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최윤재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축산바로알리기연구회장
‘고기는 비싼데 농가는 남는 게 없다.’ 축산업을 둘러싼 이 오래된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소비자는 높은 가격을 부담하고 있지만, 정작 생산자인 농가는 수익을 체감하지 못한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부가가치가 사라지거나 왜곡되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축산물 유통 구조는 복잡한 단계와 불투명한 거래 관행 속에서 작동한다. 이른바 ‘깜깜이 가격’과 비대칭적 정보 구조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불리하다. 유통의 먹이사슬이 지나치게 길어진 결과, 가격의 형성과 전달 과정이 왜곡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문제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전 국민이 알고 있지만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부터 풀어야 하는 것일까.
왜곡된 가격 구조, ‘공정한 가격’은 가능한가
축산물 가격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제한된 거래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특정 도매시장의 극소수 거래가 전체 시장의 기준 가격이 되는 구조다.
이렇게 형성된 가격이 전체 농가에 일괄 적용되면, 규모가 작은 농가는 불리한 조건을 그대로 감수해야 한다. 가격의 공정성이 훼손될 뿐 아니라, 생산 의욕 자체가 꺾일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가격 형성 과정의 투명성이 중요하다. 경매처럼 다수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동시에 참여하고, 거래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온라인 거래소를 통한 직거래 비중을 넓히는 방식이 하나의 대안이다.
미국의 ‘가축 거래 의무 보고제(Livestock Mandatory Reporting, LMR)’는 참고할 만한 사례다. 일정 규모 이상의 도축·가공업체가 거래 가격과 물량을 의무 보고하도록 해 시장 참여자들이 정확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일본도 농림수산성 관리 하에 산지, 도매, 소매 가격을 세분화해 공개함으로써 유통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기능을 담당할 주체, 특히 농협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공정 계약, 농가를 ‘소작인’으로 만드는 구조
유통질서의 또 다른 문제는 계약 구조에서 드러난다. 일부 축산 분야에서는 구두 계약이나 위험 부담을 농가에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불공정 계약이 여전히 관행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독과점화가 심화된 일부 산업에서는 기업이 농가를 사실상 착취하는 구조도 점차 굳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양계 분야다.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농가는 사실상 ‘소작인’과 유사한 처지에 놓이고 있다. 사료 공급부터 출하, 유통까지 기업이 장악하면, 농가는 생산만 담당하는 구조 속에서 가격 결정권을 잃는다.
높은 진입장벽 속에서 소규모 농가는 독립적인 선택을 하기 어렵고, 결국 불리한 계약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다. 질병 리스크나 가격 변동 부담까지 농가에 전가되니 경영의 자율성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계약의 공정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갑을 관계로 흐르지 않도록 정부와 농협이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야 하며, 사료비 변동에 따른 단가 연동제, 질병 리스크 분담 등 위험과 이익을 함께 나누는 구조를 명문화한 ‘축산물 표준종합계약서’가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돼야 한다.
더 나아가 프랑스의 에갈림법(EGalim Law)처럼 생산비가 반영되지 않은 계약을 제한하거나, 서면 계약을 의무화해 농가의 협상력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도 검토해볼 수 있다. 책임과 처벌이 뒤따르지 않는 법은 권고에 그칠 뿐이다. 위험 분담과 이익 공유를 명시한 실효성 있는 법적 가이드라인이 함께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AI 시대, 유통 혁신을 기대해볼 수 있는 이유
사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들은 전문가들이 오랫동안 지적해온 것들이다. 그럼에도 현실화되지 못한 것은, ‘중앙회·조합·정치·행정’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이해관계의 망 속에서 변화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AI와 4차 산업 기술의 발전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생산, 유통, 소비 전 과정의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면 수급 예측과 가격 안정화가 가능해진다. 소비자는 원산지와 생산 이력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고, 생산자는 시장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울러 축산은 경종 농업과 수확 후 관리 방식이 다른 만큼, 축산의 특성에 맞는 유통 구조 설계가 별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는 ‘왜’ 농가는 남는 게 없는가라는 질문을 넘어서, ‘어떻게’ 함께 남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축산업의 지속가능한 미래는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공정한 유통 질서가 바로 설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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