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의 흐름속에서 잠시도 다른 생각을 하거나 지체할 수 없는 곳의 하나가 계란 선별장안. 바깥은 영하10를 오르내리고 있는 혹한이 몇일째 계속되고 있지만 선별장안에는 벌써 몇시간째 선별작업이 계속되도 있다. 최명규(64)사장의 하루일과가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 충남 천안시 소정리 2구 에덴농장. 양계를 시작한지 20년째. 이제 남들이 말하는 대로 근처에서는 알아주는 양계인이다. 무창계사를 설치하고 산란계 3만4천수의 산란계 농장이다. 에덴농장이 처음부터 양계중에서도 산란계를 시작한 건 아니다.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최사장은 우리 농촌의 전형적인 방식대로 한우와 농사를 했다. 이른바 복합영농을 한 셈이다. 그러다 뜻한바 있어 20년전에 육계와 한우를 병행하다 15년전에는 아예 한우를 처분하고 산란계로 전환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사장은 산란계에 아예 정착한 것이다. 산란계업에 정착하면서 산란계는 한우보다 자금회전율이 빠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처음 5천수로 시작해서 현재 3만 4천수로 늘렸다. 에던농장은 93년 당시 획기적으로 이지역에서 최초로 무창계사를 준공, 이지역에 무창계사바람을 일으키는 장본인이 되었다. “당시에는 전국적으로 보아도 무창계사를 설치한 농장이 손꼽을 정도였어요. 아마 천안지역에서는 에덴농장이 처음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인력난은 가중되고 늘어나는 계분수거 문제 등을 견디지 못해 자금압박을 겪으면서도 리스자금으로 무창계사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는 최사장의 설명이다. 이후 95년을 전후로 무창계사가 확대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농촌에서 이렇다할 소득이 없는 상황에서 에덴농장은 양계로 자식들을 가르칠수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양계를 하지 않았다면 농촌에서 5남매를 어떻게 대학까지 교육을 시킬수 있었겠느냐는 최사장은 양계와의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양계를 여기고 천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주위에서 계란값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같다는 말을 종종 듣고 있어요. 90년 당시에는 80원은 보통이고 90원까지 받았어요. 못받아도 보통 60원은 받을 정도로 계란가격이 좋았으나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와 비슷합니다.” 최사장은 60원을 받아도 감가상각을 제외하면 생산비도 안나온다며 그나마 지금은 60원대를 유지하기도 어렵다는 푸념이다. 양계를 하면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만도 아니다. 지난해 폭설로 병아리 사육장이 무너져 지금도 복구할 엄두고 못내고 계사 인근에는 그때 철거한 계사 자재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에덴농장은 병아리부터 생산까지 철저한 질병관리프로그램을 통해 질병발생이 거의 없다. 디프스 백신이 나오기 전에는 한때 디프스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철저한 질병관리로 위기를 극복했다. 특히 질병관리가 어려운 무창계사를 설치한이후에도 질병으로 인한 피해는 거의 없다고 최사장은 자랑했다. 에덴농장에서도 유통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최사장은 부인 마선옥 여사와 가족노동력으로 선별작업에서 농장관리에 이르기까지 농장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 사료가격은 오르고 있으나 반면 계란가격은 10년전과 비슷한 수준에 형성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최사장은 계란가격이 생산비를 보장하는 수준에서 거래되어야 할것이라며 여건이 허락하는한 양계와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황인성) |