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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씨의 네 번째 수필집 「미소가 있는 아침」을 읽고

뉴스관리자 편집장 기자  2000.11.25 11: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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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가 정말 해를 따라 고개를 돌리는지 꽃 그늘 아래서 한나절을 지켜보았다.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고갯짓은 표나지 않는데, 아침에 동쪽을 보던 꽃이 저녁이면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는 수필가 김수자씨의 네 번째 수필집 「미소가 있는 아침」의 "해바라기를 심으며"란 제목의 수필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세월이란 우리가 지켜보고 있으면 흘러가는 것이 보이지 않지만 잠깐 먼산을 바라본 사이 언제 그렇게 흘러갔는가 싶게 흘러가 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 흘러간 세월의 흔적에 놀란다. 이를테면 김수자의 글에서처럼 해바라기 씨를 대충 뿌려 놓았는데 어느날 가보니 무릎까지 자라 있었고, 또 어느날 가보니 꽃대가 장대같이 자란 장관에 경탄을 하듯, 우리는 그런 경험을 수없이 하게된다.
내가 김수자씨의 네 번째의 수필집을 집어 들었을 때 느낌 또한 바로 그런 것이었다. 솔직히 「행복은 정말 별 것도 아니다」라는 두 번째의 수필집을 대했을 때는 시골에서 돼지를 잘 키우는 유명인사(?)의 아내로서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네 번째 수필집을 대하니 장대같이 자란 해바라기를 보듯, 그렇잖아도 작게 생각하고 있던 내 자신이 더욱 왜소해지는 느낌이다.
그것이 내게는 감동이었다. 김수자씨는 또 그 해바라기를 바라보면서 「꽃은 이상한 힘으로 시름을 빨아들였다」고 했다. 그처럼 김수자씨의 수필은 이상한 힘으로 때로는 눈시울을 적시게 하고,
때론 고향의 향수에 젖게 했다가, 때론 치열한 삶의 현장의 땀냄새를 느끼게 했다. 거기다 가끔 쉬어 가라는 의미에서인지 절로 웃음이 나오는 "양념"까지 곁들이고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신문 기사글의 제목을 뽑듯이 주요 수필 한편 한편마다 제목을 뽑아 보았다. 대부분 뒷 부분이었는데 그 제목중 우선 "싶다"로 끝나는 소망을 담은 글귀를 한 번 나열해 보면 김수자씨의 마음 속을 조금은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소없는 연하장이라도 한 장 왔으면 좋겠다(연하장)" "나는 많은 사람에게 장미처럼 사랑을 나
눠주고 싶다(장미)" "내 영혼을 살찌워 줄 꿈하나 갖고 싶다(중년의 꿈)" "마지막 모습이 은행나무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은행나무)" "갈대가 어우러진 강둑에 앉아 망향에 지친 영혼을
달래 보리라. 아, 정말 고향에 가고 싶다(고향단상)"」김수자씨의 나이는 쉰을 넘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나타낸 마음과 여러 가지 표현들은 마치 소녀를 연상케 한다. 생각의 순수함이 막 피어나 파아란 가을 하늘아래서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를 생각케 한다.
거기다 오랜 삶의 경륜에서 나오는 철학과 어울어진 절절한 이야기는 감동의 도를 더욱 높여준다.
"동백"이란 제목의 글에 나오는 한 토막이다. 「붉게 핀 동백이 꼭 찢겨져 나간 살점 같다. 그것은 칼로 난자 당한 살점이 아니라 그리움으로 타거나 기다림에 절어서 터져 버린 내 육신의 살점으
로 보인다」이 얼마나 절절한가. 뿐만 아니라 "가을 남자"에서는 「야망에 불타던 사나이가 다소곳이 무릎꿇고 한 잎 낙엽에 가슴
떠는 가을. 먼지 바람이 휘몰아 치는 삭막한 도시의 어느 귀퉁이에 울고 싶은 남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올 가을은 향긋하게 다가온다」며 남자를 이해 하고 있기도 하다.
김수자씨는 글만 쓰는 작가는 아니다. 결혼 하면서 몸빼 바지를 혼수품으로 가져왔을만큼 일하는 것을 팔자(?)로 알고 있다. "장바구니의 무게야말로 내가 지고 가야할 내 삶의 무게가 아닐까?(시장에서)"며 일상에 충실한 우리의 보통 아주머니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김수자씨가 커 보이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고, 남편이 있고, 친구가 있고, 이별의 아픔이 있고, 절망의 순간이 있고, 애틋한 자식 사랑의 마음이 있지만 김수자씨는 누구에
게나 있는 그런 일상을 작품으로 승화함으로써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고 있으니 어찌 커 보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장지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