는 형태가 있다. 직선으로 왕복하거나, 곡선을 그리며 걷거나, 8자를 그리듯 도는 행동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8자 그리기가 벽 앞에서 유독 자주 관찰된다는 것이다. 동물은 벽 앞에서 방향을 틀어 멀어지다가, 다시 벽을 향해 돌아오는 움직임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이 행동의 배경에는 ‘행동권(home range)’의 문제가 있다. 사냥을 하는 육식동물은 본래 매우 넓은 행동권을 필요로 하는 동물이다. 야생에서는 끊임없이 이동하고 넓은 공간을 활보하며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한다. 그런데 이런 동물을 좁은 사육장에 가두면, 생존이나 번식과는 아무 상관 없는 행동으로 그 욕구를 대신하게 된다. 늑대처럼 행동권이 넓은 동물일수록, 좁은 공간에 갇혔을 때 정형행동이 나타날 가능성도 커진다.
정형행동은 왜 사라지지 않는가
최근 연구들은 정형행동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뇌의 특정 부위와 관련된 신경학적 현상이라는 데 주목하고 있다. 곰을 대상으로 한 Vickery와 Mason(2005)의 연구는 정형행동이 갇힌 환경에서 비롯되지만 결국 뇌의 선상체(線狀體, striatum)라는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하였다. 선상체는 대뇌 깊은 곳에 있는 세포군으로, 무의식적인 운동을 중계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흐름 위에서 Mason(2006)은 정형행동을 ‘좌절로 유발되고, 반복적으로 대처를 시도하거나 중추신경 기능 장애와 관련된 반복 행동‘으로 새롭게 정의하였다. 풀어서 말하면, 동물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는 좌절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그 상황에 대처하려는 시도가 행동으로 굳어진 것이며, 동시에 신경계 자체의 기능 이상과도 맞물려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정형행동은 단순히 ‘환경을 바꿔주면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라, 한번 형성되면 동물의 평생을 따라다닐 수 있는 흔적으로 남는다.
늑구가 우리에게 남긴 질문
늑구는 결국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동물원으로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안도했고, 늑구의 무용담은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늑대처럼 넓은 행동권을 필요로 하는 동물을, 우리는 얼마나 좁은 공간에 가두어 기르고 있는가.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정형행동이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공교롭게도 같은 동물원에는 늑구보다 먼저 탈출했던 동물이 있었다. 2018년 탈출했다가 그날 사살된 퓨마 ‘뽀롱이’다. 그런데 정작 정형행동은 탈출했던 뽀롱이가 아니라, 어미를 잃은 그의 아들 개체 ‘황후’에게서 나타났다. 뽀롱이가 사살된 다음 날, 같은 우리에 남아 있던 황후가 같은 자리를 반복적으로 걷는 모습이 언론에 그대로 포착된 것이다. 정형행동은 탈출을 시도한 개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갇힌 채로 남겨진 동물에게서 더 조용히, 더 오래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이후 시민단체의 모니터링에서도 표범이 관람객과 가장 먼 벽 쪽에서 한 시간 가까이 원을 그리며 맴돌고, 수달이 스스로 몸을 물어뜯고, 곰이 반복적으로 고개를 흔드는 모습이 잇따라 확인되었다. 육식동물이 보이는 정형행동, 벽 앞에서의 8자 그리기, 끊임없는 왕복 보행은 결코 ‘원래 동물이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동물이 보내는 가장 분명한 스트레스 신호이며, 우리에게 사육 환경을 돌아보라는 경고다.
쇼생크가 마지막에 다다른 곳은 한계가 없는 바다였다. 늑구가 9박 10일 동안 보여준 것은, 인간이 만든 울타리 너머에도 살아갈 힘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우리가 답해야 할 차례다. 우리가 만든 울타리 안에서, 동물들이 정형행동이라는 또 다른 방식의 탈출을 시도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결국 우리나라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의 복지는 여전히 취약하며, 정형행동과 같은 이상행동을 줄이기 위해 동물원은 행동풍부화(behavioral enrichment)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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