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민병진 기자] 국내 낙농산업에서 저지종에 대한 산업적 관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홀스타인 중심의 생산체계에서 벗어나 품종을 다양화하고, 유지방·유단백 함량이 높은 원유를 활용해 유가공품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전환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저지종을 국내 유가공품 생산 확대를 위한 품종으로 보고 수정란 보급을 본격화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저지종 숫자를 늘리는 것만으로 산업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국립축산과학원과 한국저지종연구회가 주최한 ‘2026년 저지종 젖소 산업 활성화를 위한 심포지엄’의 내용을 토대로 국내 저지종 산업의 현황을 살펴보고 지속가능한 발전방향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103농가·1천200마리로 사육 기반 확대…프리미엄 유제품 시장성 확인
생산량 중심 유대체계 개선…집유·가공·유통 잇는 산업화 로드맵 필요
▲저지종, 산업화 첫걸음
국내 저지종 산업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2010년 국내에 처음 수정란이 도입된 이후 사육기반이 꾸준히 확대되면서 현재 103농가, 약 1천200마리 규모까지 축군이 늘어났다.
현재 저지종 보급의 핵심 사업은 농림축산식품부의 ‘가공유제품 생산을 위한 유전자원 도입 및 보급사업’이다.
사업은 낙농진흥회가 시행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올해는 국내산 저지종 성감별 수정란 400개를 보급할 계획으로 전문업체를 통해 국내산 수정란 공급부터 이식까지 일괄 지원해 수정란 이식 시기 지연과 낮은 이식률 등의 문제를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현장에서는 저지종이 국내 낙농환경에서 어떤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당진낙농축협 조재준 원장이 발표한 자료에서는 폭염기에 저지종이 홀스타인보다 산유량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작게 나타났다.
조 원장은 “올해 홀스타인의 산유량은 평상시 35.9kg에서 여름철 29.8kg으로 감소해 약 17% 줄었다. 반면 저지종은 25.8kg에서 22.9kg으로 감소해 약 11% 감소에 그쳤으며, 홀스타인보다 저지종이 더 빠르게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TMR 급여량도 약 28kg 수준으로 홀스타인 약 35kg보다 적어, 상대적으로 적은 사료를 섭취하면서도 일정 수준의 산유량을 유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저지종 산업화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지역 가운데 하나가 경기도다.
경기도는 도내 젖소 우군 중 1%를 저지종으로 전환하기 위해 수정란과 정액을 자체적으로 생산·보급하고, 저지종 농가협의체를 운영하는 한편 유대보전비까지 지원해 번식-사육-원유 생산의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농가의 유대 차액을 보전하기 위해 ‘퀸스저지 유대보전비 지원사업’에 총 3억원을 투입해 현재 농가 2곳을 대상으로 저지종 착유우에 대해 리터당 359원의 유대보전비를 지급하고 있다.
▲프리미엄 유제품으로 시장성 입증
국내에서 저지종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 일부 유업체와 농가들은 저지 원유를 활용한 프리미엄 우유와 유가공품을 선보이며 시장성이 확인됐다.
특히, 서울우유는 2010년부터 저지종을 도입해 자체적인 생산·판매 기반을 구축해 일평균 3톤(자체 생산+납유농가)을 생산하고 있다.
우유제품인 ‘로얄 저지 밀크’를 비롯해 아이스크림·푸딩 등 제품군을 확대하며 저지종을 프리미엄 유제품 시장과 연결하고 있으며, 긍정적인 소비자 반응을 얻고 있다.
서울우유 생명공학연구소 김형종 소장은 “초창기 하루 1천~2천병 수준이었던 판매량이 3천~4천병 수준으로 늘어났고, 쿠팡 등 온라인 채널에서도 누적 리뷰가 9천건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경기도축산진흥센터 이양수 소장도 “저지유가 일반 우유보다 리터당 30~80%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음에도 생산량에 비해 소비가 뒤처지거나 재고가 누적되지 않고 있다”며 “저지종을 일반 우유와 차별화된 프리미엄 제품으로 포지셔닝하면서 틈새시장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낮은 산유량에 유대체계 ‘발목’
시장성이 확인되고 있음에도 저지종 확대가 빠르게 이뤄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익성 감소다.
저지종은 홀스타인보다 체구가 작고 사료 섭취량이 적은 대신 일반적으로 산유량이 낮다. 반면 현재 유대체계는 여전히 생산량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저지종이 유지방과 유단백 등 유성분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장점을 갖고 있더라도, 이 차이가 농가의 소득으로 충분히 보상되지 않는다면 농가 입장에서는 굳이 품종을 전환할 필요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가 저지종 수정란 공급을 확대하고 있지만, 정작 농가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산업화 동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이양수 소장은 “2025년도까지만 해도 별도의 유대체계 마련에 공감대가 있었지만 정부 담당자가 바뀌면서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로 변했다. 또, 유지방 인센티브가 3.8%로 낮아지면서 저지종이 확대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었다”며 “지자체의 재정 지원만으로는 지속적인 산업 육성에 한계가 있다. 정책의 일관성이 담보되지 않을 경우 사업을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이를 믿고 따라온 농가들의 부담도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김형종 소장 역시 “서울우유는 로봇착유기 도입 등을 통해 자체 저지유 생산량을 하루 약 3톤까지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마케팅 측에서도 하루 5톤 수준까지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현재 유대체계에선 늘어나는 시장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실제 서울우유는 스타벅스 입점을 추진했으나 하루 3톤 이상의 물량을 요구받으면서 공급량을 확보하지 못해 성사되지 못했다. 협동조합이라는 특성상 별도의 저지유 유대체계가 마련되지 않으면 기존 홀스타인과 다른 가격을 자체적으로 적용하기도 어려워 생산 확대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저지종 ‘산업화 로드맵’ 필요
현재 구조에서는 별도의 유대체계를 만드는 데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는 점도 제기됐다.
낙농진흥회의 원유가격은 일방적인 고시가격이 아니라 생산자와 유업체 간 협의를 통해 결정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저지 원유를 실제로 구매할 수요처가 확보돼야 별도의 가격체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산자 측에서는 수요가 충분히 형성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산업화를 위한 최소한의 가격 기준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저지종 산업화를 정책적으로 추진하면서 이에 참여한 농가들도 있는 만큼, 정부가 합리적인 가격 산정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농가는 “저지 원유에 홀스타인 가격을 그대로 적용해 일정 금액을 보장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홀스타인보다 저지의 유량이 통계적으로 얼마나 떨어지고, 대신 사료는 얼마나 적게 먹는지를 따져 저지 생산을 지속할 수 있는 유대 수준의 범위를 제시하고, 그 가이드라인 안에서 농가와 수요처가 협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저지 사육 농가가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다 보니 집유·물류 비용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이 때문에 현재처럼 농가가 각자 판로를 개척하는 방식으로는 제품 개발이나 계약 생산 등 산업화로 연결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농가를 일정 지역에 집약해야 공동 집유·제품 개발·판로 확대 등이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결국 이날 토론에선 저지종 산업화를 단순한 품종 확대 사업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동안 수정란 보급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생산부터 원유 가격, 가공·유통, 소비시장까지 연결되는 산업화 로드맵을 마련하고, 농가가 품종 전환에 따른 위험을 홀로 부담하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 학계·연구기관 간 역할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기후변화와 소비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전환’이 필요한 만큼 중앙정부가 정책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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