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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 아줌마의 삶과 꿈-3

무진목장 김종숙

뉴스관리자 편집장 기자  2002.07.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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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섯시 30분에 일어나 끓는 물로 다시 기계청소를 해 착유를 하고 열마리가 넘는 송아지들을 먹이고 우유를 보내고 나면 여덟시가 된다. 늦은 아침을 해먹고 착유실 냉각실 청소를 하고 나면 11시다.
다시 점심 사료를 주고 엔시리지 담근 먹이를 언덕 및 창고에서 날라다 점심을 먹여서 내보내면 한시가 된다. 소의 유방 닦은 수건을 한 세숫대야 흐르는 개울물에 가서 행주처럼 뽀얗게 빨아다 널고 하루먹는 볏짚을 산더미처럼 썰어놓고 나면 늘 짧기만 하는 해는 어느새 서쪽으로 쭉 기울어져있다. 매일 동동거리며 이렇게 사는 나를 보고 이웃집 아줌마들은 동정인지 위로인지 맨날 그렇게 살아 뭐하냐고 강릉으로 회나 먹으러 가자거나 수암보 온천이나 다녀오자는 둥 부축이는 날은 달팽이처럼 축사안에서 뱅글뱅글 도는 내 자신을 생각하며 진종일 맥 빠지는 일에 지쳐 쭉 퍼지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렇다가도 유대 명세서를 받는 날은 다 제하고도 남는 금액이 어는 월급쟁이 부럽지 않아 이것이 고생한 보람이구나 하는 생각에 또 다른 힘이 솟아나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환율이 오르고 주가가 폭락하는 IMF로 낙농가에도 먹구름이 밀려왔다. 폭등하는 사료값 볏짚 값은 한달에 400만원이 되던 것이 600만원이 넘었다. 위축되어 가는 낙농 의욕은 세균등급 상승으로 조금 올라간 유대값 가지고는 터무니없는 위로에 불가했다. 아이들과 두 집 사는 살림살이는 유대가 입금되는 대로 찾아 쓰다 보니 농협을 통한 외상 사료는 두달이면 천만원이 넘는 부채로 남고 말았다. 꼼꼼히 가계부를 따져보니 돈이란 존재는 있으면 더 쓰고 없어야 아껴 쓴다는 것이 눈에 확 드러났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남편과 의논 끝에 사소한 세금은 물론 자동 납부를 시키고 사료값을 유대가 입금될 때마다 공제를 시켰다. 통장 잔액은 달랑달랑해 갈증이 나지만 반면에 눈덩이처럼 커지던 구매미수금이 없어 편안했고 과소비 습관이 자연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우리는 이 경제 난국에 안도의 한숨을 조금이나마 내쉴 수 있게된 것은 지난해 밭5천평에 옥수수를 심어 엔시리지 조사료를 만든 것이 그나마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엔시리지는 버썩 마른 볏짚에 비해 유량도 많이 나는 것은 물론이고 사료량도 소가 먹는대로 짐작해서 주던 것을 보름에 한번씩 유량계를 부착하여 우유가 나오는 만큼 사료량을 조절해 주니까 비대한 소들에 과잉 공급하던 사료도 많이 절약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올해도 조사료 만들 옥수수를 많이 늘려 심기는 했는데 마음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불안하다. 납유하는 우유도 사소한 조건이 붙을 때마다 매번 속상하다. 요즘은 주위 사람들까지도 우유파동에 착유소를 개값에 끌어내는걸 보고 중고대학생이 셋이나 있는 우리 집에 동정 어린 눈길을 주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이럴 때마다 나는 온 식구 합심하여 허영심과 과소비를 자제시키며 절약에 힘을 기울인다. 그래도 낙농업을 하기 전에는 농한기만 되면 고스톱이다 바다 낚시다 나태해져 티격 티격 하는 입씨름도 적지 않았는데 낙농업을 하고 부터는 그래도 가정에 집중력이 많이 생겼다. 어쩌다 내가 쌓인 스트레스를 푸느라 어설픈 글을 쓴다고 방바닦에 엎드려 온 백지를 너절하게 늘어 놓으면, 남편은 "꿈깨고 소나 잘 돌봐 살림이나 잘해" 하며 핀잔을 줘 섭섭함도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만큼 축사일에 세심해지기도 했다. 가끔 끝없이 반복되는 일에 지쳐 피곤할 때는 낳은 정은 몰라도 기른 정은 끔찍이 생각하고 졸졸 따라 다니는 순박한 새끼 송아지가 귀여워서 정을 나누고, 휴일이면 들어오는 아이들도 시키지 않아도 축사의 궂은 일도 제법 잘 거들어 줘 고마움에 힘든 허리가 펴지곤 한다.
이제는 지난날에 손발이 트도록 눈물이 나도록 그 힘들었던 일들은 기억의 저편으로 멀어져 갔지만 또다시 닥쳐온 우유 파동으로 냉냉한 낙농가에 꽃피워 줄 그날을 기다리며 조금 양보하고 손해본다는 마음으로 지금에 이 난국을 잘 헤쳐서 든든한 뿌리를 내리리라는 마음을 다져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