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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농협은 합쳐도, 농촌의 삶까지 사라져서는 안 된다

  • 등록 2026.09.04 10:21:23

[축산신문]

 

창원시축협 조 성 래 조합장

 

농촌이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사람은 줄고, 학교와 가게가 문을 닫고, 버스 노선마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이제 농촌의 문제는 단순한 인구 감소를 넘어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반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라는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협의 통폐합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지역 농·축협의 합병을 촉진하기 위해 합병 지원책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농촌 인구 감소와 조합의 영세화, 경제사업의 적자 확대 등을 고려하면 일정한 규모화와 경영 효율화는 피하기 어려운 선택일 것이다. 조합 수를 무조건 유지하는 것만으로 농업과 농촌을 지킬 수 있다는 주장에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조합의 통폐합’과 ‘농촌지역 농협 인프라의 폐쇄’가 같은 말이어서는 안 된다.

농촌에서 농협은 도시의 은행 지점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농협은 농업인들이 예금과 대출, 공과금 납부와 같은 금융업무를 처리하는 곳이자 농자재를 구입하고 농산물을 출하하는 통로다. 지역에 따라서는 하나로마트를 통해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입하는 사실상의 생활 거점 역할까지 담당한다.

특히 고령 농업인에게 농협은 더욱 중요하다. 스마트폰과 인터넷뱅킹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에게 금융업무는 여전히 사람을 만나 처리해야 하는 생활서비스다. 대중교통마저 부족한 농촌에서 가까운 농협 점포가 사라진다면 금융업무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수 키로미터, 때로는 수십 키로미터를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생활용품 구매도 마찬가지다.

인구가 줄어들수록 민간 상점은 수익성을 이유로 먼저 철수한다. 슈퍼마켓이 없어지고, 약국이 없어지고, 은행이 없어지고, 주유소마저 사라진다. 시장의 논리만 적용하면 인구가 적은 지역부터 서비스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 빈자리를 상당 부분 메우며 농촌을 지켜온 곳이 농협이다.

따라서 농협의 구조개혁은 ‘조직은 규모화하되 생활 인프라는 유지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여러 지역 농·축협을 하나의 조합으로 통합하여 경영·회계·인사·전산 등의 중복 기능을 줄이는 것은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 조합장·임원 체계를 정비하고 본점 조직을 통합해 경영 효율을 높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합병을 이유로 기존 농촌지역의 금융창구와 경제사업장, 하나로마트 등 주민 생활과 직결되는 시설까지 일률적으로 없애서는 안 된다.

오히려 농협중앙회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합병 이후 수익성이 낮아 상시 인력을 배치하기 어려운 지역에는 중앙회와 광역화된 조합이 협력해 필요한 인력을 지원하거나 순환근무제를 운영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소규모 금융창구, 이동점포, 찾아가는 금융서비스, 농자재 공급 거점, 생활필수품 판매시설 등 지역 여건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운영 모델도 만들어야 한다.

농협중앙회가 합병을 촉진하기 위해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천억 원 이상의 자금을 지원한다면, 그 일부를 단순한 합병 인센티브를 넘어 ‘농촌 생활 인프라 유지기금’의 성격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통폐합의 성과를 ‘몇 개의 조합을 줄였는가’로 평가해서도 안 된다.

경영 효율성이 얼마나 개선됐는지와 함께 기존 조합 지역 주민의 금융 접근성이 보장되고 있는지, 농자재 구매와 농산물 판매에 불편은 없는지, 생필품을 구매할 최소한의 생활서비스가 유지되고 있는지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

농협의 출발점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농협은 단순한 금융회사가 아니다.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농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며 농촌 공동체를 지탱하기 위해 존재하는 협동조합이다. 그렇다면 경영 효율성 역시 중요하지만, 농촌에서 농협이 담당해온 공익적 역할 또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따라서 정부 역시 농협의 구조개혁과 농촌 문제를 농업인 복지와 농촌 존립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일부 비리를 이유로 농협 개혁을 단순한 조직 축소나 규제 강화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농촌의 지속 가능한 존립을 뒷받침하는 정부의 지원과 함께 농협 스스로의 자구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조합은 합칠 수 있다. 조직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농촌 주민이 의지해 온 생활의 기반까지 함께 없애서는 안 된다.

앞으로 농촌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의 압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은 인구가 줄어드니 인프라도 줄이는 정책이 아니라, 인구가 줄어들어도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인프라를 지켜주는 정책이다. 농협 통폐합 역시 이 원칙 위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농협의 체질은 개선하되 농촌의 혈관은 끊지 않는 것. 조직의 규모화와 경영 효율성을 추진하면서도 금융·유통·농자재·생활서비스의 지역 거점은 유지하는 것. 그것이 농협의 구조개혁과 농촌 소멸 대응을 함께 이루는 길이다.

농촌에도 사람이 산다. 그리고 그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인프라가 반드시 필요하다.

 

축산신문, CHUKSA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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